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는 시간

프롤로그

by 나꿈


prologue



언젠가 우연한 일로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버린 세월을 탓하며 '터무니없다'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왜? 특정한 어떤 시간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삶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있는데, 또 그렇지 않은 시간들은 그런지 막연한 의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기억에 희미하여 아무런 근거를 찾기 어려운 '터무니없는' 시간들은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해도 될까.




터는 본래 집이나 건축물을 세운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을 헐어도 주춧돌을 놓았던 자리나 기둥을 세웠던 자리들이 흔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흔적조차 없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 집이 있었는지 어떤 구조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터의 무늬(자리)가 없다는 말은 곧 믿을 수가 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사용되는 뜻은 내용이 허황되어 도무지 근거가 없는 것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출처]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시간의 흐름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체감되는 시간의 길이라는 것도 딱히 확정할 수가 없다.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고 그냥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생각하니 울적하고 억울하여 '터무니없다'라는 말만 떠오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며 사는 것 같다. 20대보다는 30대가 빠르고, 30대보다는 40대나 50대가 더 빠르다는 것이 흔히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그런데 시간의 양적 측면에서 비슷한 시간이 흘러갔지만 어느 시기는 '터무니없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데, 또 어느 시기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이 세월만 흘러간 느낌이 드니 '터무니없다'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들을 회상하며 터무니없이 빨리 지나가버린 시간과 비교하며 더디게 천천히 흘러간 시간들을 소환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느리게 사는 삶이 있고 터무니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삶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느림과 빠름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파헤쳐서 무언가를 터득하게 된다면 '느리게 가는 삶' 혹은 '더디게 사는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는 없을까. 50년도 살기 힘들었던 옛 선인들은 인생의 무상함을 애잔한 맘에 담아 시조 속에 읊조리기도 했고, 반대로 그 짧은 50년을 길고 긴 인생살이로 노래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100년을 살아도 그것이 짧고 빠르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으니 머리를 갸우뚱하게 한다.


100세 시대가 현실이 되는 요즘,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에서 저자는 미래보다 하루하루의 시간이 어떤 삶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짧다' '길다'나 '빠름'과 '느림'이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라 인간만이 느끼는 어떤 맥락과 그것에 대한 계산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느리게 간 시간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소소한 지혜나 슬기를 나누는 일은 어쩌면 100년도 살기 힘든 인간의 삶에 지남차와 같은 등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느리게 가는 삶이나 더디게 사는 삶에 대한 이야깃거리는 어쩌면 많을 것 같은데 빠르게 흐른 시간들에는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완행열차를 타고 밤을 지새며 가는 여행과 ktx나 비행기로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비유하면 적당한 비유가 될까. 모두가 빠름에 목을 멜 때 느림에 발을 딛고 서서 유유자적하는 이들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편안하게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파이어족이나 노마드족 등 다양한 특징을 가진 '족(族)'들이 등장하고, 워라벨(work-life balance)을 구호 삼아 외치며 slow slow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사는 삶은 역시 이야깃거리가 많은 느리게 그리고 더디게 사는 삶이라고 해도 될까.




지금 이런 글을 써 내려가려고 하니 확연히 구분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제, 무엇이, 왜'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하기도 하고, 또 그 반대로 빠르게 빛의 속도로 어느 순간을 흘러가게 하는 것인지 어렴풋이 느낌이 오는 것 같다. 앞으로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소환해보면 좀 더 그 구분이 명료해지고 흥미로운 기억들이나 생각지 못한 일들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느리게 더디게 지나간 시간의 편린(片鱗)들을 하나씩 모아 보면 인간의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착각이나 희망 회로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그로 인해 고뇌하고 있다면 그들과 함께 느리게 또 더디게 가는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 작고 소박한 생각들을 나누는 일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미래를 꿈꾸며 우주여행에 들뜬 내노라하는 부호들이 뉴스를 장식하는 세상이지만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