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담한 절이 하나 있다. 이름 모를 산새들이 찾아들고 쉼 없이 흘러가는 시냇물이 감싸고도는 산사이다. 모두 절이라고 부르지만 이름은 암자이다. 인근 산을 오르내릴 때 지나는 길에 가끔 들리곤 하여 정이 든 산사이다. 저녁에 산책을 나오면 가끔 친근한 암자에 들러 냇가를 바라보는 흔들의자에 기대어 계곡 물소리를 듣곤 한다.
성실한 불자는 아니지만 올해는 이 암자에 연등을 하나 달아 휴식을 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맘먹었다. 그런데 또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아니 놓쳤다기보다는 옆동네에 있는 큰 절을 지나는 길에 그곳에서 연등을 달았기 때문이다. 사람 맘이 큰절에 가서 소원을 빌면 더 잘 들어줄 것 같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물으면 잘 알려진 절에 등을 달았다고 말하기 편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혹시 이름도 희미한 작은 암자 같은 절에 등을 달았다고 하면 섭섭하게 여길지도 몰라서 큰절로 발길이 옮겨졌을까.
산사 잎에 걸린 글
오늘 산으로 가는 길에 그 작은 암자인 산사를 지나갔다. 암자를 지나며 마음 한쪽이 못내 편치 못하였다. 소심하고 줏대 없는 날 살짝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암자는 크게 야단치거나 흉을 보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것 또한 내 혼자만의 생각이고 위안인지도 모른다.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탓하지 않을 정감이 가는 암자이기 때문이다. 주인을 기다리지도 않고 누구나 차지하고 있어도 되는 흔들의자처럼 그렇게 작지만 여유가 있고 품이 넓은 산사이다.
이렇게 마음이 쓰였던 기억을 잊고 또 내년 초파일이 다가오면 큰절로 발걸음이 갈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나 자연을 대하는 것도 혹 내가 작은 암자를 대하듯이 실수를 하는 건 아닌지 불현듯 걱정이 된다. 작은 것, 힘이 없는 것, 모두가 지나치는 것 이런 소소한 일이나 사물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을까. 그런 삶이 마음에 거리낌은 사라지고 평온함을 가져다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에는 이런 암자와 같은 경우도 허다하다. 보살핌을 받고 눈길을 받아야 하는데 소홀히 여겨지고 있는 이웃들은 없을까. 세상을 더 넓게 보면 그런 경우는 더 많아질 것 같다. 탓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암자가 너무 부럽다. 작지만 당당하고 자존감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한 날은 마당을 지나 불전 앞에 가보았다. 부처가 모셔진 불전 또한 암자의 겉모습과 닮았다. 소박하다. 정갈하다. 담백하다. 온화하다. 무엇보다 분주하지 않아서 좋다. 작은 암자가 길고 긴 시간을 거쳐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까닭과 그 힘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산사 앞에 걸린 글
탓하지 않고 손짓하지 않으나 무언의 당김 같은 것을 느낀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끌리는 뭔가가 있는 암자이다. 늦은 밤에도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암자.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흔들의자 같은 암자. 드나들어도 어떤 시선도 느낄 수 없는 암자. 사람들의 맘을 끄는 이유는 여기저기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이나 사물도 주는 것 없이 미운 이가 있고 맘이 가는 이가 있듯이 산사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인가. 이 암자가 그냥 좋다. 마음이 그쪽으로 기우는 느낌이다. 다시 들리고 싶은 그런 곳이 곁에 있다니 참 다행이다. 손짓하지 않으나 지나는 길에 그 옆을 지나고 싶은 곳이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있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편한 곳이다. 탓하지 않고 삶 속에서 스스로 깨우침을 주는 암자다. 그런 암자와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세상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지 모르겠다. 아마도 탓하지 않는 암자와 같은 이들을 곁에 두고 살아가고 싶지 않을까. 급하게 지나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느리게 걸으니 보인다. 삶의 앵글은 예각에서 둔각으로 변환되어 시야의 폭이 넓어진다. 속도를 다운시켜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에도 눈길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느린 삶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삶을 더 따뜻하게 하고 사랑도 더 깊어지게 하는 것일까. 오늘도 짙은 송진 향기를 음미하며 우리 집으로 가듯이 탓하지 않는 암자를 향해 걸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