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 속에는 먼지가 없어서
그날은 먼지 없는 따뜻한 봄날이었다. 1학년 아이들과 유치한 흙장난을 하고 있었을 때 수아가 찾아왔다.
“정우야, 안녕”
흙이 범벅인 두 손을 어정쩡하게 둔채로 황망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4년 전 대학 동기 형의 결혼식에서였다. 화장실에 다녀온 여자 동기 한 명이 호들갑을 떨면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야, 문정우. 네 전여친 왔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순식간에 모든 게 연극처럼 느껴졌다. 마치 우리가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헤어졌던 것처럼.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제대로 그녀 쪽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나중에 동기 형으로부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수아는 신부측 하객으로 온 것이었다. 동기 형의 변명하는듯한 말투에 나는 또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다고 답했다.
*
“갑자기 뭐야?”
나는 그녀로부터 눈길을 돌려 운동장 수돗가를 향해 걸어가며 애정도 혐오도 담지 않은 투로 말했다.
수아는 잔걸음으로 따라오더니 아무 말없이 서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고 흙으로 더러워진 손을 씻는내내 수아의 시선을 느꼈지만 나는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손을 씻었다. 마치 모든 걸 씻어내 버릴 수 있다는 듯이.
“잘 지냈어?” 수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갑자기 생각났어.”
나는 손을 털고, 목에 걸린 수건에 손을 두어번 문지른 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다행히 감정은 크게 요동치지는 않았으나 불쾌함을 드러내고자 의식적으로 내쉰 한숨이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실제로 감정의 변화를 이끌어 그녀의 느닷없는 방문이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졌다.
“이제와서?” 나는 냉소적으로 그녀를 쏘아붙였고, 실제로도 어이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제와서 뭘 어쩌자는 건 아니야. 그냥, 너를 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말하는 수아의 입가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어려있었다. 젠장. 아예 대꾸를 하지 말았어야 했나.
마음을 고쳐 먹은 나는, 줄곧 흙장난에 정신이 팔려있던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만 손을 씻고 교실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는 쪽은 나였다. 아직 수업 하나가 남아있었다. 그만 교실로 돌아가야 했다.
“나 들어가봐야돼.” 내가 말했다.
“기다릴게” 수아가 대답했다.
나는 한숨을 다시 한번 크게 내쉬고,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는 교실로 들어왔다.
*
“버스를 타고 어딘가 가고 있었던 것 같아. 나란히 앉아서. 이어폰을 나눠끼고, 함께 노래를 듣고 있었어. 그러다가 입만 뻐끔거리며 네가 나한테 노래를 불러줬어.” 수아는 밤새 연습한 대사를 해치우려는 배우처럼, 쉬지도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버스에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까 소리는 내지 않고 립싱크로만. 나는 네 모습을 보면서 소리없이 웃고만 있어. 그러다가 그런 가사가 나와. 네 눈 속에는 먼지가 없어서 널 만나면 난 숨이 트여. 거울을 보다가 가끔씩 그 순간에 사로잡혀. 플래시백처럼.”
여기까지 말하고, 수아는 천천히 캐모마일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마음을 추스르려고 노력하고 있어,라는 메시지가 담긴 행동이었다.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전화의 검정 화면과 수아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묵묵히 듣고 있었다. 지금 너의 말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라는 메시지가 담긴 표정으로.
“너랑 헤어지고, 쉽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헤어지기를 거듭했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몇년 전에 결혼도 했었어. 얼마 못가서 이혼하긴 했지만.”
그녀의 결혼은 예의 그 동기 형을 통해 알고 있었다. 유감이라는 듯 머뭇거리다가 그녀의 결혼 소식을 전하는 동기 형에게 또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이야깃거리를 꺼냈지만, 그후로 며칠 간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렇긴 해도 그녀의 이혼 소식은 뜻밖이었다.
나는 어두워진 창밖에 눈길을 돌렸다가 수아의 얼굴을 흘낏 쳐다보았다. 조금도 슬픈 기색이 없었다. 기대보다 담담한 그녀의 표정에 의아해하며, 나는 커피를 조금 들이켰다. 자연스럽게. 하지만 나의 거의 모든 행동은, 사실 철저하게 머릿속으로 꾸며낸 것들이었다. 아마 그녀도 그러했으리라. 이별한 연인의 대화 장면은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불도 켜지 않고 소파에 앉아서 창문이 어두워지는 걸 그냥 보고 있었어. 몇날 며칠을. 그러다가 너무나도 무서워졌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게 정말이지… ” 수아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떼었다. “그냥 도망가고 싶었어.”
독백과도 같은 그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이제는 말이야, 참을 수가 없어. 왜 계속 이렇게 되는 거지? 참을 거면 끝까지 좀 참던가, 나는 왜 참지도 못할 걸 참아내려고 하는 걸까.” 혼잣말 같은 토로를 끝내고 수아는 양손으로 찻잔을 감싸들어 이번에는 조금 더 긴 한 모금을 마셨다.
“너 원래 그래.”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자마자 내가 말했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려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혼자 참다가 어느날 갑자기 헤어지자고 했잖아, 나한테도.”
“그러네.” 몸에서 공기가 빠져나간듯 수아가 힘없이 웃었다. 그러다 문득 방금 깨달은 사람처럼 눈을 빛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도망가려고.”
*
그게 수아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적당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다가 적당한 때에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척하고는 둘러대며 카페에서 나왔다. 그녀는 분명 많은 말들을 준비해 내 앞에서 실수없이 다 해낸 것 같았고, 나도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헤어진 남자친구로서 적당히 해야할 일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무언가 중요한 게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녀가 그날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좀처럼 그 윤곽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지금에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아의 부고를 듣고,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그녀의 어머니를 처음 보았다. 딸의 죽음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직은 젊은 그녀의 어머니를 수아가 쏙 빼닮았다. 수아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그녀의 오빠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우가 왔네. 수아가 좋아하겠다.”
*
수아가 어떤 이유로 죽음을 선택했는지는 결국 알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들은 바로는, 그녀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났다는 것이다. 유서도, 일기장도,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어떤 말도 남기지 않고 그녀는 어느날 홀연히 떠났다.
그렇게 그녀의 영화같은 죽음이 끝나고, 나는 또다시 남겨졌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그녀의 독백에 대해서 스스로 납득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남긴다.
우리가 한 건 그냥 흙장난 같은 거야. 우리가 함께 뭔가를 만들기도 했었겠지, 어쩌면 꽤 의미 있는 뭔가를. 그러다가 우리는 흙으로 더러워졌을 거야. 그런데 애써 만든 그 모든 것을 누군가가 다 부쉈어. 아마도 너였던 것 같아. 그리고 넌 어디론가 가버렸어. 나는 더럽혀진 채 덩그러니 남겨졌어.
한숨을 한번 크게 내쉰다.
괜찮아. 깨끗하게 씻어내면 그만이니까. 그러려고 우리는 흙장난 따위를 하는 걸테니까.
너는 단지 흙장난을 함께 했을 뿐이야. 이제와서 그 흙장난이 가장 좋았다고 한들, 변하는 건 없어. 이미 다 망가져버렸거든.
잠시 멈춰서, 말을 고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가.
그러다가 다시 적는다.
그렇지만 그때가 가장 숨 쉬기가 편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