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시절(Leeds 時節)을 꿈꾸며

당신의 화려한 날들은 어디에...

by 나꿈


리즈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청춘을 생각할 때 심장은 요동친다.
...
누구든지 한 번 사는 삶 속에서 리즈 시절을 꿈꾸는 것은 자유이고 인간의 특권이다.



삶은 길을 걷는 것과 같은 것일까.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길들을 만나게 된다. 평평한 길도 있고 때때로 울퉁불퉁한 길도 만난다. 곡선 길도 있으며 직선으로 뻗은 곧은 길도 있다.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게 되고 유난히 도드라지는 순간도 만나고 희미하여 기억에도 남지 않는 그냥 잊히는 시절도 있는 것 같다. 일상적인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연수나 특별한 스케줄이 생겨 세미나 등에 참가해보면 간혹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할 일이 생긴다. 가령 "다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서 살아보고 싶어요?" 라거나 "당신의 삶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절은 언제인가요?" 혹은 "지난 시절 속에서 이레이즈(erase)시키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그건 무엇이죠?" 등의 평소에 깊이 생각지 못했던 질문을 받고 당황스러운 적도 있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시공을 초월하는 SF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픽션에서는 시공을 초월한 자유로운 이동으로 삭제하고 싶거나 수정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 사는 우리는 지난날을 이레이즈 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수정조차 어려워 더욱 쫄깃쫄깃한 순간순간을 경험하며 사는 것 같다. 이처럼 속마음을 염탐하는 일은 집단상담과 같은 활동에서는 약방의 감초처럼 끼워넣기도 하고, 놀이처럼 재미를 가미하여 소통과 친교를 도모하기도 한다. 상담활동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와 같은 물음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묵은 고민을 해소하는 기능도 있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우리 몸은 수시로 씻고 치장도 하지만 감춰진 마음과 정신은 너무 잘 알지만 구석구석 돌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상담활동 중에 가끔 눈물도 흘리게 되는데, 그런 장면을 보노라면 왠지 그 눈물은 마음과 정신을 샤워시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심신을 정화하고 샤워시키는 울음은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입증한 실험 결과도 있다고 하니 마음과 정신에 새긴 견고한 기억의 합작품인 눈물은 어떤 명약보다도 가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연구자들 중에 이른바 감정적 눈물에는 스트레스와 관련된 호르몬이 들어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하니 놀라울 뿐이다. 서로 맘을 터놓고 편하게 하는 이야기 중에 나오는 눈물은 단순히 물질 중의 하나인 액체 그 이상의 오묘한 맛을 곁들인 스트레스를 배출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울음을 통해 감정적 배출을 하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 심리적 항상성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사람들이 세파에 시달린 후 평상심 즉, 평탄한 감정 상태로 되돌아가기 위해 때로는 울음이나 눈물이 오작교처럼 필요한 것 같다.




인간의 기억은 몸과 마음을 지배하기도 한다. 눈물이 인간 내면의 곪은 상태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는 반면, 리즈 시절과 같은 좋은 기억으로 더욱 사기충천을 북돋우는 경우도 있다. 주로 스타플레이어들에게 사용되는 칭찬 세례 중에 리즈 시절이라는 말이 있다. 외모, 인기, 실력 따위가 절정에 올라 가장 좋은 전성기를 이르는 용어이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 선수 스미스(Smith, A.)가 축구 클럽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던 때를 이르던 말에서 비롯하였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리즈 시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좋은 기억은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슬럼프에 빠진 순간에는 거기서 헤쳐 나오게 하는 힘도 주는 것 같다. 인간은 신이 만든 가장 복잡하고 불가사의한 수수께끼 같은 존재이다. 'A는 B이다'와 같은 명제로 논증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리즈 시절은 인간에게 있어 단순히 즐거웠고 신났던 순간에 머물지 않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허공으로 비상하는 힘도 줄 수가 있는 것 같다. 위축이나 무기력과 반대되는 자신감과 삶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는 것일 수도 있다. 리즈 시절과 같은 좋은 경험을 기억으로 되살리는 일은 건강한 정신과 신체는 물론이고 삶 속에서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힘의 원천이며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도 하는 리즈 시절은 반드시 의도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며,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추구하고 갈망해야 하는 대상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스타들이 있다. 2021년 7월 현재 리즈 시절을 보내고 있는 스타들은 누구일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역시 그룹 방탄소년단이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방탄소년단이 '퍼미션 투 댄스'로 자신들의 곡인 '버터'를 밀어내고 '핫 100' 1위를 기록하며, 미국 역사상 (빌보드 '핫 100') 1위를 바통 터치한 극소수의 아티스트 대열에 합류했다"라고 전했다. 또한, 온라인 연예매체 벌처(Vulture)는 "그 누구도 방탄소년단이 차트 1위에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전 곡 '버터'가 지키던 빌보드 '핫 100' 1위를 '퍼미션 투 댄스'로 교체하는 희귀한 위업을 달성했다"라고 극찬했다. 'It’s the thought of being young When your heart’s just like a drum... 청춘을 생각할 때 심장은 마치 드럼처럼 요동치고...'로 이어지는 노래 가사도 젊은이들의 리즈 시절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BTS는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운 위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손흥민의 믿을 수 없는 골 폭풍도 그렇고, 트로트 가수들의 인기 차트 점령도 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리즈 시절은 아닐까.



스타들에게만 리즈 시절이 있는 것일까.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리즈 시절을 꿈꿀 수 있다. 또 그래야 한다. 필부필부(匹夫匹婦)나 장삼이사(張三李四)인들 화려한 순간순간들이 절정에 올라 전성기를 구가하지 말란 법이 있는가. 누구든지 자신만의 리즈 시절을 만들고 구축하여 길고 긴 인생길에서 삶의 지렛대를 만들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 아닌가. 공자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고 학문의 과정을 술회한 것으로 30세를 이립(而立),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 60세를 이순(耳順),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하였다. 나이와 상관없이 어느 시기라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다면 그 시기가 곧 그 사람의 리즈 시절이 아닐까.




스타들의 리즈 시절을 보며 지천명에 접어든 시기에 지금껏 삶을 지탱한 시절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삶에서 몸과 정신을 지배하며 떠받들어 온 시절은 언제일까. 살아오면서 힘든 고비에서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삶에 맞설 때 힘이 되어 준 것은 30대 초중반의 멋진 날들이 준 기억들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10여 년간은 학문에 깊이 빠졌던 시기이고 모든 관문이 순조롭게 열려서 얻어야 할 것을 모조리 얻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우선, 박사과정 시절에 대학원생들이 꿈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일 두 가지로 서프라이즈를 했던 적이 있다. 아니 꿈엔들 어떻게 그렇게 절묘한 조합을 그려낼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한 번은 박사과정을 수료할 즈음에 국비유학으로 논문을 준비할 수 있는 시험에 한 번에 통과되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직장에서 봉급이 나오고 매달 장학금 약 20만 엔이라는 거금을 받는 조건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또 한 번은 더 나아가 학문 연구의 여건이 조성된 국외 대학원에서 연구에 몰입하여 귀국과 동시에 일사천리로 논문 심사 및 제출까지 다이렉트로 해내었던 기억은 지금도 온전히 나와 함께 하고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를 전후로 홈스테이에서 호스트로 참여해 외국인들을 캐어하며 고장을 소개하기도 하고 문화를 공유하며 소통을 이어갔다. 그런 연유로 일본 홈스테이에 게스트로 참가하고 한일문화교류연맹의 지원으로 10여 일간 일본의 교육과 문화를 탐방하는 경험도 가졌다. 또한 전국 교육계획서 공모대회에서 입상하여 소속 직장에 800여 만원의 상금을 안겨주기도 하고, 유학생활 중에는 게이오대에서 있었던 일본능력시험 JLPT 1급에도 한 번만에 무사통과를 하기도 했다. 그 당시를 전후로 대학 강의도 수년간 했지만 역시 교육은 나이가 어린 피교육자를 대상으로 할 때 그 효과를 더욱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어김없이 착착 진행되었던 시절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리즈 시절이라 할 수 있을까. 나중에 지나간 일들을 떠올려보니 시대를 거슬러 읽히고 있는 파울로 코엘뇨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소년 산티아고의 끝없는 여정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밤잠을 설치며 책과 씨름한 고뇌의 시간이나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느낀 통쾌한 희열의 순간들은 빠짐없이 몸과 마음속에 투영되어 알게 모르게 삶의 에너지와 열정으로 각인되었다. 교직생활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을 때마다 30대 시절의 화려한 순간들은 늘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어 주었던 것 같다. 겁이 없었던 기세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걸까. '청춘을 생각할 때 심장은 요동친다'라고 노래하며 진정한 리즈 시절을 보내고 있는 스타처럼 청춘을 다시 닮아가고 살아갈 수도 있는 걸까.




최근에 또 한 번 지난날 30대 청년이었던 리즈 시절에 버금가는 서프라이즈를 경험하고 있다. 우선, 직장에서 경험한 일들을 엮은 브런치 북을 몇 권 발간하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며 여전히 그 일이 진행형이다. 또 지천명에 맡은 아이들이나 부모들과의 소통도 원만했던 것 같다. 아무리 작은 인연이어도 가벼이 여길 수는 없다. 이런 일들 하나하나가 다른 시기와 달리 조금 특별하긴 했지만 감히 리즈 시절로 명명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리즈 시절이란 자기 자신만의 생각에 도취된 개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열렬히 호응하고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펙트마저 뚜렷해야 스스로 자부심이 생기지 않겠는가. 교직생활을 마감하려는 순간, 마지막 날에 지금까지 함께 한 아이들과 부모들의 마음이 어우러져 나만의 새로운 리즈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축복이고 영광이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지난날의 화려한 기억들이나 지금 마지막 순간의 일들이 단순히 운이 좋아서 생긴 일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일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옳은 생각과 그것을 향한 부단한 애씀이 시너지를 발휘하면 예기치 못한 인생의 리즈 시절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주어진 삶의 좋은 기회를 가꾸어 가다 보면 더욱 화려한 리즈 시절로 부활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든지 한 번 사는 삶 속에서 리즈 시절을 꿈꾸는 것은 자유이고 인간의 특권이다. 몸을 사리고 눈앞의 이해 득실에 현혹된다면 리즈 시절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불혹이든 지천명이든 아니면 이순이나 종심의 나이에 접어든다 한들 어떤가.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부단한 삶에 대한 갈망으로 동경하고 꿈을 실현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만의 리즈 시절을 갖게 되지 않을까. 꿈꾸는 자만이 널려있는 리즈 시절, 그 화려한 날도 덤으로 챙길 수 있는 것 같다. 스타들의 화려한 시절에 박수만 치고 있을 일인가. 자신만의 리즈 시절을 상상하며 그 시절의 젊은 기상과 삶의 동력을 이어가도록 하라. 그리하면 70대 종심의 노인인들 불혹으로 살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리즈 시절은 2~30대에나 있는 유행어쯤으로 착각하면 오해다.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르는 그 순간까지 리즈 시절은 열려 있다. 모두 리즈 시절을 꿈꾸며 삶이 마감되는 그날까지 힘차게 살아내어야 한다. 삶을, 인생을, 더 위대하게!





이전 15화한여름밤 텅 빈 해운대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