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예술로 인정할 수 있는가?

by kim hojin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이 전시되고 심지어 경매에서 거래되며, 상을 받는 장면까지 목격한다. 그럴 때마다 제기되는 질문은 단순하다. 그것을 과연 예술이라 할 수 있는가?

예술을 규정하는 전통적 기준은 작가의 의도, 창작의 독창성, 그리고 사회적 제도의 승인에 있었다. 그러나 현대예술은 이미 뒤샹 이후 이러한 기준을 해체해왔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은 예술을 본질이 아니라 맥락과 해석 속에서 성립하게 했다. 조지 딕키가 말한 제도적 정의나 아서 단토의 ‘예술세계(artworld)’ 개념은 바로 이러한 맥락을 지적한다. 어떤 것이 예술로 받아들여지느냐는 사회적 장치와 해석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 바로 감상자가 작품 앞에 서서 경험하는 감정적 울림이다. 순간적이고 피상적인 감탄이 아니라 시간이 멈추고 시선이 지속되며 태도까지 흔들리게 하는 깊은 차원의 체험이다. 이것은 개인의 어떤 상태와 작품에 대한 열림에 달려 있으며 같은 작품이라도 감상자의 처지와 준비성,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수잔 손택이 강조했듯 해석 이전에 감각과 충격으로 다가오는 체험이야말로 예술 경험의 본질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도 감상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면 이미 예술로 작동한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은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제작 주체가 아니라 수용자의 경험이다. 감상자가 작품 앞에서 오롯이 머물며 자신을 흔드는 체험을 한다면 그 순간 작품은 예술이 된다. 그것이 인공지능의 산출물이든 인간의 창작물이든 차이는 없다.


물론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도 존재한다. 의도가 없는 산출은 예술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도 자체가 아니라 의미가 발생하는 장면을 봐야 한다. 의미는 언제나 맥락과 해석, 그리고 감상자의 울림 속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예술로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대신 “누가 그것을 예술로 경험했는가”라는 문제로 이동한다.


결국 예술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이분법적 질문이 아니다. 인공지능의 산출물이 예술인가 아닌가를 묻는 대신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예술인가? 인간 예술과 같은 축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맥락과 해석, 그리고 울림의 차원에서 성립하는 또 다른 예술. 바로 그 지점에서 인공지능 미학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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