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우편함에 하얀 편지 한 통이 꽂혀 있답니다. 그손 편지는친근한 텃새인까치들이 지저귀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을떠오르게 합니다. 단 1초 만에 전할 수 있는 소식이 며칠이나 걸려서 느리게 도착한 우편물이죠. 우체통을 거쳐 전해지는 소식을담은 편지는 어쩌면 느린 삶을 즐기는 삶의 한 단면이라고나 할까요. 옛날우체부들이 반가운 소식을 직접 손에서 손으로 전해주듯이 연하장이 담긴 손 편지는 느리게 느리게 왔지만 좋은 기운을 담고 있습니다.
요즘 우체통에는 원하지 않는 우편물들이 자주 꽂혀 있는 경우가 다반사지요. 또 요구사항들을 담은 우편물이 우체통을 차지하다 보니 우체통이나 우편물이 귀찮은 적도 많답니다. 각종 광고지들이 그렇고, 세금부과 통지문이 그렇습니다. 더구나 바쁘게 다니면서 부지불식간에 교통규칙을 어긴 사진이 포함된 범칙금 독촉장과 같이 가슴을 철렁 쓸어내리게 하는 경우도 있죠. 그럴 땐 친근한 우체통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간절곶 소망우체통
얼마 전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간절곶에 갔다가 명성이 자자한 '소망우체통'을 본 적이 있답니다. 저희 집 우체통도 때론 소망우체통이 되기도 해요. 옛날에 받아본 적이 있는 우체부가 전해주는 듯한 편지 봉투가 우편함에 깔끔하게 꽂혀 있을때입니다. 매년 구정 설날에 보내오던 연하장을 담은 편지가 오는 날이죠. 반가운 편지이지요. 그 편지는 좋은 기운을 담은 소식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까치가 물어다 주는 손 편지 같아서 무엇보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더욱 좋은 건 옛날 우체부 아저씨의 그 느낌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여 기다려지는 우편물입니다. 많은 공이 들어간 연하장이긴 하나 단 돈 몇백 원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시간이 됩니다.
요즘처럼 정보가 손쉽게 만들어지고 퍼져나가는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라서 그럴까요? 문자로 새해 인사나 덕담을 주고받는 시대라서 그럴까요? 아니면 레트로에 빠진 감성 때문일까요? 어쨌든 그 손 편지가 가슴에 오래 머물고 있는 건 진심이랍니다. 느린 삶의 진면목을 느끼게 해주기도 합니다. '무엇이 중한데?'라는 우스갯소리도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새롭고 참신하고 미래를 의미하는 것만 각광받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무엇이, 지금, 더 큰 울림을 주는지 되짚어보는 기회도 가지게 됩니다. 어쩌면 아날로그 지향, 레트로 지향이 또 다른 미래지향은 아닐는지 반문해보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그 연하장을 받으면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 벽에 붙여두고 있답니다. 몇 년 전부터 벽에 붙여서 모으다 보니 여러 장이 붙여져 있습니다. 거실을 오고 가며 가끔 그 연하장이 보이면 또 그 따뜻한 맘과 연하장의 새해 기운을 받기도 하여 좋습니다. 작지만 정성이 들어간 연하장이어서 함부로 하기에는 너무 큰 마음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서예가 신경재 선생의 '천복만당' 연하장
올해 받은 연하장 덕담은 '천복만당'입니다. 연하장에는 옛 선인들이 그렇게 살아왔듯이 귀한 한자를 골라서 사자성어를 만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흔하지 않은 귀한 글자여서 연하장을 받으면 그 뜻을 바로 알아채지 못하기도 합니다. 간혹 옥편을 찾아보거나 포털의 지식백과를 이용해 한자 뜻풀이를 조사하기도 하죠. 그것이 귀찮을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뜻풀이를 나름대로 하면서 새해 덕담의 의미를 더욱 깊게 새기기도 하여 좋습니다. 세상의 이치나 삶의 의미는 바라보기 나름이고, 맘먹기 나름이라는 진리를 따르면 그런 귀찮은 일도 즐겁고 보람된 일로 바뀌기도 하니까요.
올해 연하장을 받아 펼쳐보니첫 글자가 자주 접하는 한자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기복만당'이라고 읽다가, '청복만당'이라고 읽어보기도 했었죠. 그러면서 복의 기운을 가득 받거나 맑고 푸른 복을 많이 받으라는 뜻이라고 여기기로 하였답니다. 하지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아 사자성어 중 첫머리 한자의 정확한 음과 뜻을 몰라 포털에서찾아보기로 했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처음에는 한자 중에 '기' 음독으로 찾았으나 수백 자 중에도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다시 '청'의 음독으로도 찾아보았지만 그 역시 찾을 수 없어 포기하려고 했었답니다. 어렵게 찾느라 낭비한 시간과 들인공이 아까워 이번에는 획수 대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한자의 획수가 18획이라서 수 천자나 되는 18획의 한자를 하나하나 찾아가다 보니 반가운 글자가 보였답니다. '하늘 천'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쉬운 '하늘 천'과 같은 한자라는 것에 놀라기도 했네요. 쉬운 '하늘 천'과 같은 한자이긴 하나 그 뜻풀이를 보면 더욱 상세한 풀이를 해두고 있는 게 특징이었답니다. '푸를 청'과 '기운 기'를 합쳐 만든 연하장에 적힌 사자성어의 첫 글자는 어쩌면 '푸른 기운' 즉, 우주의 신비나 하늘의 푸른 기운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옛글자는 아닐까 하는 상상도 혼자 해보기도 했답니다.글자 하나가 이렇게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주기도 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올해 사자성어 덕담 '천복만당'은 아마도 하늘, 우주, 대자연이 내려주는 복으로 가득 차길 바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그렇게 덕담을 이해하며 한 해를 보내어야겠다는 마음도 다지게 되었답니다.새해 덕담은 그것의 정확한 뜻보다는, 받는 이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올해 계묘년에도 많은 덕담들이 오고 가고 있겠군요.덕담은 덕담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이롭게 해석하여, 맘에 오래도록 남아좋은 뜻이 자신은 물론 온 가족과 주변에 널리 퍼져나가도록 하면 좋겠습니다.새해 인사로 주고받은 덕담들을 떠올리며 마음에 깊이 새겨봅시다. 마음가짐만으로도 복이 절로 손안에 들어오지 않을까요. 언제 시간이 나면 다들 손 글씨로 연하장을 써서 우체통으로 편지 한 장 보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빠르고 바쁜 일상속에서 느리고 느리지만 참신한 서프라이즈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계묘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