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군가에게 준 것은 여전히 너의 것이지만 네가 꽉 쥐고 있는 것은 이미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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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사의 친절이 빚어낸
지워지지 않는 향기 이야기
어느 노신사, 트레킹을 즐기는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20년이 지났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꽃향기처럼 스친다. 일본에서 유학할 시절 여름방학을 맞아 잠깐 귀국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시기였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세계 등산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후지산에 올라보기로 했다. 그때 우연히 동행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에 있어 보면 관동과 관서 지역에서는 어디를 가든 후지산이 그림처럼 보인다. 관광홍보용 팸플릿이나 오미야게와 같은 선물 포장지에도 늘 등장하는 산이어서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산이다. 같은 산이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주변 경관에 따라 변화무쌍한 자태를 선보이기도 한다. 사시사철 곁에 있는 산이지만 오르고 싶다고 언제나 등반이 허용되는 산이 아니다. 일 년 중 여름철에만 잠깐 일반인들의 등산을 허용하고 있어서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운이 닿아야 산에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타지에서 후지산 등반을 관광코스로 넣는다 하더라도 날씨가 받쳐줘야 일정을 무난히 소화할 수 있으니 산행 일정을 잡는 일 또한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 후지산을 등반했으니 잊지 못할 일들도 여럿 생겼다. 동경 근교 쓰쿠바대학 히라스나 기숙사에 있었을 때였으니 후지산 근처 등반 시작점인 고고메로 가기 위해 신주쿠에서 버스를 탔다. 그런데 우연히 옆자리에는 깡마른 체격의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가 앉았다. 일본인들 사이에 우스게 소리로 후지산을 한 번도 오르지 못해도 바보요, 또 두 번 이상 오르는 것도 바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사계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후지산의 모습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후지산에 올라 구름 위의 일출을 보는 것이 산에 오르는 모든 이들의 소망이다. 그다음은 아마도 산에 올라 주변의 3천 미터급의 산들과 아름다운 호수를 낀 경치를 즐기는 일이 기다린다.
걷는 걸 좋아하고 자전거를 자주 이용했지만 높은 산이라고는 한라산이나 지리산을 몇 번 오른 정도이다. 후지산은 일본에 3천 미터급 산들이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봉이다. 산 주변의 호수들이나 무엇보다 일본의 알프스로 명명되는 북알프스나 남알프스를 조망하려면 후지산에 올라야 한다. 어렵게 산행 일정을 잡아도 등산이 허용되는 개산일과 날씨까지 받쳐줘야 소원을 이룰 수 있다. 또 구름 위로 떠오르는 붉은 일출을 감상하려면 그 기회나 운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이런 모든 조건을 뛰어넘어 한 번 산행으로 후지산에 올라 그 일들을 모조리 가졌으니 기억에 오래 남을 법도 하다.
특별한 동행은 신주쿠 터미널에서 노신사와 같이 버스 좌석을 함께 하면서 더 진한 기억으로 남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등반의 출발지로 이동하면서 긴 여정 속에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나는 방학을 맞아 한국 부산으로 가야 하는데 귀국하기 전에 산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내게 "방학이 되어 시골에 가는군요."라고 했다. 나는 "부산은 대도시에 속하는 곳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는 편안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는 "동경에는 공부하러 오는 젊은이들이 많아 방학에 고향으로 가면 다들 그런 표현을 씁니다."라고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의 대화는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 노신사는 초면이지만 이방인인 나를 잘 이해하며 이것저것 산행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노신사는 한눈에 보기에 군살 없이 날렵한 움직임이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의 소유자 같았다. 이야기 중에 그는 이번 산행이 후지산에 여덟 번째 산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초행인 내가 조금 걱정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복장이나 준비 상태가 전문 산악인이 보기에 허술한 구석이 이것저것 보이지 않았을까. 노신사는 그 당시 퇴임 기념으로 산행을 한다고 했으니 아마도 지금은 연세가 80대 후반이 되었을 것 같다. 가정에 좋은 일이나 기념이 될만한 일이 있으면 후지산을 등반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어찌 보면 가정의 특별한 기념일마다 등반을 통해 스스로 가풍을 이어가는 것은 그 노신사의 삶의 철학은 아닐까. 여덟 번의 등반마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도 얘기해 주었다. 자식들의 입학, 취직, 자손의 번성 등 집안의 대소사에 의미를 부여하며 나름대로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가장으로서의 기도가 담겨 있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후지산을 동행한 사람처럼 한 마음이 되어 움직였다. 산행 출발 지점 부근에서 가볍게 점심을 먹고 등반을 시작했다. 우리의 계획이 일치했던 것은 후지산 중턱 산장에서 잠을 청하고 다시 올라 일출을 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산으로 해가 지기 전에 산장까지 가야 했다. 산장에는 산소병도 팔고 화장실에는 구토용 봉지도 비치되어 있었다. 서로 몰랐던 두 사람은 산장에서 가볍게 요기를 하고 같은 침상에 침낭을 깔고 나란히 누웠다. 맑은 밤하늘과 별을 그려보며 밤을 맞으니 정말 산에 온 기분이 들었다. 산은 무념무상을 주어 좋다. 초행인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이 편히 잠을 청했다. 하지만 여덟 번째 오르는 트레킹 달인인 노신사는 요것조것 챙겨보는 것이 많았던 같았다. 세상살이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지내면 편하지만 알면 알수록 챙겨볼 일이 많은 것도 어쩌면 같은 이치였을까.
새벽 두 시 반쯤 기상하여 다시 등반을 해야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산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초저녁에 잠을 청해야 했다. 산장에서 어느 정도 잠을 잤나 싶은 시간에 노신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상, 날씨가 굉장해요!" 하며 나를 깨워 산장 밖으로 불러냈다. 그리고는 등반 달인인 노신사는 "저 산 아래 마을들의 불빛을 보세요. 너무 날씨가 좋아요." 하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 운이 참 좋군요. 후지산에 자주 왔지만 이런 적은 없었어요." "오늘 일출을 제대로 보겠어요. 김상도 초행이지만 참으로 운이 좋군요." 하며 해뜨기 전에 빨리 서둘러 정상을 향해 출발을 재촉했다. 두 사람은 등산하는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르는 행렬을 따라 정상에 다다랐다. 정상에서 모두의 환호 소리도 들으며 기대 이상의 일출의 장관도 눈에 담았다. 그리고 후지산을 둘러싼 고봉들을 감상도 했다. 노신사는 높이 솟아 있는 봉우리들과 산맥을 일일이 설명도 해주었다. 하지만 나의 배경 지식 부족은 주변의 산들을 이해하는데 역부족이었던 것일까. 노신사는 주변의 산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기숙사 생활과 일상의 학업으로 복귀했을 때쯤 편지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그는 내가 잘 알아듣지 못했던 주변의 산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도 그려서 보내주었다. 사진과 산맥의 그림에는 번호까지 붙여서 산 이름과 높이를 표시하여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노신사가 기숙사로 보낸 편지와 사진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나는 그 노신사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받았다. 그날의 1박 2일의 동행도 동행이지만 그 후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씨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늘 함께 한 것처럼 떠오른다. 여전히 건강하시고 산을 좋아하실 것이라는 확신도 든다. 노신사는 나와의 후지산 동행 후 따로 종주했다는 호타카산 일원에 대한 사진도 첨부해주었다. 일본에서 여름 등산 기지로 통할 정도로 유명하며, 일본 소설 빙벽의 제재가 되었던 곳이기도 한 산이다. 그분께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한다. 그래서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고 소중하며 그 시간 속으로 데려다 주어 매력적인지도 모른다. 어떤 여운이나 향기는 그 끝이 전부를 좌우하게 하는 묘미가 있는 것일까. 친절 또한 그 끝 지점에 방점이 찍히는 것 중의 하나는 아닐까. 앞서 아무리 베푼 들 끝에 수미상관(首尾相關)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던가. 노신사의 향기와 여운은 처음과 끝이 맞닿아 있어 나는 물론이고 그 사람의 일생이 뭇사람들의 영혼을 매료시키고도 남을 만했다. '네가 누군가에게 준 것은 여전히 너의 것이지만 네가 꽉 쥐고 있는 것은 이미 잃은 것이다'라는 금언을 노신사는 실천했던 것일까.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여기게도 하는 것 같다. 지금도 산길을 걷노라면 노신사의 꽃향기가 바람결에 스친다. 여전히 건강하시길 멀리서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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