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에 대한 관점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독자를 순식간에 끌어들인다. 보는 이는 말하는 이의 관점에 쉽게 흡수된다. 나이부터 성별, 시대, 국적마저 다른 인물에게 어느새 설득당하는 경험을 한다. 인물은 각자의 서사가 있고, 그 서사의 흐름을 알게 되면 인물의 말과 행동,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납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작가가 인물을 이해할 수 없도록 고안해내지 않는 한 말이다.
우리는 흔히 사실과 진실을 혼용해서 쓰곤 한다. 하지만 ‘관점(point of view)’에 주목하면, 두 단어는 확연히 갈라진다. 사실은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객관적 현실이고, 진실은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주관적인 의미다. “해가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라는 문장은 하나의 사실이지만, 연인에게는 이별을 알리는 슬픔이고, 농부에게는 하루의 노동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안도다. “나는 1993년에 태어났다”라는 문장 역시 나를 규정하는 하나의 사실이지만,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왔는지는 오직 진실만이 담아낼 수 있다.
진실은 언제나 관점을 필요로 한다. 진실은 바라보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기에, 관점이 달라지면 진실도 달라진다. 한 장의 사진은 사랑의 기록이 되지만, 이별 후엔 상실의 기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과거의 사실은 고정되어 있으나 현재의 진실은 변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체적인 관점을 갖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삶에는 오직 사실만 존재할 뿐 진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만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비로소 자기만의 진실이 탄생한다. 결국 관점은 사실을 진실로 바꾸는 렌즈이며, 우리는 그 렌즈를 통해서만 살아 숨쉬는 세계와 마주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신비한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보는 진실이 아닌, 또 하나의 진실에 닿을 수 있다. 진실은 빛처럼 쪼개져 다양하게 퍼지고, 바람처럼 흔들린다. 새로운 관점을 만날 때, 그동안 내가 붙들어온 진실이 무너지며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한 세계를 깨고 나왔을 때의 그 헐벗음이 사람을 두렵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나 역시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순탄하던 삶이 갑자기 난항에 빠졌을 때,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허망하게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그동안 헛살았다’는 생각이 밀려오자, 잃어버린 만큼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잘 해내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때마다 책을 꺼내 들었다. 책 속 인물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화를 내고 절망하며, 다시 일어서려 애쓰지만 답을 찾지 못해 방황했다. 우리는 모두 인생 초보자인데, 끊임없이 선택과 책임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눈으로 하나의 진실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의 인생을 고유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그 불완전한 선택들이고, 결국 그 선택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에게 닥친 사실을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나만의 관점으로 인생을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다.
진실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그 가변성으로 인해 우리의 삶을 더 가볍고 자유롭게 한다. 사람은 언제나 그 순간 자신이 믿고자 하는 진실을 선택하면 된다. 다른 문을 열어보고 다시 닫을 수도 있다. 또는 다음 문이 나타날 때까지 적당히 머무를 수도 있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자유, 변하는 것도 자유다. 어떤 진실로 살아내느냐는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