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한 하루를 살 수 있다면?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가장 완벽한 하루를 살 수 있다면 어떤 하루를 살아보고 싶은가?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오늘과 같은 하루’라고 답한다.
사실 이 영화는 ‘퍼펙트(perfect)’가 아니라 노말(normal)이나 제너럴(general)에 가까운 이야기로 보인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집을 나선다. 언제나 성실하게 청소하고, 일을 마치면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목욕탕에 간다. 매일 가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영화는 히라야마의 평범한 하루하루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심지어 그는 과묵할 뿐더러 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다.
무심하게 히라야마의 일상을 지켜보던 나는 어느새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벤치에 앉아 간단히 점심을 먹으며 나무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을 필름 카메라에 담는 장면에서는 특히 그랬다. 우리의 일상처럼 영화도 단조롭게 흘러가지만, 그는 그 속에서 소소하게 기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하루는 반복되지만 결코 같지 않다.
‘코모레비(木漏れ日 : 나무 아래로 새어나오는 햇살)’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줄 알아야 찍을 수 있는 것이다. 히라야마가 매일 코모레비를 찍는 장면은 그가 오늘의 햇살을 다르게 볼 줄 알고, 그 순간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이는 조카와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콘도와 콘도, 이마와 이마(今度は今度、今は今 :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라고 외치는 장면과도 이어진다.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Einmal ist keinmal : 한 번은 없는 것과 같다.’
우리의 삶이 반복된다면, 오늘의 작은 순간들에 엄청난 무게가 실릴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늘이 단 한 번뿐이라면? 어차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하루일테니 오늘의 작은 순간들은 특별한 의미를 요구하지 않는다. 전자와는 반대로, 그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그 가운데에 있다.
그의 하루는 반복되지만 공허하지 않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다름을 발견한다. 삶이 의미가 있든 없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완벽한 하루란,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하루다.
당신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