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쇳물 쓰지마라! 자동차도 만들지 말고, 가로등도 만들지 마라!
최근에 새 차를 구입한 사람들로부터 아주 이상한 민원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속력을 100킬로 이상으로 높일 때마다, 차에서 사람이 흐느껴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어느 특정 회사 제품만이 아니라, 여러 자동차 회사 제품에서 다 그렇다는 것이었다.
이런 수상한 민원은 전국 각지에서 쏟아졌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도 비슷했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나 차체에서 나는 소리와는 전혀 다른, 아주 특이한 소리라는 것이었다.
=꼭 누가 처절하게 울부짖는 것만 같아요!
=맞아요. 뭔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울음소리 같아요!
=톤이 굵고 낮은 게, 여자보다는 남자 목소리에 가까워요!
=무서우면서도 공포감보다는 왠지 슬프고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요. 어느 젊은 청년이 피맺힌 한을 세상에 알리려는 절규 같아요!
처음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민원을 접한 자동차 회사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피해 내용이 지극히 주관적인 데다,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노리는 음모일 가능성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안전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 차를 마련한 뒤 흔히 나타나는 지나친 기대감이나 경계심에서 오는 과잉반응으로 치부하고 무시하였다.
하지만 민원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태풍처럼 거세져만 갔다. 온라인상에서도 이게 환청이냐 아니냐를 놓고 설전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자동차 회사들도 할 수 없이 자체적으로 검증에 들어갔다. 검증 결과 민원내용이 모두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자동차 회사들은 즉각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정확한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엔진, 설계, 부품, 디자인, 조립공정 등 모든 부분이 다 완벽했다. 그런데도 100킬로 이상 달리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왔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어쨌거나 자동차 회사의 잘못이 분명하니 리콜을 해 달라!
=그렇다. 정서적인 피해도 엄연한 피해보상 대상이니 리콜은 당연하다!
=아니다. 안전상 아무런 하자가 없으니 우린 리콜을 해줄 의무가 전혀 없다!
=우리가 고객의 주관적인 느낌과 정서 문제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다!
=리콜 여부를 떠나서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원인이나 한번 규명해 보자!
이처럼 민원인 모임과 자동차 회사 측과 일반 소비자 단체 사이에 의견이 날카롭게 대립하였다.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각자 자신들의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래서 해결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럴 즈음, 한 아이가 이 문제에 대해 아빠와 얘기를 나누다가 불쑥 엉뚱한 말을 꺼냈다.
“아빠, 전 이 얘기를 들으면서 책에서 읽은 에밀레종 생각을 했어요.”
“에밀레종?”
“네.”
“왜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했니?”
“그 옛날 신라 때, 큰 종을 만들긴 만들었으나 소리가 나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어린아이를 쇳물에 넣고 다시 만들자 종소리가 아주 크고 멋지게 났다고 하잖아요. 어린아이의 슬픈 울음소리도 함께 섞여서 들렸다고 하고요. 이번에는 누군가 차를 만들 때 사람을 넣은 건 아닐까요?”
“하하하! 그건 전설일 뿐이야. 그만큼 정성을 들였다는 얘기지. 어쩌면 종 만들 때 수탈을 당한 백성들이 원한이 맺혀서 그런 얘기를 지어냈는지도 모르고. 설마하니 요즘 세상에 그런 일이 생길 리가 있겠니? 너무 지나친 상상이야”
하지만 그날 이후로 아이 아빠는 그 얘기가 한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새 차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어떤 끔찍한 환영이 떠올라 온몸에 무섭도록 소름이 돋았다. 급기야 그는 신경쇠약에 걸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거의 못 먹으며 시름시름 앓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민원인 모임에 나가서 아이에게 들은 얘기를 작심하고 꺼냈다. 가슴속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사람들로부터 어떤 손가락질을 당해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뜻밖에도 다들 커다란 관심과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 의기투합하여 한번 조사해 보기로 하였다.
그들은 막연한 의혹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한 뒤, 각계각층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열심히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그렇게 몇 달간 조사를 한 끝에, 마침내 한 제철소에서 나온 강판이 이번 사태의 주범임을 밝혀냈다.
모년 모월 모일. 20대 비정규직 노동자 한 명이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고철을 녹이는 용광로 작업을 하던 도중, 섭씨 1600도 이상의 시뻘건 쇳물이 펄펄 끓는 용광로 안으로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짐. 그때 만들어진 강판이 각 자동차 회사로 공급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