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에 대한 또다른 차원의 이야기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신이 우리 은하계와 태양계를 막 만든 뒤, 다른 일을 하느라고 바빠서 그만 깜빡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야 미완성인 채 남겨두었던 우주, 특히 불쌍한 지구 생각이 났다.
=아뿔싸, 지구는 그동안 어찌 됐을까? 초벌구이만 겨우 해놓고 관심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으니,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혹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자식으로 버릇없이 크지는 않았을까? 끝까지 책임지고 뒤를 좀 봐줬어야 했는데---.
신은 자신의 실수를 책망하며 지구의 지나간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자기가 전혀 도와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이 스스로 알아서 생명 창조의 장대한 드라마를 연출하며, 각자의 삶을 당당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왔던 것이다.
=오오, 놀라워라! 나의 숨은 뜻을 잘도 알아서 헤아리고, 또 잘도 꽃을 피웠구나!
신은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다. 특히 공룡들이 오랫동안 지배했던 시절을 돌아보면서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머릿속에 숨어있는 온갖 창조적 익살과 자유분방함과 변화무쌍한 실험정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허허, 놀랍구나! 나의 비밀스러운 구석까지 어찌 저리 잘 알고 나타냈던 것이냐!
그리고 신은 맨 나중에 등장한 인간 종족들을 보면서 몹시 당황해 했다. 애당초 자신의 계획에는 들어있지 않았던 아주 이상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유인원까지는 리스트에 들어있었지만, 그 이후는 순전히 그들 자신의 장구한 세월에 걸친 변태적인 노력과 교활한 배신의 결과임이 틀림없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저렇게 영악하고 흉물스러운 놈들이 태어나다니!
신은 또다시 자신의 무책임함을 자책하였다. 그리고 인간들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몹시 실망하고 가슴이 아파 왔다. 많은 면에서 놀라운 발전을 하기는 했지만, 너무나 많은 대규모 전쟁과 살육과 약탈과 파괴와 억압과 수탈과 희생으로 점철돼 있었던 때문이었다.
=아아,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저토록 잔혹하고 호전적이고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것이냐!
신은 길게 장탄식을 하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꼼꼼하게 분석한 끝에 원인을 찾아냈다.
=쯧쯧, 대자연이 시키는 대로 모계사회를 중심으로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았어야 했는데, 그 황금률을 깨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이제라도 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인간들의 행태에 크게 실망한 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실낱같은 구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지 살펴보았다.
=오호라, 나의 아들을 자처한 청년 하나가 나타나서, 고결한 영혼과 목숨까지 바쳐가며 그나마 인류를 올바로 이끌려고 엄청 노력했구나. 참으로 가상하도다! 또 몇몇 훌륭한 메신저들도 출현해서, 비록 내 목소리를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올바르게 임무를 잘 수행했구나. 정말로 고맙도다!
그리고 스스로 궁극의 깨달음을 얻어서 진리를 널리 설파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구나. 그들도 타락한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 애를 많이 썼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로다! ---하지만 지구 자체가 망가져 가는 이 마당에, 그들의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이리오!
신은 갑자기 초조해졌다. 사태가 너무 심각해서 한시도 그냥 놓아둘 수가 없었다. 깊은 고민 끝에, 신은 마침내 천지창조에 버금가는 정리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거대한 물과 불로 더러워진 땅을 씻어서 깨끗하게 정화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인간들도 대대적으로 손을 보기로 했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은 다 제쳐두고, 못났지만 심성이 고운 사람들로만 아주 조금 살려둘 작정이었다.
=나의 충직한 신하인 태양아, 지구 위로 점점 더 뜨겁게 내리쬐거라!
신의 명령을 받은 태양은 핵융합 속도를 끌어올려서 점점 화력을 높였다. 그러자 수십만 년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빙하들이 서서히 녹고, 바닷물이 목욕물처럼 데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기상이변들이 줄지어 일어나면서, 거대한 정화작업이 시작되었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인간들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하지만 파국을 조금 늦출 수 있을 뿐,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리고 제아무리 큰 재앙이 닥친다 해도 대부분의 인간들은 점점 뜨거워져가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하루하루 먹고살기 급급해 눈앞의 일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제2의 천지창조는 착착 진행되어 가고, 그 누구도 신의 뜻이나 계획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족 :
북유럽의 어느 당찬 소녀가 "우리들의 도둑맞은 미래를 돌려달라!"고 용감하게 외치며 환경운동에 몸을 던져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온난화 사태가, 가부장 제도하에서 쌓아올린 인류문명 3천년에 대한 총체적인 단죄라는 것을 그 소녀는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