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수상한 무기 배치를 둘러싼 서글픈 우화
=먼 나라에서 수상한 사도들이 우리 고장에 몰려온다!
=우리를 지켜주러 오는 정의의 사도들이니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자!
=아니다. 그들은 사랑의 사도가 아니라 죽음의 사도들이라더라. 정신 차려라!
=진짜 속셈을 알 수가 없고, 또 우리 지역을 망칠 게 뻔하다. 절대 오면 안 된다!
참외 맛이 좋기로 유명한 지역에 뜬금없는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벼라 별 얘기들이 다 오가면서, 조용하고 평화롭던 고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먼 나라에서 사도 일행이 도착하였다. 그들은 하늘을 지키는 성스러운 임무를 띠고 신앙의 본국에서 은밀하게,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가운데 특별히 파견된 것이었다.
“우리는 악마를 퇴치하는 위대한 능력을 지닌 사도들이다! 그러니 어서 길을 비켜라!”
한밤중에 도적 떼처럼 들이닥친 사도들은 막무가내로 주민들의 땅을 빼앗고는, 널찍한 부지에다 본부를 차리고 망루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이게 다 나라에서 뒷배를 봐주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라에서도 오래 전에 신앙의 주도권을 빼앗긴 터라, 사도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아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게 뭐 하는 개수작들이오?”
성난 주민들은 저마다 낫과 삽과 괭이 등을 들고 나와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어허! 하늘을 지켜주러 온 우리 사도들에게 감히 대들다니, 참으로 무례하도다!”
사도들은 이미 반발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더욱 험상궂게 인상을 쓰고 나왔다.
“하늘을 지켜주러 왔다니, 아니, 우리 하늘 어디에 구멍이라도 크게 났답디여?”
“와, 하하하!”
둘러선 주민들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대대로 참외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면서, 맹목적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온 주민들은, 평소 거룩하게 우러러보던 먼 나라의 사도들과 커다란 갈등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허허! 이런 무식하고 한심한 무지랭이들을 봤나.”
“그렇소. 우린 땅만 파먹고 살아온 무식하고 한심한 무지랭이들이오. 그러니 어디 성스러운 사도님들께서 차근차근 설명 좀 해주시오.”
“자고로 눈에 보이는 이 세상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너희들도 잘 알 것이니라.”
“그렇소.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그래서 누가 뭐래도 신을 열심히 믿고,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한다는 말 아니오? 그런 말은 하도 들어서 귀에 딱쟁이가 생겼소.”
“허허! 알기는 잘 안다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지금 너희들 머리 위의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느니라.”
“뭐요? 멀쩡한 하늘에 구멍이 뚫려요?”
“그렇다. 그게 다 너희들을 잡아먹으려는 악마들의 소행이니라.”
“예끼, 여보슈. 벌건 대낮에 하늘이 뚫리다니, 세상에 그런 농담이 어디 있소. 안 그렇소?”
“맞아, 맞아!”
“어허, 농담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니까 그러는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호시탐탐 너희들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 저 악마의 무리들을 무시하고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는다면, 하루아침에 몽땅 하늘나라로 직행하는 수가 있으니, 잘들 생각해 보거라.”
“아, 그렇담 시방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악마가 도대체 누구요? 제발 좀 알려주시오.”
“그건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니라. 설령 알려준다 한들, 악마가 얼마나 교활하고 변신을 잘하는데, 너희 같은 무지랭이들이 알아보기나 하겠느냐. 우리 사도들이 악마라고 하면 그것이 바로 악마인 줄 알거라. 그리고 악마로부터 하늘을 지켜줄 테니, 너희들은 그저 우리를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라, 갓 뗌!”
“그럼, 악마가 저 높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뭐 그런 말이요?”
“높은 곳에 숨어 있다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쏜살같이 내려오지. 그래서 저 하늘을 지키려고 우리가 이렇게 온 것이니라. 이제 알겠느냐?”
“악마가 하늘 높은 곳에 숨어 있다가 내려온다는 말은 평생 듣던 중 처음이오.”
“무식한 것들 같으니라고, 쯧쯧쯧! 그것도 보통 높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높은 고고도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큰 문제란 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런 고고도에서 쏜살같이 내려오는 걸 어찌 막는단 말이오?”
“어허, 너희들이 지금 우리 사도들의 능력을 감히 의심하는 것이냐?”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지 않소?”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특별한 망루를 세우고 보초를 서려는 게 아니냐. 우리도 다 비장의 대비책이 있으니, 걱정들 하지 말고 한번 믿어 보거라.”
주민들과 숱한 마찰을 겪으면서도 사도들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망루 쌓는 작업을 착착 진행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금껏 그들이 힘으로 퍼뜨려온 신앙의 상징물과 똑같이 생긴 아주 괴상망측하고 거대한 망루가 마을 한가운데 우뚝 섰다. 어찌 보면 든든한 파수꾼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매서운 감시자 같기도 했다.
=사도들이 저리 다급하게 망루를 세운 목적이 사실은 다른 데 있다더라!
=고고도는 순전히 핑계고, 우리 신앙을 감시하려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더라!
=그게 아니고, 바다 건너 나라를 감시하고, 신앙을 강요하려는 속셈이라더라!
망루가 세워진 이후, 이상한 소문들이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은 불안하기만 했다. 악마가 하늘 위 고고도에서 쳐들어오는 것이야 사도들이 나서서 막아주면 되지만, 바다 건너 나라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주민 모두의 생계가 끝장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을 여러 번 겪었던 터라, 다들 걱정이 태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감히 바로 코앞에서 우리를 감시하려 들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사악한 사도 무리들은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망루를 하루빨리 철거하라!
=망루를 철거할 때까지, 참외는 단 한 개도 사가지 않을 테니 그리 알아라!
바다 건너로부터 강력한 경고가 득달같이 날아왔다. 그동안 이 고장에서 나는 참외를 그 나라에서 전부 사 갔는데, 이제 단 한 개도 사가지 않겠다니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악마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다 우리 모두 다 굶어 죽게 생겼소.”
“그러게 말여. 진짜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눈앞이 캄캄하구만.”
“무슨 대책을 강구해야지, 이대로 앉아서 굶어 죽기만 기다릴 수는 없소.”
성난 주민들은 또다시 저마다 낫과 삽과 괭이 등을 들고 사도들에게 몰려갔다. 하지만 말도 몇 마디 붙여보지 못하고 쫓겨났다.
“입으로는 우리하고 똑같은 신을 믿는다고 떠벌리면서도, 저렇게 양다리를 걸치고 이쪽저쪽 눈치나 보며 사는 무지랭이들은 죽어도 싸지.”
“오우, 갓 뗌! 갓 뗌! 히히히!”
사도들이 비아냥거리며 킬킬대는 소리가 주민들의 등 뒤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집 집마다 팔리지 않은 참외가 한숨과 함께 쌓여만 갔다.
이렇게 분위기가 흉흉하고 뒤숭숭하던 어느 날, 드디어 오늘 밤에 고고도가 날아올 것이라는 다급한 전갈이 전해졌다.
“드디어 사도들이 말하던, 그 무시무시한 성전이 벌어지는 건가?”
“그런 것 같네. 다들 마음 단단히 먹고 대비를 철저히 하세.”
“사도들이 저렇게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안 그래?”
“그렇기는 하지만, 혹시 고고도를 못 막아서 난리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설령 그렇다 한들, 그것도 다 신의 뜻이니 운명을 하늘에 맡겨야지, 뭐 별수 있나.”
“자자, 우리 마지막으로 참외나 실컷 먹고 나서, 대비를 하든지 말든지 하자고.”
평소 열렬한 성도를 자처하던 주민들은 자기들이 손수 기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참외를 배불리 먹고는, 비장한 마음으로 사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망루 근처로 향했다. 그리고 밤을 새워 성전이 벌어지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성전이 벌어지는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먼동이 훤하게 터 올 때까지, 하늘에서는 아무런 기미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고고도는 이번에 오지 않는 대요!”
다들 피로에 지쳐서 쓰러지려고 하는 찰나, 사도 본부에서 심부름하는 젊은이 하나가 나와서 주민들에게 빠르게 전하고 들어갔다.
“그래? 어쨌거나 그거 참 잘된 일이로구만.”
“그런 셈이지. 고고도가 와 봐야 서로 좋을 건 없으니까.”
“정말 잘 됐어. 혹시 불똥이라도 튀면 우리만 손해지, 뭐.”
“근데 어젯밤엔 왜 꼭 금방이라도 올 것처럼 그 난리를 쳤을까?”
“일부러 그러기야 했겠어? 큰일을 하다 보면 틀릴 수도 있는 거지, 뭐.”
“자자, 배도 출출한데 집에 가서 잔뜩 쌓여있는 참외나 먹자고.”
그 뒤로도 이와 같은 일이 몇 번 더 되풀이되었다. 그럴 때마다 신심 깊은 주민들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해프닝이 계속되자, 주민들은 이제 사도들이 무슨 말을 해도 시큰둥하게 여길 뿐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양치기 소년이 따로 없었다. 주민들은 누군가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위반하기라도 하면, ‘고도리는 이번에도 오지 않는다네!’ 하고 썰렁한 농담을 하며 낄낄댈 정도였다. 그동안 억지 춘향으로 믿어온 신앙에도 금이 크게 가서,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참외 판매 중단으로 인한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주민들은 새로운 판로를 뚫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집집마다 팔리지 않은 참외가 잔뜩 쌓여 갔다. 그리고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토록 달콤하고 향기롭던 참외 냄새 대신에, 고약하기 이를 데 없는 구린내가 지역 전체에 진동하였다.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살겠소. 뭔가 결단을 내려야겠소!”
“옳소! 이럴 바에야 참외밭을 싹 다 갈아엎고, 다 같이 죽읍시다!”
“아니,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죽긴 왜 죽는단 말이요. 끝까지 싸웁시다!”
“자, 다들 우선 썩어가는 참외부터 밖으로 옮깁시다.”
마을 주민들은 젊고 똑똑한 이장의 말을 따라 썩어가는 참외를 망루 주변으로 져 날랐다. 이장에게는 뭔가 남모르는 비밀 대책이 있는 것 같았다. 전에도 기발한 방법으로 위기에 빠진 마을을 구해낸 적이 있었다.
몇 날 며칠을 나르자, 망루를 중심으로 썩은 참외들이 둥글게 성곽처럼 쌓였다. 그런 뒤, 이장은 주민들과 함께 대대로 믿어 온 마을의 수호신에게 경건하게 고사를 지냈다. 그들은 평소에는 사도들과 똑같은 신을 믿었지만, 위급할 때면 언제나 마을의 수호신을 찾았다.
과연 고사를 지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썩은 참외 무더기에서 개똥참외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지금껏 보지 못한 매우 특이한 개똥참외였다. 그리고 개똥참외에서 빠르게 뻗어 나온 넝쿨들이 망루를 칭칭 휘감기 시작했다. 넝쿨들이 얼마나 질기고 강했던지, 당황한 사도들이 아무리 큰 칼로 쳐내고 톱으로 썰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럴수록 더욱 무성하게 휘감고 올라갈 뿐이었다.
“오우, 갓 뗌! 갓 뗌!”
사도들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그저 넋 놓고 바라다 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망루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고, 풀이 잔뜩 죽은 사도들은 올 때처럼 야밤을 틈타 자기네 나라로 도망가고 말았다. 이제 망루의 잔해가 을씨년스럽게 쌓인 공터에는 크고 튼실한 개똥참외 천지였다. 그리고 밤마다 그 위를 개똥벌레들만이 제 세상을 만난 듯 무심하게 날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