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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 멘탈은 나미비아역에 있습니다.

나미비아의 사막_Desert of Namibia_Yamanaka Yoko

by Kimhuzu

Desert of Namibia | ナミビアの砂漠

야마나카 요코 감독 X 카와이 유미

어딘가로 돌아가 있는 눈동자, 강렬한 형광핑크의 포스터 한 장으로 내 시선을 낚아챈 영화였다. 나미비아의 사막은 단순히 ‘젊은 여자애의 사랑이야기’로 묶일 수 없다.




15일간의 원테이크, 그리고 140분의 카나

2024년 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이 영화는, 무려 97년생의 어린 감독이 단 15일 만에 원테이크로 완성한 140분짜리 작품이다. 모든 장면이 이어져 흐르는 이 영상의 밀도는, 영상과 졸전을 앞두고 있던 나에겐 동경과 질투의 감정을 동시에 불러왔다. 영화는 오롯이 21살 주인공 ‘카나’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뛰거나 기거나, 팔다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 흐르듯 걷는 그녀의 동선은 무용 같은 리듬으로 구성된다. 감독은 이 물리적인 불균형을 통해 카나의 내면을 드러낸다. 그리고 점점 고정되는 카메라, 그건 그녀가 자신을 외부 시선으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다.

감독과 배우, 주요 스태프들 또한 대부분 비슷한 또래의 젊은 창작자들이었다. 감독은 GV에서 촬영현장에서 배우와 제작진 모두가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누군가의 일방적인 시선으로 찍힌 결과물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집단적 외침처럼 느껴졌다.





뱀에게 피어싱: 카나와 루이의 교차점

감독은 GV에서 영화의 모티브로 가네하라 히토미의 소설을 언급했다.

궁금증에 뒤져봤지만, 그녀의 책 대부분은 절판 상태였다. 그중 유일하게 교보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뱀에게 피어싱』을 먼저 읽었다. (아미빅, 애시베이비 양도 구해요..)

일본 하위문화 특히 MZ세대의 타투와 피어싱, SM의 결을 따라가며 펼쳐지는 루이의 이야기. 읽으면서 카나와 루이의 감정선이 겹쳐 보였다. 루이는 클럽에서 만난 남자의 스플릿 텅에 빠져 문신과 피어싱을 시작하고, 문신 시술자와의 관계 속에서 혼란을 겪는다. 그녀는 의욕 없이 삶을 소모하면서도, 혼자라는 사실이 두렵다. 귀찮아하면서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감정. 서로의 나이, 출생지, 국적조차 몰라도 말이다. 카나 역시, 가까운 사람에겐 날을 세우면서도 낯선 이들에겐 쉽게 공감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무기력함, 막연한 바람, 일어나길 바라지만 직접 손대기 싫은 어떤 변화. 너무도 공감된다. 20대의 어느 청춘이라면.






지금 네 멘탈은 나미비아역에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된 직후부터,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이 영화의 제목이 ‘나미비아의 사막’일까? 140분 동안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힌트를 수집하듯 영화를 따라갔다. 누군가 GV에서 감독에게 질문하지 않는다면, 며칠은 머릿속을 맴돌 듯한 그 답답함. 다행히도 다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GV 첫 질문이 바로 제목이었다. 야마나카 감독은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또 나왔네”라는 표정을 지었다.

영화 속에 실제 나미비아 사막의 실시간 라이브 영상이 등장한다. 주인공 카나는 이 사막 라이브 속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가까운 이들에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익명의 존재에게는 오히려 유연한 시선을 보내는 태도.

그 거리감에서 비롯된 평온함이 낯설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멀리 있는 대상에게서 평온을 찾는 이 아이러니. 나도 그렇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날 가장 자주 데려가는 곳은 아프리카, 동남아, 슬럼가, 혹은 원시부족 체험기 같은 지금의 나와는 너무도 다른 세계다. 사막은 누군가에겐 피난처가 된다. 그런 점에서 ‘나미비아 사막’은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의 메타포이자, 우리 세대의 무의식적 도피처인 셈이다.







아무것도 없어도 자본은 있어, 끔찍하게도.

감독은 사막을 통해 자본주의의 또 다른 얼굴을 그려낸다. 나미비아 사막은 실제로 라이브 스트리밍 채널이 운영되고 있으며, 인공 오아시스를 만들어 동물들을 끌어모은 뒤, 이를 24시간 카메라로 담아 후원과 조회수 수익을 올린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이곳에도 자본은 존재한다.

당장이라도 아무것도 없는 횡무지의 사막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 속에서도 결국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맞닥뜨리는 현실은 끔찍할 정도로 익숙하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은 마음, 그 자유를 꿈꾸지만, 결국 우리는 이미 이 체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카나의 일상은 무기력과 피로로 가득 차 있다. 그녀가 바라보는 사막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넘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꿈과 욕망이 투영된 도피처다. 사막은 카나가 마주하는 정신적 방황과 불안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곳에서 피로를 잊고 안정을 찾고 싶어 하지만, 결국 그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우리 모두는 자유를 갈망하며, 그 자유를 찾기 위해 떠나고 싶어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이미 현실이라는 체계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결국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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