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특출나면서도 전혀 특출나지 않았던 그분의 이야기
그가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된 것은 어린 시절에 우연히 겪은 어떤 사건 때문이었다.
한창 키가 크느라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자주 꾸던 열 두어 살 무렵의 어느 날, 그는 집 앞 냇가에서 굵고 기다란 대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가지를 훔쳐 달아나는 어린 좀도둑을 목격하였다.
“저, 저 놈 잡아라!”
어머니의 고함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어린 도둑의 뒤를 쫒아갔다. 하지만 왠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그냥 놓아주고 말았다. 자신보다 몸집도 훨씬 왜소한데다, 어딘지 모르게 뒷모습이 눈에 익었던 것이다. 어쩌면 옆 동네 사는 친구 동생 같기도 했다.
“오죽하면 남의 집 헌 옷을 다 훔쳐가랴---.”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마침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누나에게 다가가 멋쩍게 웃으며 딴청을 부렸다. 그리고는 등 뒤에서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어머니의 꾸지람을 피해, 엉겁결에 장대높이뛰기를 하다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와, 하하하-!”
비록 냇물 한가운데 곤두박질을 치는 바람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웃음꺼리가 되고 말았지만, 잠시나마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만큼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 짜릿한 쾌감을 잊지 못해서 틈만 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장대높이뛰기를 하였고, 나중에는 제법 물이 많이 흐르는 냇물도 능숙하게 휙휙 넘나들 정도까지 되었다.
중학교 입학 후, 그는 육상부에 들어가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특이한 재능을 눈여겨 본 담당 체육교사로부터 좀 더 체계적인 훈련을 받게 되었다. 궁핍한 시골 학교인지라 제대로 된 장비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본디 날렵하고 팔다리가 긴 체형에다 선천적으로 운동 신경이 발달한 그의 실력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장대높이뛰기는 이제 그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하늘을 향해 새처럼 몸을 힘껏 날릴 때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지독한 가난과 멸시의 굴레로부터 해방되는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꼈고, 간혹 아랫도리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허공을 향해 크게 외쳤다.
“야! 정말 기분 좋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포기하려고 했던 고등학교 진학을 가능케 한 것도, 좌절과 실의에 빠져 탈선의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해준 것도 다름 아닌 장대높이뛰기였다. 그는 한 눈 팔지 않고 바보처럼 오로지 높이뛰기에만 매진했다. 한 치 또 한 치---, 기록이 높아져 갈 때마다 그의 꿈과 포부도 커져만 갔다.
'높이 날아오를수록, 우리 모두가 꿈꾸던 세상도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리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코치도 없이 홀로 빈 운동장을 찾아다니며 연습에 몰두하였다. 틈만 나면 산과 들을 힘차게 달리며 체력을 단련하기도 했다. 그렇게 뼈를 깎는 인고의 세월을 보낸 뒤, 몇몇 육상대회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그는 장대높이뛰기 분야의 떠오르는 샛별이 되었다.
=혜성처럼 나타난 우리 육상계의 기대주!
=썩은 체육계에 전혀 물들지 않은 야생마!
=낙후된 육상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꿈나무!
그의 이름과 사연이 각종 매스컴을 장식하였다.
당연히 인기도 많이 끌었다. 뛰어난 실력에다 성실한 노력, 자신을 벼랑 끝까지 내모는 강한 승부사 기질, 투박하고 소탈한 촌놈 근성, 그리고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씨가 더해져서 인기 스타가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시합을 하는 곳이면 어디든 관중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열렬히 응원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고개를 숙이고 우직하게 자신의 본분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특히 자신을 이용해서 잇속을 챙기려는 협회나 여러 기업체 및 매스컴의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그런 태도에 팬들은 더욱 열광하며 <바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맞습니다! 여러분 말대로 저는 바보입니다!”
“바보인 저와 함께,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호소하며, 두 손을 모았다.
마침내 그는 기라성 같은 선수들을 제치고 당당히 국가 대표선수로 발탁되기에 이르렀다. 협회 임원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체육계에서, 소위 스포츠 명문대학을 거치지 않고 고졸 출신으로 국가 대표가 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도 그는 더욱 열심히 노력하였다. 당연히 대회 때마다 새로운 기록을 달성하며 팬들의 기대에 한껏 부응하였다. 그가 한 마리 새처럼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를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도 꿈과 희망이 조금씩 높아만 갔다.
=이렇게 우리 마음을 잘 알아주는 영웅은 처음이야!
=그래, 그가 있어서 비로소 세상 살 맛이 난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좋아하고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인기가 높을수록 당연히 안티 팬들도 늘어만 갔다. 특히 그의 성공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세력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끌어내리려고 혈안이 되었다. 출신 성분이 달라서 본능적으로 싫어한데다가, 자신들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지 않고, 올바른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를 국가대표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소한 흠이나 잘못이 눈에 띄기만 하면, 이를 크게 부풀려서 연일 집요하게 공격하였다. 심지어는 인격 말살을 하기 위해 치졸하기 짝이 없는 가짜 뉴스를 교묘하게 만들어서 퍼뜨리기까지 하였다.
=모 그룹으로부터 엄청난 뒷돈을 받았다더라!
=여자관계도 복잡하고, 형제간에도 매일 싸운다더라!
벼라 별 황당한 소문들이 다 떠돌았다. 하지만 아무리 험한 공격을 받아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이런저런 오해가 풀리고, 진실이 명백하게 밝혀질 거라고 믿었다. 팬들도 그런 그를 더욱 성원하고 두둔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짜 뉴스에 현혹된 세력들이 점차 세를 불리면서, 양쪽 진영 사이의 첨예한 대립과 긴장이 계속되었다.
=그는 우리의 희망이요 자존심이다. 끝까지 지켜내자!
=아니다. 그는 우리의 망신이요 수치다. 하루빨리 끌어내리자!
날이 갈수록 투쟁 수위가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급기야 바닷물이 갈라지듯 여론이 확연하게 두 갈래로 갈라졌다. 그에 관한 언쟁을 벌이다가 가족 간에 커다란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고, 오래 사귄 연인들이 원수가 되어 헤어지기도 했다.
파국은 너무나 빨리,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찾아왔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슬럼프에 깊이 빠진 그는 슬슬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기록도 갈수록 나빠졌다. 땅을 박차고 새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던 모습도 예전처럼 아름답지 않고 어설프기만 했다. 불길한 예감에 많은 사람들이 진심어린 우려와 충고를 보냈지만, 정작 그 자신은 태연자약했고 자신감에 넘쳤다.
평소 그의 성공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세력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나서서 거센 비난과 공격을 퍼부었다. 이제야말로 그를 확실하게 끌어내릴 수 있다고 확신한 듯 기세등등하였다. 팬들은 그에게 변함없는 애정과 성원을 보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모습은 점점 더 초췌해져 갔다. 당연히 별 흉흉한 소문이 다 돌았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번번이 벼랑 끝에서 살아났던 그도 이번에는 쉽지 않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알고 보니 문제가 심각했다. 오래전부터 허리 뼈 안에서 종양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깊은 곳에 생긴 것이라서 섣불리 수술을 할 수도 없었다. 설령 수술을 한다 해도, 그걸로 선수 생명은 끝이었다. 종양과 싸워가며 최선을 다해 신기록을 수립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서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기록은 점점 더 멀어져 갈 뿐이었다. 환호와 갈채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비판 여론이 들끓고, 그를 지지하던 많은 팬들마저 등을 돌리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협회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표를 교체하고야 말았다.
그는 이런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소박한 삶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그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것처럼 홀가분해 보였다. 고향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텃밭을 가꾸는 모습은 국가 대표선수 시절보다 훨씬 더 행복한 것 같았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인기가 많았다. 수척해진 몸으로 간간이 운동장에 나타나 후배들과 가볍게 몸을 풀며 재기를 모색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날지 못하는 새가 더 이상 새가 아니듯, 도전과 도약의 삶을 잃은 그는 생존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아무도 없는 경기장에 기다란 장대만 하나 달랑 들고 나타났다. 달빛에 비친 그의 모습은 어찌 보면 낡은 창을 들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려는 돈키호테 같았고, 어찌 보면 갈 곳을 잃은 슬픈 어릿광대 같았다.
'아, 철모르던 어린 시절이 너무나도 그립다!'
'그때로 돌아가서,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날아보고 싶구나!'
싸늘한 달빛만이 가득 찬 텅 빈 운동장을 천천히 돌며, 그는 영광과 좌절, 기쁨과 눈물, 희망과 절망, 승리와 패배, 환호와 비탄의 순간들을 낱낱이 회상하였다.
자신의 일생이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기나긴 화살표였던 것 같았다. 두 눈에서는 용암처럼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제 최소한의 근육만 남기고 군살이 완전히 사라진 그의 몸은 중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다.
'그래, 모든 게 운명이다!'
'새삼 누구를 원망하고, 또 누구를 미워하리!'
'잘 있거라! 내가 사랑했고, 날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여!'
'그리고 짧은 영광만으로도 넘치도록 과분했던 나의 시대여!'
한동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그는 마침내 힘차게 트랙을 질주하였다. 그리고는 한 순간 새처럼 높이, 높이 날아올랐다.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불멸의 기록이었다. 그와 동시에 육신을 빠져나온 그의 영혼은, 황금빛 화살이 되어 달빛 속으로 아득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