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歸巢

아이가 꿈꾸던 세상 한 조각

by 해원

방향감각 없는 미국

미국은 지역분류가 참 웃기게 되어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분류다. 지도를 보면 서부, 중서부, 남부, 북동부 4개 지역밖에 없다. 중부나 동부는 아예 배제되었고 북부는 캐나다가 대신하는 모양새다.

서쪽 땅은 몽땅 서부라고 하는데 그도 성에 차지 않은 듯 나머지의 절반쯤 되는 윗부분도 중서부로 이름 붙였다. 내륙의 3분의 2는 됨직한 땅이 서부인 셈이다. 그게 염치없기라도 한 듯 중서부의 아래쪽은 통째로 남부에게 선심을 썼다. 북부도 아닌 중서부의 아래가 남부라니, 말이 안되지만 미국은 그렇게 분류되었다. 하지만 서부는 땅덩어리만 크게 차지했을 뿐 실속은 없어보인다. 미국 인구의 3분의 1 정도만 서부에 분포되어 있고 나머지 3분의 2는 북동부와 남부에 밀집되어 있다. 땅의 크기와 정 반대의 분포다.

4개 지역들 가운데 월등하게 작아 보이는 북동부는 캐나다의 오른쪽 발치에 들러붙어 그런 이름을 얻은 모양이다. 거꾸로 든 닭다리 모양의 이 지역은 따돌림 당한 아이처럼 주눅이라도 들 법하지만 그 반대다. 오동통한 닭다리 모양의 작은 북동부가 경제와 문화수준이 가장 앞서가는 알짜배기 지역이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의 대도시 뉴욕이 거기 있고 미국의 독립을 선언한 역사의 도시 필라델피아와 여섯 개의 아이비리그 대학들도 그곳에 모여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뉴욕과 매사추세츠 위쪽의 4개주는 올라가보지 못했다. 새해를 맞는 2009년도의 뉴욕과 필라델피아는 추워도 너무 추웠었다. 겨울 없는 플로리다 생활에 익숙했던 내게 연말연시의 그곳 추위는 정말로 끔찍했다. 실내에 있어도 온몸이 덜덜 민망하게 떨릴 정도였다. 바깥에는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지인들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앉아 차창너머로 흐르는 파노라마 관광을 했다.

내가 머물렀던 지인들의 집도 내게는 얼음궁전들 같았다. 나를 위해 히터를 한껏 올려주었지만 내게만 달려드는 한기는 몰아낼 수 없었다. 결국 계획했던 날짜를 채우지 못하고 일 주일이 되던 날 남쪽으로의 탈출을 감행하고 말았다.

여름에 다시 찾기로 했던 뉴욕은 캐나다로 올라가 나이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토론토 시내 관광을 즐기는 것으로 대신하고 말았다. 무지막지했던 추위의 기억과, 문명보다는 자연에 끌리는 내 촌스러운 취향이 어우러져 빗어낸 결과였다. 때문에 내륙의 4개주와 2개의 섬은 내가 아직도 가보지 못한 6개주로 남겨졌다.


뉴욕보다 더 추운 자락동

내가 정착한 자락동은 그런 뉴욕보다 위도로 2도가량이 더 높다. 겨울은 면도날처럼 새파랗게 춥고 길며, 따가운 불볕 여름은 봄 가을까지 앞뒤에 붙여도 겨울보다 짧다. 일년의 6개월 이상이 영하의 날씨라는 얘기다.

내 첫번째의 봄은 6월에도 눈이 내렸더랬다. 3월을 봄으로 여겼던 나는 5월을 채우고 6월까지 이어진 된추위에 채소와 꽃 모종들을 세번이나 다시 심어야 했다. 토박이들조차 예상 못한 6월의 눈발에 모두가 다시 모종을 심어야 했던 2019년이었다. 방향감각 없는 나라 미국의 계절감각 없는 지역이었다.

미국에서 바람이 가장 많다는 와이오밍과 네브라스카 주 사이에 있는 자락동은 늘 건조했고 땅은 메말랐다. 때문에 나무 한 그루 없는 넓은 목초지들이 대부분이어서 목축업이 주를 이루었다. 자동차를 몰고 드넓은 미국땅을 종횡으로 누비고 다녔었지만 자락동은 내 눈에도 기억에도 든 적이 없는 생면부지의 마을이었다. 어쩌면 공원 옆의 캠프그라운드에서 하룻밤 텐트를 쳤던 적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에서 내려 찬찬히 둘러보게 할 끌림이 전혀 없는 마을인지라 하룻밤의 어둠만 비껴갔을 터였다. 기억이 있다해도 텐트 속의 어둑한 기억에 불과 할 것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자락동에 정착했다. 비에 젖기를 좋아하고 산의 푸르름을 즐기는 내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마을의 주민이 되었다. 미국 땅 중앙의 북부에 자리했지만 중서부로 분류되는 곳, 그러나 나는 앞의 ‘중’은 빼고 서부라고 소개하기를 즐겼다. 영화적이며 친근한 느낌을 주는데다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같다는 허영심 때문이었다. 게다가 서부의 경계선에 바투 자리하고 있으니 서부라고 해도 순전한 억지는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다.

사진: cattle branding (소 낙인 찍기)

자락동 사람들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카우보이로 규정하는 것 같았다. 남녀를 불문하고 카우보이 복장 한두 세트는 다 갖추고 있으며, 전통 서부인들 만의 경기나 행사를 자주 개최하고, 서부인들 만의 전통을 이어받은 삶을 살고 있었다. 청바지나 가죽바지에 매치시킨 번쩍이는 거대한 버클의 참피온 벨트와 권총 케이스가 달린 건벨트gunbelt, 정수리가 움푹 들어간 물결모양의 빳빳한 카우보이 모자, 주머니가 많고 술이 늘어뜨려진 쎄무가죽 조끼, 동굴벽화 같은 무늬를 새기고 박차를 붙인 날렵한 모양의 부츠… 서너 살 밖에 안되는 어린 아이들까지 그런 카우보이 차림을 하고 제 덩치의 몇 배가 되는 커다란 말 위에 올라앉은 모습은 감탄스러울만치 근사했다.

나는 지역의 행사나 축제가 있으면 기를 쓰고 찾아다녔다. 전통결혼식과 장례식은 물론 소들에게 낙인을 찍고 거세를 하는 현장과, 봄날의 비옥한 초원으로 소떼를 이동시키고 가을이면 농장으로 되몰아 오는 장관들을 열심히 구경하고 다녔다. 우리 교회의 가장 어른이자 농장주인 미세스 홈즈는 자신들의 전통을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가축들에게 낙인을 찍고 거세를 하는 것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잔인하지? It's cruel, isn it?" 그녀가 민망스러운 듯 내게 말했다.

"아니요. 이건 학대가 아니라 관행이잖아요. It's not cruel. It's a common pracrice in farming." 나는 열심히 대답했다. 위로와 아부가 곁들여진 대답이었다.


자락동에 살으리랏다

수백 마리의 소떼가 여유롭게 풀을 뜯고 말 탄 어른과 아이들이 마음껏 질주하는 광활한 초원을 보면 자주 부모님 생각이 났다. 산비탈 조각밭에 엎드려 감자알보다 더 많은 돌멩이들을 캐 밭두렁으로 내던지던 마디 진 손이 떠올랐다. 이 넓은 땅 한 조각만 떼서 갔다 드렸어도,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

사실 그런 생각은 내 첫번째의 미국횡단에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플로리다에서 출발해 조지아와 앨라배마를 지나고, 미시시피를 가로 질러 아칸소의 평원에 들어섰을 때 숨이 멎는 듯한 경이를 느꼈다. 감탄을 넘어 호되게 부딪혀 온 충격이었다. 바다보다 광활한, 바다에는 물결이라도 있지만, 그 평원은 그저 근엄한 침묵으로 아스라히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내 부모님은 세상에 이렇게 넓은 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다 가셨다. 멎을 것 같던 호흡이 바람 같은 한숨으로 쏟아져 나왔다. 한숨 같은 흐느낌이었다. 오랜 흐느낌이었다.

엄마를 찾아 조각밭으로 달려가던 어린 내 모습도 흐느낌을 따라왔다. 맨발로 도랑을 건너고 이무기가 산다는 저수지와 서낭당을 지나고 산혈을 잘라서 생긴 높다란 고개를 넘어 국민학교를 다녔던 산골 아이가 보였다. 산꼭대기로 뛰어 올라가 아득한 구름 너머의 세상을 갈망했던 아이, 무작정 달아나기를 좋아해 부모님을 애태웠던 아이가 보였다.

부모님과 그 산골아이가 생각날 때마다 자락동의 의미가 조금씩 형성되어 갔다. 아이가 갈망했던 세상과 조금씩 일치되어 갔다. 쟁기 멘 소가 들어설 수 없을 만큼 좁고 비탈진 부모님의 땅도, 가난한 마을을 에워쌓던 벌거벗은 야산들도 모두가 벗어나고팠던 아이, 그 아이가 갈망했던 구름 너머의 세상과 자꾸만 닮아갔다. 하늘과 땅이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끝 간데 없는 세상, 자락동의 언덕은 그런 세상 한귀퉁이를 갈무리하고 있었다. 날마다 언덕에 오르는 늙은 아이는 그런 세상이 좋아서 이곳에 정착했을지도 몰랐다. 방향을 잃고 계절이 없는 삶을 살아온 산골 아이가 이제는 방향을 잡고 계절을 인지해야 할 곳으로 이 자락동을 선택했을지도 몰랐다.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잃어버린 고향 한 조각을 이곳에 심어 비탈이 없는 넓은 평지로 싹트고 푸르르게 자라기를 염원하면서...

송아지처럼 착하고 말처럼 부지런한 리틀 카우보이, 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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