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가 내려온다

범보다 무서운 불평등과 양극화의 상징

by 김혁

고려 말, 나라가 망해가는 조짐이 여기저기서 마구 터져 나오고 있었다.

관리들은 극심한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지방 토호세력들은 각자 주인 행세를 하며 이리떼처럼 군림하였다. 대대로 원나라의 꼭두각시 왕들이 들어선 무능한 조정은 통치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은 썩어빠진 왕조를 뒤엎으려고 각지에서 들고일어났다.

그런 와중에, 고약하게 생긴 원나라 사신 하나가 거드름을 피우며 송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는 마중 나온 고려의 신하를 만나자마자 마구 닦달하기 시작했다.

“주둔비를 더 내시오! 주둔비를!”

“아니, 무슨 주둔비 말씀입니까?”

사신의 의중을 익히 알면서도, 신하는 짐짓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우리 원나라 군대가 여기 와서 고려를 지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은지 알고 있소?”

“알다마다요. 그래서 지금껏 많은 공물과 주둔비를 드려왔지 않습니까?”

“그걸 모르는 건 아니오. 하지만 이제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소.”

“왜요? 그동안 별문제 없이 잘 지내오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우리도 여기저기 지키느라고 살림살이가 아주 빠듯해졌소.”

“그건 원나라 쪽 사정이고---.”

“이거 보시오! 우리 원나라가 없으면, 어찌 고려가 존재할 수 있겠소. 안 그렇소?”

“아, 알겠습니다. 그럼 얼마나 더 드려야 될까요?”

“지금 내는 것의 다섯 배로 올려 줘야겠소!”

“아니, 갑자기 다섯 배로 올려달라니,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왜 없소? 내 말이 곧 우리 원나라 황제의 말이고, 황제의 말이 곧 법이거늘.”

“허허, 이거야 원--- 생떼를 써도 분수가 있지.”

“싫다 이거요? 싫으면 관두시오. 우린 곧바로 군대를 철수하겠소.”

사신이 탁자를 세게 내리치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 안됩니다! 그, 그건 약속 위반입니다!”

늙은 신하가 황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새파랗게 젊은 사신의 바짓가랑이를 움켜잡았다.

“이거 놓으시오. 돈을 다섯 배로 내놓지 않으면,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소.”

사신이 신하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회담장 밖으로 뛰쳐나갈 자세를 취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를 끝까지 지켜준다고, 그리 철석같이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신하가 비굴하게 웃으면서, 또다시 사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그랬소. 그러니까 우리를 붙잡고 싶으면 주둔비를 더 내란 말이오.”

사신이 째진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신하를 무섭게 째려보며 눈알을 위아래로 부라렸다.

“아, 알겠습니다. 요구하시는 대로 드릴 테니, 준비할 시간을 좀 주십시오.”

신하가 두 손을 파리처럼 싹싹 빌며, 머리를 조아렸다.

“진즉에 그렇게 나올 것이지, 흠흠!”

사신이 더럽게 배배 꼬인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자리에 도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철수한다는 그 말씀만은, 제발 좀 하지 말아주십시오.”

늙은 신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내시 같은 목소리로 간청을 했다.

“왜, 우리가 철수하면, 왜놈들이나 거란놈들이 당장 쳐들어올까 봐 겁나오?”

“허허, 우리 입장을 너무나 잘 아시면서, 이거 또 왜 그러십니까요?

”뭘 말이오?“

”우린 왜놈들이나 거란놈들이 무서운 게 아니라, 저 무지렁이 같은 백성들과 백정 놈들이 함께 들고일어나는 게 제일 무섭다, 그 말입니다요.”

“그래서 우리 원나라 군대가 여기 와서, 이렇게 고생하며 지켜주고 있는 거 아니오?”

사신이 악덕 사채업자같이 음흉하게 웃으며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맞습니다요. 원나라 군대만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태산처럼 든든합니다요.”

원나라 군대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패악질을 일삼고 있는 걸 잘 알면서도, 늙은 신하는 간과 쓸개를 통째로 다 빼주기라도 할 듯 비굴하게 굴었다.

“이게 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거요. 안 그렇소? 흠흠!”

“하먼요, 하먼요. 여부가 있습니까요, 히히!”

“그러니 따지고 보면 다섯 배로 돈을 내도 오히려 싼 셈이다, 이런 얘기요. 알겠소?”

“알다마다요.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다섯 배가 아니라 열 배, 스무 배라도 드리고 싶습니다요. 하지만---.”

“하지만, 뭐요?”

“지금 나라 곳간이 거덜 나서 당장 드릴 돈이 없으니, 사정을 좀 봐주십시오.”

“허허! 이렇게 한심한 작자들하고는---. 그러길래 우리한테 바칠 돈은 미리미리 챙겨 놓으라고 그리 당부하지 않았소, 쯧쯧쯧!”

“아이고, 정말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그럼 몇 달의 말미를 주겠소. 기한 내에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우리는 당장 철수할 테니까 그리 아시오.”

“아이고, 정말로 감사합니다요. 우리가 저 무지랭이 같은 백성들의 집을 다 빼앗아서라도 돈을 꼭 마련할 테니, 제발 노여움을 푸시고 기다려 주십시오.”

그날 이후로 관리들은 백성들의 재산을 강탈하려고 더욱 혈안이 되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그렇지 않아도 흉흉하던 민심은 더욱 나빠져만 갔다.


그럴 즈음, 송도 근교 송악산 기슭에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홀로 살아가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 쌓는 일에 끌려가 일을 하다가, 무너지는 돌 더미에 깔려서 그만 죽고 말았다. 졸지에 청상과부가 된 여인은 자식도 없이 삯바느질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여인은 늘 그랬듯이 일찌감치 일어나 집 안팎을 깨끗하게 청소한 뒤, 간소하게 아침을 먹고는 바느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웬 낯선 이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집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아니,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멀쩡한 남의 집을 내놓으라니요!”

“글쎄, 이 집은 이제 더 이상 아주머니 집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어째서, 그리고 무슨 근거로 내가 지금껏 살아온 집이 내 집이 아니란 말이요?”

“자, 여기 이 장부를 한번 잘 살펴보시우.”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장부란 말이요?”

“오래전에 그러니까 아주머니의 신랑이 죽기 전에, 우리에게 쓴 차용증이우.”

“뭐, 차용증이라구요? 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그리고 우리 신랑은 그런 거 하나도 쓸 줄 모르는 사람이요.”

“아니, 그럼 우리가 없는 사실을 꾸며서 사기를 친단 말이우? 우리한테 분명히 돈을 빌려 갔는데, 갚지 않고 죽었수. 여기 이렇게 분명하게 수결을 한 증거가 있지 않수? 그러니 그동안의 이자까지 합쳐서 돈을 갚던가, 아니면 이 집을 당장 내놓으시우.”

누가 봐도 전문 사기꾼들의 뻔한 수법이었다. 문제는 이 작자들이 언제 어떻게 손을 써 놨는지, 주변에 아무도 여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데 있었다. 관가에 가서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사기꾼들 편을 드는 걸 보니 한통속인 것 같았다. 멀쩡하던 신랑이 성을 쌓는 부역에 끌려가서 죽은 것만도 억울한데, 겨우 비바람이나 피하고 고단한 몸을 누일 코딱지만 한 집마저 뺏기게 됐으니, 이렇게 분하고 원통할 데가 없었다.

억울한 것은 이 여인만이 아니었다. 송도 거리에 집을 가지고 있던 백성들 중에도 두 눈을 뻔히 뜨고 집을 날린 사람들이 수두룩하였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집값을 두 배로 준다는 말에 속아서 집을 내놓았다가,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고위 관리들과 전문 사기꾼들이 짜고 벌이는 일이라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원한이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백성들이 사는 집을 이렇게 사기 쳐서 빼앗는 놈들은 머지않아 천벌을 받으리라!

하루아침에 살던 집에서 쫓겨난 여인은 갈 곳이 없었다. 앞으로 살아갈 일도 막막했다. 모든 걸 단념한 여인은 평소 마음이 울적할 때면 즐겨 찾던 산속 깊은 곳의 소나무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손때 묻은 바늘 쌈지를 풀더니, 평소 소중히 간직해 온 바늘을 모두 꺼냈다.

“얘들아,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 잘 가거라---.”

여인은 바늘을 하나하나 부러뜨리며 눈물로 작별을 고했다. 그런 뒤 조용히 목을 맸다.


그런 얼마 후, 부러진 바늘 조각 틈에서 조그만 벌레 한 마리가 태어났다. 딱정벌레처럼 생긴 벌레는 꼼지락거리고 돌아다니면서, 신기하게도 주변에 있는 쇠붙이들을 먹기 시작했다. 이른바 불가사리 괴물의 탄생이었다. 괴물은 쇠붙이를 먹을수록 몸집이 커져만 갔다.

어느덧 강아지만큼 커진 불가사리는 먹을 것이 떨어지자, 인근에 있는 절로 들어가서 금붙이며 쇠북 가마솥 등을 마구 먹어치웠다. 당시에는 어느 절을 막론하고 타락하고 부패한 중들이 많아서, 그만큼 먹을 것도 풍부하였다.

중들은 경악하여 주문을 거꾸로 외우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쏜살같이 달려 내려가 관가에 신고하였다. 신고를 받은 나졸들이 녹슨 창을 꼬나 들고 비대한 몸으로 숨을 씩씩거리며 출동했지만, 전혀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소문은 금방 송도 전체로 퍼져 나갔다.

마침내 몸집이 황소만큼 커진 괴물은 인가로 내려와서 가마솥, 놋그릇, 대야, 주전자, 쇠스랑 등 닥치는 대로 쇠붙이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가난한 집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고, 부잣집만 골라 들어가서 쇠를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웬일인지 돈을 즉 엽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서워서 벌벌 떨던 백성들은 은근히 괴물을 찬양하며 따르기 시작했다.

=원,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도 착하고 기특할까!

=그러게 말이야. 저 괴물 저거 보통 영물이 아니야!

부자들은 공포에 떨며 대문을 틀어막고 바깥출입을 금하였다. 군대가 출동하여 아무리 활을 쏘고, 창과 칼로 찌르며 대적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괴물을 불가사리라고 불렀다. 이제 덩치가 산 만 해진 불가사리는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의 집을 부수고 들어가서, 산더미처럼 쌓아둔 엽전 꾸러미를 비롯해서 온갖 금붙이며 쇠붙이들을 모두 먹어치웠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럴수록 백성들은 더욱 환호하였다.

=드디어 하늘이 못된 부자 놈들과 부패한 고관대작 놈들에게 천벌을 내렸도다!

소문은 삽시간에 온 나라에 퍼졌다. 공포에 질린 고관들은 즉시 원나라 군대의 장수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아니, 그깟 괴물 하나를 못 잡아서, 지금 이 난리를 피우고 있단 말이요? 당신들 고려 군대는 도대체 뭘 하는 군대요, 응?”

“그, 그런데 그게, 보통 요상한 괴물이 아니라서---.”

“허허! 우리 원나라 군대가 그놈을 단칼에 요절낼 테니, 똑똑히 잘 보시오!”

원나라 장수는 고려 군대를 한껏 비웃으며 큰소리를 쳤다.

마침내 원나라 군대가 총출동하여 진을 치고, 불가사리와 대적을 하였다. 먼저 기마병들이 앞장서서 말을 달리며 활을 쏘았다. 하지만 세계를 제패한 그 용맹한 기마병들이 아무리 덤벼들어도 불가사리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날쌔게 달려드는 기마병들을 가볍게 튕겨낼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치명상을 입고 멀리 나가떨어졌다. 칼과 화살과 방패도 유난히 맛있게 날름날름 먹어치웠다.

첫 대결에서부터 원나라 군사들은 무기를 모두 먹이로 뺏기고, 무수한 사상자를 내고는 줄행랑을 쳤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한 패배였다. 겁에 질린 원나라 장수와 병사들은 커다란 공포와 혼란과 수치심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몸을 잔뜩 사리고는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말았다.

=불가사리 만세!

=세상을 구제하러 오신 미륵님 만세!

백성들은 불가사리를 말세에 출현한다는 미륵불의 화신쯤으로 여겼다. 그리고 뒤를 따라다니며, 고관대작들의 집이 차례차례 망가지는 걸 보면서 통쾌해했다. 그동안 억압받고 수탈당한 데 대한 분풀이로는 그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살림살이가 더 나아지지는 않았다. 나라가 바로 서기에는 너무 늦었던 것이다.

이렇게 온 나라가 커다란 혼란에 빠져있을 때, 마침 송악산 속 깊은 곳에 서 있는 소나무 근처를 지나던 어떤 고승이 여인의 주검을 발견하고는 정성껏 장례를 지내주었다. 그리고 불가사리를 찾아가 주문을 외웠다.

고승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주문이 끝나자 불가사리는 그 자리에서 스르르 녹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동안 삼켰던 엽전이며 금은보화 쇠붙이 등을 몽땅 다 토해냈다. 그러자 가난한 백성들이 달려들어서 이를 골고루 나누어 가졌다. 그런 얼마 후, 고려는 망하고 말았다.

그 후, 세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세상이 망할 때가 되면, 불가사리가 먼저 알고 찾아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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