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우주, 세상은 물음표, 남는 건 시간

어렵게 이룬 꿈을 비로소 내려 놓으며

by 김호빈

길을 잃었다. 분명 나는 목표를 향해 질주했다. 나는 아우토반을 달리는 포르쉐처럼, 경마장을 뺑뺑 도는 경주마처럼, 우주 속으로 폭발하듯 치솟는 스페이스X의 로켓처럼 굴었다. 때로는 잠깐 멈추면 사고라도 낼 것처럼 불안해했고, 가끔은 환기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일탈 혹은 도박을 즐겼으며, 종종 용두사미와 작심삼일의 첨병이 됐다. 질주와 휴식, 방황을 반복하면서도 가야할 곳이 명확했기에 목적지에 다다르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꿈을 이뤘다.


꿈. 그것은 내가 한평생(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오랫동안) 기도하던 첫사랑 같은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뭐든지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귀 기울여 듣는 수동적인 포지션에 속했으며, 삐딱한 자세로 인간과 사회 그리고 우주에 대해 온갖 불평불만과 궁금증을 품고 살았으니, 기자라는 꿈을 키워온 건 어찌보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이른바 '언론고시' 준비는 심지어 재밌었다. 거창해 보이지만 한량처럼 책 읽고 글 쓰는 게 전부였기 때문에.


그럼에도 나는 그 꿈이라는 것을 1년 만에 그만뒀다. 그렇다면 나는 꿈을 이뤘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꿈을 뭐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 그보다 먼저 꿈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근본적인 의문들이 따라 붙었다.


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흔히 알려진 꿈은 장래희망 그 자체다. 나는 기자가 될 거야, 나는 피아니스트가 될 거야, 나는 공무원이 될 거야, 이런 직업적 차원에서의 꿈. 그리고 또 다른 의미의 꿈은 장래희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무형의 가치다. 기자가 되어 세상을 바꿔야지, 피아니스트로서 사람들을 감동시켜야지, 공무원이 되면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겠지. 물론 그게 돈이나 명예, 존경과 사랑, 사회적 지위 등이 될 수도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나는 전자의 꿈은 이뤘다고 볼 수 있다. 무언가 되긴 했고 하긴 했으며 남기긴 했으니까.


문제는 꿈을 가짐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의미 찾기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나는 이상과 현실 속에서 자주 고민에 빠졌는데 그럴 때마다 늘 현실에 굴복해야만 했다. 급박한 업무 시간, 비상식적인 규칙과 규율, 불가항력적인 불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수호하는 군대식 위계와 상명하복. 그 사이에서 나는 점점 활력을 잃었고 의기소침해졌으며 기계적으로 일했다. 앵무새처럼 읊는 게 쉽고 편한 길이었다. 기자로서의 집념보다 상념과 체념이 앞서는 날들이 반복됐다. 그러니 그 사이에서 내가 진정으로 꿈꾸던 가치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의미 찾기에 실패했다기보다는 의미 찾기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걸 어떻게 확신할까,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보다 먼저 꿈을 '이룬' 사람들의 모습을 세심히 관찰했다. 나는 늘 인생의 갈림길마다 롤모델 찾기에 골몰하는 버릇이 있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듯 해부했다. 내가 그리는 상상 속 롤모델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었다. 종종 내 귀를 파고든 "오늘 하루도 잘 때웠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그렇게 환상이 조각났다.


5년 뒤, 10년 뒤, 내가 꿈꾸던 미래가 안 그려졌다. 그냥 그저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았다. 퀭한 눈과 볼록한 술배를 가진, 더이상 번뜩이지 않는 빈곤한 철학을 안고 사는, 짜증이 디폴트값인, 그럭저럭한 일개 직장인으로 말이다. 그렇게 될 거였으면 애초에 기자를 선택하지도 않았을 텐데, 생각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나는 불길한 미래가 싹틔우고 있는 노란 싹수를 멍하니 주시했다.


천천히 생각해 보면 사실 꿈을 이룬 순간부터 나는 늘 시들어 가고 있었다. 푸르고 울창했던 나만의 숲이, 일평생 정성으로 가꿔온 녹지가, 싱그럽게 맺힌 열매들이, 하나둘 차례로 사그라드는 과정이었다. 읽고 쓰는 게 좋았던 나는 점점 기계적으로 읽고 쓰는 AI가 됐다. 사람들의 말을 점점 심각하게 꼬아듣기 시작했으며(업계에서는 비판적 듣기라고 자위한다), 더이상 듣는 것 자체가 지긋지긋해졌다. 그러니 인간과 사회 그리고 우주에 대한 불평불만과 궁금증도 흐릿해졌다. 나, 너, 우리 모두가 톱니바퀴 직장인이었다. 위 아 더 바퀴!


"우리 회사에는 당신이 다치면서까지 해야할 중요한 일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약 1년 전 수습기자 시절 울산 동구에 위치한 HD현대중공업 울산공장을 견학하면서 본 문구다. 거의 모든 건물 외벽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는데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 문구가 갑자기 떠오른 건 나 역시 내가 평생 가꿔온 나만의 숲과 녹지, 열매들이 더이상 소실되는 것을 지켜 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다치면서까지 해야할 중요한 일은 단 하나도 없다.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는 게 느껴지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사표를 던졌다.(상투적 표현일뿐 요즘 사표는 온라인으로 고상하게 결재한다.)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병상련을 읊으며 나를 말렸다. 너가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 것 같은데, 나도 옛날에 다 너랑 똑같은 생각을 했었어, 어쩌겠니 버텨야지, 직장인처럼 편하게 살아봐, 이런 식으로. 그러면 다시 되돌이표, 그럴거면 애초에 기자를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지금이 아니면 이 업계에서 탈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루라도 빨리,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그만두는 게 맞다고 결론 내렸다. 안전제일!


마음을 정리하고 글로 풀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꼭 써야만 했다. 마침표를 명확하게 찍어야 또 다른 문장과 문단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꿈을 이루고, 마침내 꿈을 내려놓기까지의 과정을 되새김질하는 것은 아픈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되짚으면서 종종 과거를 부정하는, 내 얼굴에 먹칠하는, 누워서 침을 뱉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깨달은 것은 결코 '잘못된' 선택은 없다는 점이다. 모든 것은 경험으로 치환될 뿐이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그게 바로 인생이다. 인생은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자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내 인생은 단순히 '평생 직장'에 몸을 담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이제부터 세상을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 보려 한다. 인생은 우주, 세상은 물음표, 남는 건 시간이다. 완벽한 삼위일체. 시작해 보자, 나는 어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