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연세에 낙엽을 쓸며 바람을 느끼며 지낸다는 것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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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100세 시대를 외친다고 누구에게나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속도를 줄이고 느린 삶을 즐기다 보면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나거나 이것저것 볼 것도 많다. 출근시간을 지켜 집을 나서면 늘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간혹 무슨 일로 집에서 조금 늦게 서둘러 나가는 날은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젊은이들보다 더 정확한 아침 생활을 실천하는 97세 노인의 이야기다. 한적한 아침길을 걸어가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늘 등산복 차림으로 산으로 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공부를 잘할 것 같은 아침 일찍 등교하는 여중생도 만난다. 아침마다 산책하는 인상 좋은 복실강아지 두 마리도 만난다. 옅은 회색빛 털을 가지고 귀가 넓고 커서 촐랑촐랑 뛰면 귀가 크게 흔들린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우습기도 하다. 그들과는 특별히 대화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긴 대빗자루와 손잡이가 긴 철재 쓰레받기를 지팡이 삼아 끌면서 낙엽을 한 곳으로 모으는 노인과는 인사를 한 적이 있다. 그가 97세라는 건 2년 전에 만났을 때 연세를 물어보았는데 95세라고 말해주어 알게 되었다. 그때도 늘 아침에 낙엽을 쓸고 있어서 틈을 내어 대화를 잠깐 한 적이 있다. 오늘 다시 만났을 때 연세를 다시 물으니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알아듣고는 3년 뒤에는 100살이라며 손가락을 내보였다.
100세를 향해 가고 있는 노인을 보며 건강백세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의학잡지나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까닭 없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건강이나 장수의 비결은 인체의 신비만큼이나 다양한 조건과 심리적이면서도 신체적인 복잡한 변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낙엽을 쓸며 노년을 보내는 아침형 인간 97세! 그 할아버지 집 앞은 언제나 깨끗하다. 아마도 새벽 5시나 6시쯤부터 낙엽을 쓸었는지도 모른다. 7시쯤 출근길에는 이미 깨끗해져 있거나 길의 어느 부분은 정리가 되어 있고 낙엽들은 한쪽 구석진 모퉁이에 모아져 있는 경우도 있다.
100세 시대! 매스컴에서 떠들고 백세 관련 책들이나 유튜브 오디오북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너도나도 100세 시대라고 하니 다들 100세를 살 것처럼 몽롱한 상태에서 지내는 것 같다. 보통사람들은 주변의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귀동냥으로 100세 시대를 짐작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코로나 상황이 되기 전에는 가끔 노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정보를 얻기도 했었다. 간혹 토요일 오전에 온천 대중탕에 가는 날이면 나이 들어보는 비슷한 또래의 노인들이 모여 있기도 했다. 그냥 지나치다가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나이가 꽤 많기도 했다. 정정하고 거동에 불편이 없는 이들은 몸의 구조나 골격이 건강해 보였던 것 같다. 그들은 목욕을 하고 중절모 같은 것을 쓰고 점심 약속 장소로 가기도 했다. 휴가철을 맞아 한낮에 체육공원 같은 곳에 가보면 또 한 무리의 노인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들도 운동을 생활 속에서 습관처럼 하여 정정함을 과시하였던 것 같다. 구순을 훌쩍 넘긴 노인은 칠순 중반인 노인에게 여러 가지 건강상의 코치를 해주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모습을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100세가 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형 인간 97세 노인은 귀가 잘 들리지는 않지만 하루의 시작부터 활동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다. 노령으로 청력 기능이 떨어져 있으나 가까이서 큰소리로 말하면 알아듣는 것 같다. 키가 큰 편이고 허리가 꾸부정하다. 하지만 칠순이나 팔순도 되기 전에 거동이 불편해 요양원이나 위탁시설에 들어가는 노인도 많다. 그런데 아침에 만나는 노인은 아직도 거동을 하며 하루 일과 속에서 자신만의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시니 놀랍다. 평소 생활 속에서 아무런 활동 없이 요양시설의 도움을 받아 그저 백세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건강수명이 97세다. 일반적으로 노인들이 약 10년을 병치레를 하며 지낸다고 볼 때 건강수명은 70대 중반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활동을 하며 건강수명 97세를 살고 있다는 것은 삶과 건강 측면에서 배우거나 본받을 점이 많을 것 같다. 몇 년만 지나면 건강수명 100세를 채우게 될 것 같다. 움직임이 불편한 70세 노인이 그를 보게 된다면 낙엽을 치우는 노인은 아마도 30년은 더 건강하게 사는 것이니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 같다. 자세히 그 사람의 삶에 대해 들어보고 싶은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도 변해야 할 것 같다. 어릴 때는 2~3년의 나이 차이도 몹시 크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10살일 때 13살 형이나 누나는 자기 나이보다 3분의 1만큼이나 많으니 당연히 나이 차가 커 보였던 것일까. 초등시절에 중고등학생을 보면 왠지 주눅이 들고 큰 차이가 느껴졌다. 그런데 5~60세를 이르는 지천명이나 이순을 넘긴 사람들에게 두세 살은 나이 차도 못 느낄 것 같다. 어린 시절과 같은 나이의 개념을 적용하면 그 나이의 3분의 1은 15~20년의 차이로 옮겨가기 때문일까. 그래서 불혹, 지천명, 이순을 넘기면 나이의 개념보다 건강나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실제로 정정하게 활동하며 사는 100세가 있고 병을 달고 살며 활동력이 떨어진 6~70대도 많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같은 지점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어떤 지점을 향해 각도를 벌리며 인생 항로가 정해지면 삶의 나이는 그 차이를 예측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하는 것은 아닐까.
인생의 황혼을 자신의 의지대로 야외 활동을 일정하게 하며 지낸다는 건 매우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것이다. 모친의 병간호로 요양원을 삼 년 가량 방문한 적이 있다. 88세에 낙상으로 거동이 불편하여 요양원의 도움을 받다가 91세에 돌아가셨다. 그때 보고 느낀 일은 노인들에게 있어 나이의 개념은 무의미했다는 점이다. 누가 자신의 건강나이를 잘 관리했느냐의 문제지 나이가 많고 적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10년, 20년, 30년의 나이차가 요양원 안에서는 건강을 예측하거나 설명하지 못했다. 오로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 되는 것을 보았었다. 출근길에 가끔 마주치는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잘 모르지만 어떤 마음자세와 생각으로 사셨는지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우선 검소하고 절제된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삶에 철저했을 것 같았다. 그 연세에 몸에 배여서 하는 아침활동에서 삶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계획적인 일상과 적절한 운동을 하시며 보내지 않았을까.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움직이는 일을 즐겨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꾸준히 신체를 움직이며 활동하시는 젊은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 보고 싶어 지나는 길에 "할아버지, 안녕하세요?"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하면 해맑은 미소와 손짓으로 답을 해주신다. 또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붙여보고 싶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운전하며 갈 것인지는 그 사람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뜻대로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그런데 인생 항로를 맘먹은 대로 운전해 가는 할아버지가 부럽다. 그 연세에 낙엽을 쓸며 바람을 느끼며 지낸다는 것이 부럽다. 무엇보다 그 일을 즐겁게 하며 이웃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소탈하고 소박한 마음 자세가 부럽다. 영원이란 없다. 누구든지 일단은 가다가 멈춰야 한다. 그것은 운명이고 필연이다. 그 멈춤이 오기 전에 열심히 움직이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 같다. 100세, 100세 시대를 외친다고 누구에게나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건강백세의 길은 목표나 계획을 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 속에 건전한 마음가짐과 자신도 모르는 건강을 위한 습관적 행동이 함께 해야 될 것 같다. 진시황의 불로장생에 숨겨진 인간의 본능과 그 오랜 역사를 논한 들 뭣하랴. 장수는 숫자놀음이 아니며 더 오래 산다는 것도 의미가 크지 않다. 막연한 장수에 대한 욕심보다는 하루하루 직접 실행하고 그것을 즐길 때 건강백세는 나중에 따라오는 것 같다. 오늘도 느리게 움직이며 낙엽을 쓸며 바람을 느끼고 있는 아침형 인간! 97세 노인의 해맑은 미소를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