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똥침

과연 누굴 위한 진보와 보수인가?

by 김혁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답시고 침을 튀겨가면서 열변을 토하고, 무슨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누구보다도 정의로운 척 핏대를 올리고 설쳐대면서도, 속으로는 사사건건 제 잇속만 따지고 챙기는 교활하기 짝이 없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은 오늘도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하는 해묵은 문제를 놓고 박 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태초에 알이 있었느니. 알에서 만물이 나왔느니라.”

“태초에 닭이 있었느니. 닭 울음소리가 만물을 깨웠느니라.”

“알 없이 생긴 닭을 봤느냐? 난생설화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니라.”

“닭 없이 생긴 알을 봤느냐? 시조새 화석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라.”

“어허, 누가 뭐래도 알이 시초다. 근본도 모르면서 떠들지 좀 말거라.”

“어허, 누가 뭐래도 닭이 시초다. 근본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것들 같으니.”

“저 아름다운 알을 보라! 알은 꿈과 희망과 미래의 상징이다.”

“저 믿음직한 닭을 보라! 닭은 법과 질서와 안정의 상징이다.”

“혁명이 뭔지 알고나 떠드느냐?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다.”

“알만 깨고 나온다고 다 혁명이냐? 따뜻하게 품어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다.”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과 아픔이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닭이 된 단 말이다.”

“어미닭이 따뜻하고 안전하게 품어주어야 비로소 알을 깨고 나온 단 말이다.”

“누가 뭐래도 알이 닭을 결정한다. 알이 좋아야 좋은 닭이 나오지.”

“누가 뭐래도 닭이 알을 결정한다. 닭이 건강해야 좋은 알을 낳지.”

“어허, 알이야말로 닭의 미래다. 제발 미래를 착취하지 마라.”

“어허, 닭이야말로 알의 미래다. 제발 현실을 착각하지 마라.”


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다. 거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 뒤에 각각 수많은 후원자와 지지자들이 포진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판돈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쌍방 간에 눈곱만큼의 양보도 있을 수가 없었다.

“역사가 조금씩이나마 진보해 나가는 것이 누구 덕 인줄 아느냐.”

“나라가 망하지 않고 이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이 누구 덕 인줄 아느냐.”

“세상이 진보하는 것은 알들이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질서가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은 닭들이 따뜻하게 품어주기 때문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애써 외면하자는 거냐?”

“현실 세계의 엄중함과 복잡다단한 사정을 애써 외면하자는 거냐?”

“이런 제 잇속밖에 차릴 줄 모르는, 돼지 같은 탐욕주의자들 같으니.”

“이런 모두를 망하게 하는, 유치하고 철딱서니 없는 몽상가들 같으니.”

“닭도 닭 나름이다. 벼라 별 괴상망측한 닭들이 다 있지 않으냐?”

“알도 알 나름이다.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알들도 다 있지 않으냐?”

“사실 말이지, 세상에는 멍청하고 고집 세고 못된 닭이 얼마나 많은가.”

“맞다. 하지만 세상에는 못나고 구제불능인 무정란도 얼마나 많은가.”

“닭들이 무능하고 무책임해서 알을 썩힐지 어떻게 아느냐?”

“이상한 알들 속에서 독사나 까마귀가 나올지 어떻게 아느냐?”

“어허, 닭 벼슬도 벼슬이라고 뻐기고 으스대는 꼬락서니하고는, 쯧쯧!”

“어허, 세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달걀이나 던져대는 허세하고는, 쯧쯧!”

“우린 멍청하고 고집 세고 못된 닭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썩 물러가라.”

“우리도 못나고 구제불능인 이상한 알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썩 물러가라.”


싸움에 지친 두 사람은 잠시 휴전을 했다. 그때 한 농부가 소달구지에 짐을 잔뜩 싣고 두 사람 앞을 유유히 지나갔다. 두 사람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디가 뜬금없이 소와 수레바퀴 문제로 논쟁을 이어갔다.

“수레를 잘 끌려면 무엇보다도 소가 튼튼해야 하는 법이지.”

“수레를 잘 끌려면 무엇보다도 바퀴가 튼튼해야 하는 법이지.”

“바퀴가 아무리 튼튼해도 소가 부실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소가 아무리 튼튼해도 바퀴가 부서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평소에 소를 잘 키우고 돌봐야 험한 길도 거뜬히 갈 수가 있다고.”

“평소에 바퀴를 잘 보수해 놔야 험한 길도 거뜬히 갈 수가 있다고.”

“너무 심하게 부려먹어서 소가 비실비실하면 어떻게 수레를 끌 수 있는가?”

“너무 험하게 사용해서 바퀴가 너덜너덜하면 어떻게 수레가 갈 수 있는가?”

“그러니 무엇보다도 소에게 양질의 먹이와 충분한 휴식을 허하라고.”

“그러니 무엇보다도 바퀴에게 최고급 수리와 충분한 휴식을 허하라고.”

“실수로 조금 갓길로 벗어났다고 해서 대뜸 미친 소라고 욕하지 마라.”

“바퀴가 돌멩이에 걸려서 조금 덜컹댄다고 대뜸 반동이라고 욕하지 마라.”

“수레를 호사스럽게 치장하는 데만 그렇게 신경 쓰면, 소는 누가 키우나?”

“소를 뻔뻔하게 콩밭에 매놓고도 그렇게 큰소리만 쳐대면, 수레는 언제 끄나?”


급기야 화가 치밀 대로 치민 두 사람은 얼굴을 붉힌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삿대질을 하며 욕을 마구 퍼붓기에 이르렀다.

“어디 마음껏 꾸미고 치장해 봐라. 그런다고 늙은 닭이 봉황 된다더냐?”

“어디 마음대로 아끼고 보듬어 봐라. 그런다고 썩은 알이 황금알 된다더냐?”

“제아무리 그래봐야 역사는 결국 우리 편이다. 민중 만세!”

“제아무리 용 써봤자 시장은 언제나 우리 편이다. 자본 만세!”

“허허, 배도 출출한데 후라이드 치킨이나 해 먹을까? 아님 양념통닭을 해 먹을까?”

“허허, 기분도 꿀꿀한데 술안주로 계란찜이나 해 먹을까? 아님 계란말이를 해 먹을까?”

“에라이, 평생 똘마니들하고 닭싸움이나 실컷 하다 늙어 죽어라.”

“에라이, 평생 똘마니들하고 알까기 게임이나 하다 늙어 죽어라.”

“이런 보수의 탈을 쓴 개 뻥 사기꾼 같으니라고!”

“이런 진보의 가면을 쓴 개 뻥 사기꾼 같으니라고!”

“야, 이 순 대빵 보수 꼴통 파시스트 난봉꾼아!”

“야, 이 순 대빵 좌익 좀비 빨갱이 선동꾼아!”


이렇게 계속 다투다가 마침내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두 사람은 할 수 없이 인근 산속에 살고 있는 현자를 찾아가서 답을 구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는 오래 전에 있었던 촛불 행진을 승리로 이끈 주역중의 한명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라 전체에 어둠이 엄습하였을 때, 국민들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연일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둠의 배후세력을 규탄하며 행진하였다. 이 현자도 앞장서서 행진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마침내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촛불은 어둠을 물리쳤다. 어둠을 만들어낸 배후세력들은 정체가 발각되어 멀리 쫓겨났다. 그 후 <촛불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불꽃인가? 아니면 촛대인가?>하는 거창한 논쟁이 벌어졌다. 곳곳에서 갑론을박으로 불똥이 튀고 한창 시끄러울 때, 우리의 현자는 “촛불의 실체는 불꽃도 아니고 촛대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촛불을 든 사람의 마음이다!”라고 일갈함으로써 단번에 논쟁을 매듭지었다.

어쨌거나 자신을 찾아 온 이유를 차분하게 다 듣고 난 현자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두 사람에게 닭 열 마리와 달걀 백 개를 가져오면 명쾌하게 결론을 내려주겠노라고 말했다. 며칠 후에 두 사람이 닭과 달걀을 마련해서 찾아가자, 현자는 만면에 미소를 환하게 지으며 마당에 내려놓고 10일 후에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10일 후에 다시 찾아가니, 현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돌아오는데, 산 아래 동네 공터 한 가운데 달걀 껍질과 닭 뼈가 수북이 쌓여있는 게 보였다. 물어 보니 현자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며칠간 푸짐하게 먹고 마시며 잔치를 신나게 벌였다는 것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뺀질뺀질한 상대의 얼굴을 서로 바라보다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진보를 가장한 보수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구.”

“사실 우리도 보수를 가장한 진보라고 해도 아주 틀리지는 않다구.”

“솔직히 우리는 보수가 되고 싶어서 진보를 하는 거라고 할 수 있다구.”

“솔직히 우리도 진보가 되고 싶어서 보수를 하는 거라고 할 수 있다구.”

“그래서 우리는 보수적 진보를 위한 진보적 보수를 하는 거라구.”

“그래서 우리도 진보적 보수를 위한 보수적 진보를 하는 거라구.”

“허허, 이제 보니까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교집합을 이루고 있군.”

“그래, 그러고 보니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성감대를 공유하고 있군.”

“이런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진보 친화적인 보수 꼴통 같으니.”

“이런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보수 친화적인 진보 좌빨 같으니.”

“히히히!”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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