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특별한 사람들만 했던 일인데 요즘에는 누구든지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그런 일 가운데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인 심폐소생술이 있다. 예전에는 주로 안전요원들만 할 수 있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CPR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느라 시간을 보내다가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되는 일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새는 초등학생들도 생존수영체험을 하며 심폐소생술을 배우고 익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아 환자가 생명을 잃기라도 하면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종종 뉴스 같은 데서는 심정지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심폐소생술로 생명을 구했다는 훈훈한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그런 일들을 보거나 들을 때마다 나와는 상관없는 특별한 사람들만의 뉴스거리라고 치부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쓰러지는 일이 내 앞에서 벌어졌다. 그때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엉겁결에 심폐소생술로 응급환자에게 도움을준 적이 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게 뉴스에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웅성거리며 지켜봤던 주변 사람들과 가까이에 있었던 어떤 젊은 여자분이 심폐소생술을 마치고 땀을 흘리며 일어서는 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때 그 사람들은 나를 대단한 사람쯤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느린 삶을 즐기고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며 걷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요즘엔 대부분의 직장에서 심폐소생술 연수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매년 의무적으로 몇 시간의 CPR을 받게 되어 있다. 예전에 민방위대원이었을 때는 그 훈련에 참가하면 심폐소생술 훈련을 받곤 한 기억이 난다. 간단한 동작과 요령을 익히는 것이지만 연수를 받고 나면 곧 기억에서 사라져 다시 연수를 받을 때는 늘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연수를 받곤 했다. 그런데 최근에 심정지 상태의 환자들이 많이 발생하고 안전을 우선시하는 정책 때문에 그런지 심폐소생술 연수에서 인간 모형을 대상으로 흉부압박 훈련을 매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연수를 매년 받다 보니 어느 정도 CPR에 적응이 되고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번은 출장으로 용두산공원에 가게 되었고 업무를 마친 후 바로 퇴근하는 날이었다. 집은 해운대 쪽이라 중앙동에서 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연산역까지 와서 3호선을 갈아타고 수영역으로 갔다. 그리고 수영역에서 또 2호선을 갈아타고 해운대로 들어가야 했다. 이처럼 다소 복잡한 갈아타기가 있는 대중교통을 즐겁게 이용하는 삶이 어쩌면 느린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부산 도시철도 수영역 3호선에서 2호선을 갈아타려면 좀 긴 계단을 올라와야 하며 나는 먼저 올라와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다른 승객들도 환승을 하기 위해 계단을 이용했고, 숨이 차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올라왔던 30대 후반쯤 보이는 젊은이가 갑자기 내 앞에서 쓰러졌다. 전철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그 청년은 숨차게 올라와 계단 모퉁이를 돌아 몇 걸음 걸어오더니 노란 점자블록 위에 기둥처럼 쓰러졌다. 그는 안경을 끼고 배낭을 멘 채로 쓰러졌으며 안경이 깨지면서 얼굴에 피가 나기도 했다.
전철을 기다리던 승객들은 모두 놀라
"어머, 사람이 쓰러졌어요."
"의식을 잃은 것 같아요."라고 소리치기도 하며 갑자기 선로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청년의 눈은 초점을 잃은 것이 확연히 보였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칠 뻔도 했지만 다행히 안경이 깨지고 얼굴에 피가 흐르는 정도에 그친 것 같았다. 그때 쓰러진 환자 가까이에 있었던 어떤 노인이 환자가 배낭을 멘 채로 비스듬히 누운 상태인데 심폐소생술을 하려고 했다. 그 방법이 내가 매년 받아왔던 심폐소생술의 올바른 요령은 아닌 것 같아서 직접 심폐소생술을 하기로 했다. 우선 기억나는 대로 환자의 의식 여부를 확인했고, 옆에 있었던 어떤 사람을 지목해 역무원이나 119에 신고하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환자의 배낭을 빼내어 등을 바닥에 반듯하게 눕힌 상태로 만들어 인간 모형에 실습했던 동작으로 흉부압박을 시도하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평소 자주 받았던 CPR이 큰 도움이 되었다. 흉부압박은 초당 1~2회 정도로 횟수를 빠르게 하는 것이 좋다는 CPR강사의 말이 떠올라 그런 감각으로 20~30회 정도 흉부압박을 시도했을 때쯤 환자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펼쳐진 일이었고 즉각적인 심폐소생술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었을까.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환자의 반응은 간결했다. 수돗물이 며칠 단수되었다가 꼭지를 틀면 수도꼭지에서 물이 세게 나올 때처럼 공기가 빠지는 소리를 퍽퍽 두어 번 내다가 가벼운 기침을 하며 눈동자가 돌아오는 것이 전부였다. 환자는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상황이 거의 종료되는 순간에 cctv를 봤는지 역무원들이 달려와서 그 환자는 역무원실로 부축을 받아 이동했고 그다음 사정은 듣지 못했다.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로 흉부압박을 시도한 건 처음이었는데 그 감각은 연수에서 인간 모형에 했던 실습과 거의 흡사한 느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년 CPR 연수에서 실습을 할 때 반복되는 동작에 짜증이 나기도 했고 또 다 아는 것을 왜 반복하는지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위급 상황을 겪고 난 후 반복적 훈련이 왜 필요한지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늘 느리게 이것저것 보며 걸어 다니다가 우연한 일로 위급한 환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게 되어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심폐소생술과 관련해 널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심정지의 발생은 예측이 어려우며, 예측되지 않은 심정지의 60-80%는 가정, 직장, 길거리 등 의료시설 이외의 장소에서 발생된다고 한다. 따라서 심정지의 첫 목격자는 가족, 동료, 행인 등 주로 일반인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누구나 위급한 환자가 될 수 있고 또 누구나 심폐소생술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심정지가 발생된 후 4-5분이 경과되면 뇌가 비가역적 손상을 받기 때문에 심정지를 목격한 사람이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작하여야 심정지가 발생한 사람을 정상 상태로 소생시킬 수 있다고 한다.
요즘에는 생활 속의 주요 지점에 자동심실제세동기(자동심장충격기)라는 것을 설치해두고 있다. 평소 자주 지나다니는 곳에 자동심실제세동기가 어디에 비치되어 있는지 확인해 두면 좋다. 그리고 제세동기의 작동 요령 및 사용법을 익혀두면 위급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심정지에 처한 환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수가 있을 것 같다.
주변에 비치된 자동심실제세동기
심장마비를 목격한 사람이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게 되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 심장마비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이 3배 이상 높아진다니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갑 속에 든 칼'처럼 무용지물을 의미하는 칼도 있다. 그런데 쓰지 않고 있지만 늘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 삶이고 인생인 것 같다. 특히 느린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더욱 그런 것 같다. 느린 삶이 느릿느릿하거나 게으르고 태만한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의 부지런한 삶이 몸에 배여야 느린 삶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닐까. 준비된 자만이 남을 이롭게도 하고 느린 삶을 즐길 수도 있는 것 같다.
길게 살려고 하면 운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쓰러졌던 청년은 더 길게 살 운명이었던 것일까. 만일 쓰러졌을 때 혼자였더라면 단 몇 분만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와 같다는 말도 있듯이여러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에서 그런 사고가 생겨 정말 다행이었던 것 같다.그 청년은 이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다면 오히려 더 건강한 삶을 살 수가 있지않을까.
요즘 혼자서 트레킹을 하거나 등산을 한다고 무리하게 산이나 들로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코로나 때문에 혼자 다니는 경우도 있겠지만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 대한 대비도 필요할 것 같다. 또 아침저녁으로 천천히 식구들을 챙겨 보는 여유나 습관을 가지는 삶이라면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도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가 있다.요즘은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어른들도 비만 위험에 처한 경우를 많이 본다. 학교나 가정에서는 물론 어디에서든 갑자기 생길 수 있는 심정지와 같은 상황에서 최고의 명의는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