당신의 눈으로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방학을 맞아 모처럼 차를 몰고 시내로 나섰다. 공영 주차장 한 켠에 차를 대고, 목적지를 특정하지 않고 정처없이 걸었다. 두 다리가 분주히 움직일 때면 나는 얼마 간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쉼이었다.
분명 차에서 내릴 때만 하더라도 그다지 추운 날씨는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주변 나무의 나뭇가지들이 휘청일 정도의 강한 돌풍이 불더니 눈앞을 가릴 정도로 서리가 거세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로 다시 돌아갈까 망설이다, 나온 김에 주변 카페에 들어가서 책이나 읽을까 싶어 눈에 보이는 낯선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한옥으로, 좌식 테이블이 다섯 개 정도 되는 아담한 규모의 카페였다. 나는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비어있는 창가 쪽 자리의 청결 상태를 확인하고, 두툼한 코트의 똑딱이 단추를 하나씩 풀으며 빠르게 카페의 분위기를 살폈다. 천고가 낮아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좌식인 만큼 바닥에 앉는다면 답답함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카페 안은 적막해서 책을 읽기에는 적절해 보였다. 왼쪽 자리에는 이십 대로 보이는 두 명의 여자가 각자의 책을 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고, 오른쪽 자리에는 머리를 깎고 회색 승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서로 겨우 들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띄엄띄엄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코트를 살짝 털어 세로로 한 번, 가로로 두 번 접어 방바닥에 가지런히 놓고,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들고 다시 입구쪽으로 사뿐사뿐 걸어나갔다. 신발을 벗은 채여서 그런지, 아니면 옆자리에 앉은 스님 때문인지 어쩐지 몸가짐을 조심히 하게 되었다.
들어올 때는 카운터가 비어 있었는데, 어느새 돌아온 여직원이 눈에 호의를 담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분주히 시선을 옮겨가며 메뉴판을 들여다 보고는 입을 떼었다.
“어……, 밀크티 한 잔이랑 스콘 하나 하겠습니다. 버터랑 잼도 나오는 건가요?”
“네, 세트하시면 나와요.”
익숙한 질문인양 그녀는 나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했다.
“네, 그럼 세트로 주세요.”
나는 망설임없이 지갑 속에서 카드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카페에 들어올 때는 분명 따뜻한 커피 생각이 났지만, 메뉴판을 보니 홍차를 주로 팔고 있는 곳이라 밀크티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밀크티에는 역시 스콘이 제격이었다.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선 후 점심이 지난 이 시간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마침 출출한 참이기도 했다. 기분 좋은 지출이라고 생각하며 계산이 끝난 카드를 도로 받아 지갑 속 원래 있던 자리에 카드를 밀어넣었다.
“자리에 앉아 계시면 가져다 드릴게요.”
여직원은 그렇게 말하고 카운터 안쪽 커튼 속으로 또다시 사라졌다. 커튼이 없다면 그녀는 이런 작은 카페에서 사적인 쉼도 없이 계속 불필요한 긴장을 해야할 것이다. 그건 손님에게나 직원에게나 좋지 못하다. 어쨌든 쉼없이 만들어낸 밀크티보다는 맑은 정신으로 만들어낸 밀크티가 더 맛있을 테니까.
자리로 돌아가며 카페를 한 번 더 둘러보다 벽에 붙어있는 캘리그래피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종종 일어나지 않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 우리를 덮친다.
이게 무슨 말일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인가, 생각을 더 해보라는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두려워해봐야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쌩뚱맞은 일이 벌어질 테니 이리저리 생각이나 하며 시간낭비하지 말라는 소린가. 도통 어떤 의도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군.
어쩐지 복잡해져 찜찜한 기분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가방 속에 지갑을 넣고, 엉덩이를 대고 바닥에 아빠다리로 앉았다. 따끈하게 데워진 방바닥의 온기가 엉덩이로 전해졌다. 우리 집 방바닥도 이렇게 따뜻하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가방 안에서 오늘 읽어낼 책을 꺼내 들었다.
좋아하는 책이라고 한다면 대개 장편소설을 꼽을 수밖에 없지만, 요즘 나는 하루에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재미를 들였다. 세상에는 끝도 없이 많은 단편소설이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끝이 나버리기 때문에 매일 무얼 읽을지 심사숙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날 그날 되는 대로 집어서 읽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에 반해 장편소설은 뭐랄까, 한 번 읽을 때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읽어내려가기 때문에 손이 가는 대로 집어 읽기는 꺼려진다. 오늘은 장편소설을 좀 읽어볼까, 하고 마음 먹고 하루종일 장편소설을 읽었는데 영 재미없다고 결론이 난다면 허탈감이 꽤 크다. 그러나 그다지 재미가 없는 단편소설의 경우라면, 짧으니까 재미가 없을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게 된다.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이 단편소설도 그 무게 만큼이나 가벼운 마음으로 술술 읽어내려가면 그만이다. <돌연>이라는 제목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무심히 표지를 넘겨 책 날개에 있는 작가소개를 훑어보았다. 젊은 여성 작가였다. 아니, 사진이 젊은 시절일지도 모를 일이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신인 작가일지도 모르겠다. 더 가벼운 마음이 되어 첫 문장을 소리없이 읽었다.
당신의 눈으로,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멍하게 창문 너머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
어느 틈엔가 회색 고양이가 내 옆에 바짝 앉아 있었다.
“깜짝이야. 뭐예요, 소리도 없이.”
나는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고양이를 노려 보았다. 그렇다, 회색 고양이를. 고양이?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도 일어나지만, 그보다는 이쪽이 더 흥미로우니까.”
회색 고양이가 태연하게 말했다.
익숙한 말이었다. 카페 벽에 쓰인 문장과 비슷한 말이었나.
“당황스럽겠지. 하필 추운 겨울이잖아?”
회색 고양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추운 건 딱 질색이야. 따뜻한 게 땡기는군.”
“저기요” 내가 말했다. “왜 제가 그쪽의 말이 들리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저는 일단 고양이가 아니예요.”
회색 고양이는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지개를 켰다.
“자네, 개구리 왕자 이야기를 알아?”
회색 고양이가 물었다.
“예……?”
회색 고양이는 주변을 서성이며 말을 이었다.
“공주는 아끼던 황금 공을 가지고 놀다가 연못 속에 공을 빠뜨리지. 그러자 개구리가 나타나 공을 찾아주겠다고 해. 대신 공주의 가장 소중한 것을 달라고 하지.”
회색 고양이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았다.
“공을 빨리 되찾고 싶었던 공주는 개구리와 쉽게 약속해 버려. 개구리가 황금 공을 되찾아주자 공주는 성으로 돌아가 버리지.”
나는 회색 고양이를 경계하며 물었다.
“그래서요?”
회색 고양이가 내 오른쪽 어깨를 꼬리로 툭툭 치며 말했다.
“들어보라고. 그날 저녁, 개구리가 공주를 찾아가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자게 해달라고 요구하지. 공주는 마지못해 개구리와 함께 밥을 먹고 그를 방으로 들어오게 해.”
“그리고 키스를 하던가요?” 내가 물었다.
“아니, 키스하지 않아.”
회색 고양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알고 있는 고양이도 더러 있지만, 그림 형제가 쓴 이야기는 그게 아니지. 공주는 혐오감을 참지 못해 개구리를 벽에 던져 버려. 그러자 주문이 풀리며 개구리는 잘생긴 왕자로 변하지.”
어느샌가 회색 고양이의 꼬리가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고양이의 플러팅은 인간의 플러팅보다 훨씬 노골적인 것이었다. 나는 평소 고양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고양이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을 벽에 던지면 잘생긴 남자로 변하기라도 하나요?”
회색 고양이는 훗,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느긋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의 여유로움이 나의 마음을 조금 위축시켰다. 고양이한테 주눅이 들다니. 나는 앉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웃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회색 고양이는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잡아내려는 형사처럼 유심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는 저주 따위에 걸린 기억이 없어. 난 고양이야. 오히려 당신이 그 저주받은 개구리인가 해서.”
“그럼, 저를 벽에 던질 참인가요?”
“아니, 나는 그쪽이 고양이로 계속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회색 고양이는 내 목에 혀를 갖다 대며 더욱 더 노골적으로 구애 행동을 벌였다. 나는 더 견디지 못하고 그만 회색 고양이의 얼굴을 할퀴어버리고는 당혹감에 달아나버렸다.
*
뛰고 또 뛰었다.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 뛰는 동안 어떤 이유로 뛰고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는 조금만 뛰어도 왼쪽 무릎에서 시큰한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스카이 콩콩을 타고 달리는 듯한 이상한 무게감이 느껴지고, 어쩐지 달리기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빠르게 달리면 달릴수록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고양이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버려도 말이다.
나는 끝이 어디일까를 함부로 단정짓는 편이 아니었다. 천국이라든가 지옥이라든가 하는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해서도 크게 동요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내게 벌어진 일이 둘 중 어느 곳에 더 가까운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돌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볍게 나를 포기해버려도 괜찮은 걸까. 진짜 고양이의 영혼과 내 영혼이 뒤바뀌기라도 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카페에 앉아있는 진짜 내 몸을 놓쳐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회색 고양이도 그리 나쁜 고양이는 아닌 것 같으니, 그 정도로 거절 신호를 보냈으면 알아 들었을 것이다. 돌아가야 한다.
나는 달려온 길을 더듬어 다시 카페로 되돌아 갔다. 다행히 나는 아직 책을 읽고 있다. 예의 그 회색 고양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안도했으나 다시 내 몸으로 어떻게 돌아가야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저 창문 너머로 다시 내 모습을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내 몸은 밀크티를 조금씩 홀짝이고 있었다.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빙빙 제자리에서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내 몸이 나를 쳐다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책을 읽던 두 여자 중 한 여자가 나를 발견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고양이의 몸짓을 흉내내었다. 그 여자는 앞에 있는 다른 여자의 팔을 툭툭 치더니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무어라 말을 했다.
그때였다. 내 몸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놀란 듯이 카페 밖으로 뛰어나왔다. 나도 내 몸이 있는 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내 목소리가 너무 크고 갑작스러워 순간 몸이 움츠러들었다.
“혹시 방금 전까지 고양이였던 분인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는, 그러니까…… 고양이인데요. 왜 제가 사람이 되었죠?”
내 몸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우리 몸이 서로 바뀐 것 같습니다.”
“네?”
“저, 그런데 혹시 조금 작게 말할 순 없을까요?”
“아, 네… 죄송합니다. 인간들의 목소리가 크긴 하죠. 죄송합니다.” 내 몸이 쭈구려 앉으며 말했다.
“이 정도, 괜찮을까요?”
“딱 좋네요.”
나는 내 몸 옆에 앉아 한숨을 한 번 쉬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쪽도 당황스럽겠지만, 저는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고양이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아까 잠깐 달려봤는데, 달리는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그래도 고양이로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제 몸을 다시 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네, 그렇군요.” 내 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따뜻한 방바닥에서 앉아 달콤한 밀크티를 마시는 건 정말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로서 저는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저 역시도 계속 이렇게 지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도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그때 문득 회색 고양이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서로 입을 맞춰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말했다.
“입을 맞추자고요?”
내 몸이 눈을 크게 떴다.
“개구리 왕자 이야기처럼요. 그 이야기 아시죠?”
“네? 알긴 하지만……. 원래 이야기에서는 개구리를 벽에 던지지 않나요?”
“그건 알고 있어요. 아무튼, 자기 몸에 입을 맞추는 거니까…… 해볼만 하지 않습니까?”
내 몸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막상 내 얼굴에 입을 맞추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
당신의 눈으로,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문장은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다 식어버린 밀크티는 찻잔에 반쯤 남아 있었다. 창문 밖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귀가 크고 뾰족해서 여우처럼 보이는 예쁜 삼색냥이었다. 고양이 세계에서 인기가 많겠군, 하며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귀를 두 차례 털어내고 뒤돌아 사라졌다.
나는 가방에 책을 집어 넣었다. 개켜놓은 겉옷을 입고, 단추를 잠갔다. 입구로 걸어나가는데, 커튼을 열어 젖히며 여직원이 고개를 내밀었다.
눈에 호의를 가득 담은채 그녀가 물었다.
“잘 쉬셨어요?”
나는 뒤를 돌아 앉았던 자리를 한번 눈으로 훑으며 대답했다.
“네, 정말 잘 쉬었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