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고독하면서도 참 따뜻하고 순결했던 어느 시인을 추모하며!
다이아몬드 중에서도 최고로 친다는 천연 물방울 다이아!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 커다란 물방울 다이아 목걸이가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내로라하던 어느 권력자의 안방마님이 그걸 어찌어찌 손에 넣은 뒤 - 아마도 뇌물로 받았을 확률이 높지만 - 아무도 모르게 장롱 깊숙이 감춰놓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간 큰 대도 하나가 귀신같은 솜씨로 훔쳐서 팔려고 은밀히 내놓았다. 역시 국민대도였다. 하지만 너무나 귀하고 비싸고 아름다워서 그만 들통이 났고, 경찰에 붙잡히는 바람에 비로소 만천하에 공개가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감춘 자나 훔친 자나 대단한 도둑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친견한 소수의 전문가들은 저마다 최고의 찬사를 발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떤 이는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인어공주의 눈동자 같다고 했고, 어떤 이는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눈가에 맺힌 눈물 같다고 했다. 또 푸르스름한 빛깔이 흡사 달빛에 비친 맑고 깊은 바닷물처럼 신비로우면서도 보는 각도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하는 게, 세상에 몇 개 없는 진귀한 보물이라고 했다.
더욱 재미난 사실은, 서민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고 화려하고 희귀한 그 다이아 목걸이는 나중에 주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이 서로 자기 것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하는 바람에 또 한 번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고귀한 품격에 어울리지 않게 구린 데가 아주 많은 물건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또 누가 그걸 갖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그 후 알려지거나 보도된 바가 전혀 없어서, 행방이 묘연하기만 하다. 추측해 보건대, 아마도 우리나라 최고 재벌가의 마나님 품에서 고이 잠자고 있지는 않을까.
이번에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커다란 눈물방울 모양의 사리가 화제였다.
사리라고 하면 보통 법력이 높은 고승들이 입적한 뒤 남기는 것인데, 어느 가난한 시인의 유골에서 커다란 눈물방울 모양의 사리가 나와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그 시인이 생전에 그만큼 법력이 높았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기야 어느 이름 없는 촌로의 몸에서도 사리가 다량 나온 적이 있으니, 이상하다고만 할 건 아니었다.
사연인즉슨 이랬다.
평생을 가난하게 독신으로 살면서, 술 잘 먹고, 놀기 잘하고,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 돕는 데 오지랖 넓게 앞장서기 잘하고, 바람 잘 피우고, 시는 더욱 잘 쓰기로 호가 난 Y 시인이 어느 날 갑자기 암으로 쓰러졌다. 그 좋아하던 술맛이 딱 떨어지면서 속이 아프고 쓰려서, 난생 처음 대학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간암 말기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은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그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하지만 정작 Y 시인은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듯이 덤덤히 받아들였다. 그야말로 체념 반, 달관 반의 표정이었다.
“내가 말여, 저 천상계에 있을 때 얘긴디---.”
그는 문병 간 친구들에게 평소와 다름없이 기묘한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키는 목소리로 천연덕스럽게 말을 꺼냈다.
“또 그 얘기냐? 시방 이 판국에 그런 말이 나와?”
한 친구가 퉁방을 먹였다.
“그때 거 뭐시냐, 내가 안 되는 줄 알민시롱 선녀들이랑 좀 놀았지, 히히! 말하자면 금지된 사랑을 몰래 즐겼는디, 아 글쎄 스캔들을 너무 많이 일으켜서 나중에는 천상계가 온통 떠나갈 듯이 시끄러웠다니께.”
Y 시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동안 골백번도 더 써먹은 테잎을 계속 틀었다.
“그래, 이 썩을 놈아! 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야.”
친구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그는 더욱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그래서 결국 천상계의 법을 어지럽힌 죄로다가 지상으로 추방을 당해버렸지 뭐냐, 히히힛! 아, 근데 내가 여기로 추방당해 와 보니까, 그때 천상계에서 같이 놀던 선녀들도 몽땅 추방당해서 내려와 있는 게 아니겠냐?”
“아예 구운몽을 새로 써라.”
“아니, 이놈은 구운몽이 아니라, 십팔운몽은 써야 할 거야.”
“맞아, 맞아, 허허허!”
“히히! 그러니 내가 이승에서 술을 안 먹고, 바람을 안 피우고 살 수가 있겠냐? 내가 평소에 술 좋아하고 여자 밝히고 한데는 다 그만한 깊은 사연과 까닭이 있었다는 그런 얘기다. 이제 좀 알아 듣것냐?”
친구들의 호응에 Y 시인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래. 이제부터 더 잘 알아서 잘 모실 테니, 제발 빨리 완쾌돼서 술 더 많이 먹고, 바람 더 많이 피워라.”
“아무렴 그래야지. ---근데 시방 간암 말기라는데, 치료가 될까?”
“아무리 말기 암이라 해도 낫는 경우도 종종 있어. 마음 굳게 먹고 용기를 내. 낫는 사람은 낫게 돼있다니까.”
“그려, 그려. 늬 말대로 한번 나아볼게.”
“야, 여기 백두산에 사는 곰에서 채취한 귀한 웅담을 구해왔으니까, 이거 먹고 제발 기운 좀 차려라.”
중국과 무역을 크게 하는 친구가 가지고 온 보자기에서 웅담을 꺼내 건넸다.
“백두산 웅담이라고? 그 귀한 걸 어찌 구했냐?”
누리끼리한 Y 시인의 얼굴에 대번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코에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가짜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임마!”
“그게 아니라, 날 위해 몸을 바친 이 백두산 곰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거여.”
“그래, 알아줘서 고맙다. 그리고 다른 놈은 몰라도, 넌 꼭 살아야 해.”
“그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늬가 없으면 우린 앞으로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 다들 안 그러냐?”
“맞아, 맞아!”
둘러선 친구들이 고개를 과하게 끄덕이며 동의를 했다.
“알았어. 정 그렇다면 너희들의 성의가 괘씸해서라도 꼭 살 테니께, 두고 봐!”
그는 두 주먹을 꽉 쥐고, 반드시 병마와 싸워 이기겠노라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얼마 후에 친구들이 다시 찾아가니, Y 시인의 표정은 영 딴판이었다.
“아아, 옛날에 놀던 천상계가 너무도 그립구만---!”
그는 먼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이젠 내가 놀던 데로 다시 돌아가야 되겠어.”
“지랄 말고, 밥이나 잘 챙겨먹고, 기운 내.”
“이제 여기 유배 생활도 지겨워. 빨리 돌아가서 예전처럼 신나게 놀고 싶구만---.”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Y 시인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말대로라면 떠나온 천상계로 되돌아간 것이었다.
그의 시신을 화장했을 때, 신기하게도 유골 속에서 커다랗고 투명한 구슬 같은 것이 하나 나왔다. 꼭 순결한 처녀가 방금 흘린 커다란 눈물방울을 연상케 하는 그런 모양이었다. 사리니 뭐니 하는 말들이 오가며 주변이 술렁거렸다.
사실 도 닦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지만, 어느 고승 못지 않게 마음을 비우고 살아 온 Y 시인의 몸에서 사리가 나왔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은 없었다. 또한 사리가 도력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설이 분분한 형편이기도 했다.
“이거 혹시, 전설로 전해내려 오는 그 다마 아니야?”
익살스런 친구 하나가 조심스럽게, 그러나 호기심에 들떠서 말했다.
“뭐? 다마?”
“응. 뭐, 왜, 그런 거 있잖아---.”
“아니야. 그쪽 방면은 내가 잘 아는데, 다마는 절대 아니야!”
다른 친구가 사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단언을 했다.
“늬가 그렇다면 그럴 거야, 히히!”
“그럼 도대체 뭘까?”
“이거, 이제 보니 소주 사리구만!”
그와 가장 술을 많이 마셨던 친구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소주 사리?”
“그래. 평소에 밤낮으로 소주를 그리도 줄창 마셔 대더니만, 이렇게 맑고 투명한 소주 사리를 남긴 게야.”
“허허, 그거 아주 그럴듯한 해석이구만!”
“근데 왜 하필이면 눈물방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거야 뻔하지. 소주를 마실 때마다 겉으로는 온갖 농담과 욕설과 음담패설을 해대면서 낄낄댔지만, 속으로는 엄청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지.”
“맞아, 맞아!”
둘러선 친구들이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그가 예전에 발표했던 시 중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있음을 상기해 냈다.
오오,
그대가 흘리는 소주처럼 맑고
고운 눈물방울들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
늦가을의 저물어가는 강물에 분골을 뿌리면서, 한 친구가 비장한 어조로 읊조렸다. 그러자 다들 따라 읊으면서, 소주 같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자, 자, 우리도 이제 소주나 마시러 가자고!”
Y 시인의 사리를 품에 고이 간직한 친구가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그래, 그래!”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이 사리를 앞세워서, 세상을 한번 구원해 보자구!”
친구들은 싸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화려한 불빛이 유혹하는 도심의 술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