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야기
어김없이 찾아온 나이트 근무.
처녀 때는 나이트 근무가 좋았다. 바쁘지도 않고 야간 근무 수당까지 챙길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stable 한 나이트 근무 때는 선배들이 많이 혼내지 않았으니까.
나이트 근무를 23살 때부터 16년째 하고 있다.
"내가 이 지긋지긋한 간호사 일을 3년 이상 하면 진짜 손에 장을 지진다"
했던 게 약 16년 전 얘기이다. 설마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삼교대 근무를 하고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나와 같이 신규 간호사가 되었던 친구들. 이제 하나 아이가 하나둘씩 생기고, 거의 유휴간호사로 일을 쉬고 있다.
그중 유일하게, 삼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 나. 대단하다고 해야 되나, 징글징글 하다고 해야 되나?
고요한 밤 2시. 앰풀을 아무 생각 없이 까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애들은 잘 자고 있을까?"
"내일 아침에는 아침밥을 뭘 해줘야 하지?"
"내일은 체육복 입는 날이었나?"
뼛속까지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일하면서도 오로지 아이들 생각뿐....
체력이 하루하루 떨어진다. 나이 드니 예전 같지 않다. 이건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요즘 내가 그렇다. 나이트 근무가 끝나고, 집에 갈 때 정신을 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위험하다는 졸음운전! 요즘 자꾸 하고 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나이트 끝나고 퇴근할 때도 쌩쌩했는데, 이젠 너무 졸리다.오늘도 신호에 걸렸는데, 잠깐 졸았던 것 같다. 정말 이러다 큰일 날까 싶어서, 체력을 길러야겠다 싶었다.
아침에 퇴근해서, 잠깐 쪽잠 30분을 자고 8시 반쯤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고, 머리도 이쁘게 묶어 주고, 등원 준비를 시켰다.
빠이빠이 작별 인사를 하고 신랑이 등원을 시켜주었다. 나는 바로 취침 모드~
오후 두시쯤 일어나 배고픈데 밥이 없다. 급하게 라면 휘리릭 끓여서 클리어.
신기하다. 나이트 근무가 고되고 힘들어, 입맛이 없을 법도 한데, 절대 입맛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걸 좋다고 해야 되나??
에구, 한숨이 나오는 우리 집 풍경.
여기는 지극히 깨끗한 일부이다. 빠릿빠릿하게 청소하고, 아이들이 등원하기 전까지 모든 걸 끝내놔야 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물먹은 솜처럼, 몸이 축축 처지고, 가슴이 답답하다. 온몸이 후려맞는 것처럼 아프다. 만사가 귀찮다.
어쩌어찌 하다 보니 벌써 4시 아이들 하원 시간.
거의 이브닝 (오후 근무) 근무를 하기 때문에, 평일에 아이들을 하원 시킬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트 근무가 때로는 소중하다. 아이들이 유치원 차에서 내려, 엄마에게 안기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먼발치에서, 노란 유치원 버스가 오면, 아이들이 창문에 미어캣처럼 얼굴을 내밀고, 엄마를 보며 활짝 웃어 손을 흔들어 준다.
"아고 내 새끼들"
"내가 너희들 때문에 산다"
삼교대 근무를 하면서, 아이들을 친정어머니께 맡기는 처지라서, 사교육은 엄두도 못 낸다. 학원을 보내게 되면, 엄마가 아이들을 따로 픽업해야 되는데, 부탁드리기 눈치도 보이고, 엄마 힘들어하실까 봐.
(사실 엄마가 학원 보내는 거 싫어하심.나중에 다 부질없다고)
그래서 유치원에서 배우는 피아노와, 일주일에 한번 하는 미술 수업 말고는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대신 매일 책을 읽어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5권 이상은 읽어주자! 나의 철칙.
나이트 근무도 예외는 없다.
오늘은 신랑도 오후 근무이고 (밤 10시에 퇴근)
출근 전에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책까지 읽어주었다. (뿌듯)
" 공주들, 할머니네 가자. 오늘 엄마가 나이트라서, 할머니네서 자야 할 것 같아"
이제는 너무 당연해져서, 싫은 기색도 없는 착한 아이들. 순순히 따라나선다.
할머니 댁에 가는 공주들. 친정어머니가 요즘 무릎이며 어깨며 허리가 안 아픈 곳이 없어서, 힘드실까 봐.. 아이들 목욕까지 싹 씻겨서 출발!
나도 때로는 아이로 돌아가고 싶다. 항상 모든 것이 신나는 아이들. 걱정 근심 따위 없고, 그 상황이 즐거우면 즐거운 거다. 통통 튀는 발걸음, 씩씩한 우리 딸들
친정에 아이들을 맡기러 가는 길, 괜스레 밤에 일나가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 00 이네 엄마는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퇴근하는데.. 엄마는 왜 밤에 일나가??"
"엄마 오늘은 할머니 집에서 자야 해? 내일은 누가 유치원 데려다주는데?"
상황은 이러하지만, 적응을 잘해줬던 아이들. 육아서에 보면 일하는 엄마라고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나와 있지만.
때로는 미안함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항상 그랬듯이, 안쓰러움을 오늘도 물질적인 것으로 채워 주었다.
편의점에 가서, 영양가 없는 뽀로로 주스와, 와우 풍선껌, 그리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네일 스티커까지. 그냥 사주었다.
주말에 일나가서 미안하니까, 뽀로로 하우스 하나사주고, 어린이날 일나가서 또 미안하니까, 미미의 2층 집 사주고, 그렇게 해서 늘어난 장난감들...
이젠 안 그러겠다고 다짐했건만, 아마 고칠 수 없을 것 같다.
"애들 이제 잠들었어~ 수고해"
친절하게 카톡까지 주시는 우리 친정엄마...
퇴근 후 엉망진창인 집을 치워주는 우리 신랑...
항상 씩씩한 우리 두 공주님.
정말 감사하고, 사랑한다!
나이트 근무할 때는 이렇게나 생각이 많아진다. 뭐랄까? 너무 징징거리나??
힘들어도 아직은 할말하니까 하는 거지 뭐.
그래서 결론은, 힘은 드는데, 가족들에게 고맙다고, 아직 밤에 일할 수 있는 체력이 남아 있어서 내 몸에도 감사하다고 바로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