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를 가거든 사성암을 꼭 가라! 두 번가라!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내 친구 식빵(친구 1)은 친구들끼리 모일 때면 늘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했었다. "우리 어디 한번 다 같이 놀러 가자." 여름휴가 철이나 가끔씩 명절 때 친구들이 모일 때 누누이 그가 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어디를 함께 마지막으로 간 적이 언젠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우리 나이 30대 초반. 친구들은 이미 각자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결혼한 친구, 외국에 사는 친구, 공부하는 친구. 어느 하나 그 누구 하나 치열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는 친구들 중 식빵과 달심(친구 2)은 버디버디 친구라고 생각한다. 버디버디 친구가 무슨 말이냐면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유행했던 독보적인 메신저인 버디버디로 꽤 진지하게 사춘기를 소통했던 친구들이랄까?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왔으면 발 닦고 잠이나 잘 것이지 자주 셋이서 버디버디를 통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많이 남아있어 그렇게 정했는데, 조금 많이 오글거리긴 한다. 여하튼 내가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자퇴를 결심한 시점에서도 자퇴 이야기를 이 두 친구들한테는 했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식빵은 올해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 앞두고 있으니 더 이상 뭉그적 뭉그적거리지 말고 어떻게든 어디를 같이 한번 가보 자라는 공감대가 나, 식빵, 달심에게 있었고 되는 사람들끼리라도 가자는 데에 합의했다. 그래! 우리도 이제 30대고 시간이 없나, 차가 없나, 돈이 없나(돈은 없다). 그래 가보자! 했다. 그런데 어딜 가보자고?
어디라도 행선지를 정했어야 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지리산 온천랜드에서 온천이나 하고 오자고 말했다. 늙어가는 우리 몸뚱이에 온천 지짐이라도 당해야 겠다는 생각과, 사실 내가 한번 더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목적지 온천랜드에 친구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사실 딱히 목적지보다는 그냥 같이 어딜 간다는 반가움이 더 컸었던 것 같다. 쇠뿔도 당긴 김에 빼라고 부랴부랴 누나를 통해 교직원공제회 가족회원으로 더케이 지리산 가족호텔을 예약하고 여행을 가는 날만을 기다렸다. 그 사이 우리는 만난 적 없고 간혹 가서 뭐하지? 물어보는 정도였다. 가서 뭐하지? 온천하지 하긴 뭘 해. 그렇다 온천 말고 딱히 목표도 목적도 없었다. 아니지 목적은 있었지. 친구들과 추억 쌓기. 그러고 보니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지도 벌써 15년이구나. 15주년 기념 여행인 건가?
출발 당일 달심이는 식빵을 태우고 고맙게도 부산에서 김해 우리 집이 있는 곳까지 태우러 왔다. 아침시간의 허기짐은 선택받은 사람들만 먹을 수 있는 맥모닝을 가볍게 해결한 후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운전시간은 대략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3시간이라는 꽤 장거리 운전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쉼 없이 떠들었다. 뭔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기억이 안 난다. 그 정도로 그냥 정신없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떠들었다. 이렇게 우리가 3시간 가까이 한자리에서 이야기하기도 참 쉽지 않은 풍경이다.
운전 여행의 묘미는 휴게소 아니겠는가. 아직 맥모닝이 소화되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억지로라도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도 사고, 이날 혼자서만 선글라스를 챙겨 오지 않은 달심이의 선글라스도 봐주었다. 만원 정도에 그에게 아주 잘 맞는 마이콜 느낌 나는 선글라스를 찾았다. 정말 합리적인 가격이었지만 그는 극구 구입하지 않았다. 그 선글라스를 사서 꼈다면 진짜 마이콜 느낌이 났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 오후 2시쯤이 다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2시 체크인이었는데 알맞게 도착한 것이다. 우리가 묵을 방은 취사가 가능한 평범한 온돌방이었다. 방은 하룻밤 묵기에 무난했다. 베란다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니 보이는 편안한 자연의 풍경과 숲의 냄새가 너무나도 상쾌했다. 그 냄새는 정신을 맑게 하고 산림욕 온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우리는 누구 할 거 없이 이곳에 잘 왔다고 연발했다. 특히 공업단지가 많은 울산에서 근무라는 달심이는 특히 이곳 공기가 너무 맑아서 좋다고 말했다.
각자의 짐을 풀고 바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보통 어떤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의 맛집을 검색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메뉴만 정해놓고 아무 집이나 가자는 주의였다. 오늘 우리가 정한 점심메뉴는 지리산 흑돼지였다. 그냥 무작정 감으로 어떤 흑돼지 집으로 들어갔다.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흑돼지 삼겹살 4인분을 시키고 식탁에 세팅이 되었다. 여기 사장님 말씀에 요즘은 비수기라고 했다.(우리가 간 날짜는 5월 27일) 그나저나 왜 항상 내가 고기를 굽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기를 구웠다. 이 억울함도 잠시, 이놈의 고기가 식감이 너무 맛있는 것이 아닌가. 내친김에 된장찌개도 시켜봐야겠다 했는데 된장 역시 너무나도 입에 착착 감기듯이 맛있었다. 사장님께서는 직접 메주를 쒀서 만든 된장이라고 하셨다.
"사장님 저희가 부산에서 놀러 왔는데요. 요 근처 볼만한데 좀 추천해 주실 때 없으세요?"
사장님께서는 드라마 추노의 촬영지였던 사성암을 강추하셨다. 사성암? 처음 듣는곳이었는데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우리는 뿌듯하게 식사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로 향핬다. 사성암이다. 너무 즉흥즉인 여행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즉흥적이어서 좋다.
사성암 밑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곳에 주차를 먼저 하고 사성암에 올라갈 때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1인당 왕복 3천 원 하는 옛날 마을버스 같은 셔틀버스를 우리는 쭈쭈바를 하나씩 물고 올라갔다. 그런데 이 버스 기사님 너무 세게 달리신다. 높이 올라가는 길인데도 좀처럼 커브에서 속도를 줄이시질 않으신다. 덜컬덜컹 거리면서 산으로 올라가는 그 버스는 묘한 시골 느낌도 나도 마치 소설 속에 있는듯한 기분도 들어서 기분이 묘했다. 버스는 사성암 밑에 내려주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사성암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여기 주차되어있는 차들은 도대체 뭔가. 그렇다. 차가 올라와도 됐었다. 우리가 당한 것 같다. 아마 이곳의 초행자들은 뭣도 모르고 버스를 타는 것 같지만 다시 오는 사람들은 본인 차들을 끌고 오는 것 같다. 비록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오프로드처럼 올라가는 셔틀버스의 느낌은 꽤 촌티 나고 좋았다. 돈 아깝지 않았다.
사성암을 올라가는 그곳에서 내려보는 아래 지역은 정말 절경이었다. 그 모습은 내 신형 갤럭시 S8로도 담을 수 없는 직접 눈으로 보고, 눈과 가슴에 넣어야 하는 그런 풍경이었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어도 실제로 보는 그 느낌이 나지 않았다. 우리 세명은 우연처럼 이것에 오게 되어 너무 좋다고를 연신 내뱉었다. 적절한 셀카질을 연발하고 사성암을 내려온 후 여행의 본 목적지인 지리산 온천랜드로 향했다.
세명중 지리산 온천랜드를 한번 와봤던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3년 전 왔던 그 지리산 온천랜드와는 조금 많이 달랐다. 다소 관리가 안 되는 듯한 느낌과 물도 조금 더러웠고, 예전에는 운영되던 탕도 일부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찜질복을 입고 탕에게 들어가는 것을 한번 경험했던 나 역시 찜질복이 약간 까슬까슬한 게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도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바로 공기. 공기가 너무나도 맑고 좋았다. 좋은 공기에 물속에 잠겨있으니 무념무상. 신선놀음하기 딱이었다. 이제 우리도 이럴나이가 된 걸까?
온천욕을 끝내고 저녁을 먹어야 했다. 원래 계획은 저녁은 가볍게 무엇을 만들어먹거나 닭이나 피자와 함께 소주 한잔 하는 것이었다. 일단 호텔 지하에 있는 편의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러 내려왔다. 그런데 웬걸 이 편의점에 냉동이 가득한 게 아닌가. 갑자기 우리의 주메뉴가 군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냉동식품 겸 소주 한잔으로 변경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냉동과 소주 한잔을 먹으며 아는 형님을 시청하면서 참 한가한 밤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나는 이날 많이 피곤했었던 것 같다. 내가 제일 먼저 곯아떨어졌고, 그 뒤에 달심이 그리고 식빵이 잠에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하룻밤이 저물어갔다.
이튿날 10시즘되어 기상한 후 두 번째 온천욕을 하러 더케이 지리산 가족호텔 내의 온천탕으로 향했다. 그곳은 지리산 온천랜드만큼 크진 않았지만 물도 맑고 있을 건 다 있었다. 무엇보다 야외 노천탕이 마음에 들었는데 물 위로 개구리가 몇 마리 뛰어다니는 그 노천탕은 정말 온천랜드의 노천보다 더 좋았다. 그리고 함께 맡는 그 아침 숲 향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 가지 재미있는 막간 에피소드라면 어제 술을 먹으면서 아는 형님을 시청 할 때 강호동이 싸움을 잘하니 마니 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눴다. 연예인중에서 제일 싸움을 잘하는 연예인은 누구냐며 박남현, 강호동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다가 아.. 1등이 누구지? 아무도 1등을 기억 못 하고 있었는데 뒷날 온 이 노천탕에서 연예인 김진수 씨를 보게 되었다.
"아! 맞다. 맞다. 기억났다. 싸움 1등. 김진수 아이가!!"(실제로 정확한 정보는 아닙니다.)
와 이런 곳에서 특히 이런 대중탕에서 연예인과 마주하다니 여기 물이 진짜 깨끗하고 좋긴 좋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상쾌란 아침 온천욕을 마치고 짐을 싸고 체크아웃했다. 점심을 먹고 복귀해야 했었는데 이번에도 어제의 감각을 믿고 메뉴만 생각하고 아무 집이나 가자도 했다. 우리는 메뉴를 한식으로 정하고 감에 이끌려 아무 한정식집으로 향했는데 여긴 결과적으로 판단 미스였다. 비싸기만 비쌌고 특별히 맛있거나 푸짐하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조금 유기농 느낌이 나긴 했지만 딱히 가격 대비 만족스러운 맛은 아니었다 이렇게 아쉬운 점심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출발했다. 내일(월요일)부터 또다시 치열한 일상을 마주해야 할 3명이었다. 그렇게 3시간을 달려 김해에 사는 내가 제일 먼저 집으로 복귀하고 식빵, 달심 순으로 복귀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놀러 가자는 이야기를 하며 짧디 짧은 1박 2일 여행을 마무리 지었지만. 내심 짐작에 각자가 앞으로 이렇게 함께 놀러 가기란 더 힘들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왠지 이번 여행이 우리에게 아직 많이 남은 30대에서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로 그동안 함께 여행 가고, 추억 쌓지 못했던 우리들의 30대 여행. 그 시작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아무쪼록 계획이랄 것도 없는 1박 2일 남자 셋 여자 무 지리산 온천여행의 추억을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