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아 Apr 22. 2024

두려움에 대처하는 그들의 방법

고양이 삼형제


지난달 고양이들 종합백신과 광견병 백신 접종을 마치고 한 달이 지나 혈액검사를 할 때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 혈액검사를 자주 하지는 않고, 우리처럼 고양이들을 데리고 프랑스-한국 같은 국가 간 이동을 하는 경우 국가에 따라 검역을 통과할 때 광견병 항체 수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백신 접종을 한 뒤에 혈액검사를 한다. (또는 정기 건강검진이라던지.. 프랑스에서는 한국에서만큼 정기 건강검진을 장려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 고로 우리 집 고양이 삼 형제를 모시고 길을 나서는데, 역시나 쉽게 갈 리가 없지. 고양이들은 일단 이동장에 넣는 것부터 쉽지가 않다. 요 녀석들 눈치가 귀신같이 빨라서 이동장을 꺼내 놓으면 도망 다니기 바쁜지라 전날부터 거실에 가방을 주르륵 내놓고 거부감을 좀 줄인 다음에 애들을 빠르게 잡아서 가방에 넣어야 한다. 티구처럼 재빠른 녀석들은 잡는데만 30분 넘게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오전 8시 반에 병원 예약된 걸 잊고 7시 40분에 기상.. 병원까지 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매우 촉박했는데 애들은 이 날따라 빨리 이동장에 넣었지만 반쯤 가서야 고양이들 여권을 깜빡했다는 걸 기억해 냈다.. 



https://brunch.co.kr/@kimhyunah/221



혈액 검사하는 김에 애들 몸에 심어져 있는 쌀알만 한 마이크로칩이 아직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확인해 보기로 했어서 차를 다시 돌림.. 하이고. 덕분에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달리는 차 안에 있었던 고양이들. 


가운데 가방에서 눈으로 욕하는 치치


치치

짜증대마왕 - 화를 낸다

가방에 들어가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초반에는 좀 애옹 거리다가 별 반응이 없으면 금방 포기하고 눕는 편. 

누가 자기를 만지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동물병원도 극혐 한다. 

가방을 싫어하긴 하지만 일단 눕기 시작하면 빠르게 안정되는 편이라 가방 안에 누운 치치는 천하무적.. 일단 가방에서 꺼내면 애옹거리긴 해도 어지간히 진료를 할 수는 있는데, 이 가방 안에만 들어가면 자기 영역으로 인식하는지 귀를 양 옆으로 눕히고 이까지 드러내면서 하악질을 한다. 

보통 이 정도가 되면 나만 만질 수 있어서 상황에 따라 내가 치치 자세 보정하는 걸 도와주기도 함. 


이동 스트레스 : 중

진료 난이도 : 상 


낮잠 시간



모모 

덩치만 큰 약골 - 침을 흘린다

일단 가방에 들어가면 울기 시작한다.

헥헥거리며 숨을 가쁘게 쉰다.

코가 빨개지면서 침까지 흘린다.

동물병원 진료실에 도착해서 문을 다 닫은 상황에서 가방을 열어주는데 그러면 상태가 급격히 나아지면서 진료실 곳곳을 돌아다닌다. 처음 보는 사람도 낯설어하지 않아서 수의사선생님한테 잘 안겨서 피도 잘 뽑고 옴. 


이동 스트레스 : 최상

진료 난이도 : 하 


모모가 차만 타면 이렇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여러 가지 방법(캣닙 인형이나 진정된다는 스프레이 이동장에 뿌리기)을 동원해 보았는데 달리지 않는 차 뒷좌석에 들어가 앉는 훈련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고양이들은 개와 달라서 영역밖을 벗어날 일이 잘 없지만, 내년에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차, 기차, 그리고 비행시간까지 거의 24시간에 걸친 여행을 해야 하니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진료실 탐색중


아 거미줄좀 걷어야 되는데



티구

겁쟁이 - 돌처럼 굳는다

이동 가방 안에 넣으려고 하면 네 다리를 쭈욱 펼쳐서 안 들어가려고 버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운 좋게 머리부터 냉큼 들어갔다. 안겨있는 걸 워낙 싫어해서 내가 안아 들었더니 이동장으로 잘못 도망친 형태가 되어버림. 가방 안에 들어가면 울지도 않고 쥐 죽은 듯이 엎드려 있는데 눈에 동공이 동그랗게 확장된 걸 보면 겁이 나긴 한 상황. 근데 의외로 또 시간이 지나면 가방 밖 상황도 눈을 굴려가며 구경은 차분하게 하는 편. 


이동 스트레스 : 중

진료 난이도 : 하 


눈으로 욕하는 그

티구는 겁이 너무 많아서 집에 누가 오면 도망 다니느라 바쁘지만, 아예 병원처럼 모르는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벌써 몇 번이나 본 수의사 선생님이지만 티구에게는...)이랑 마주치는 상황에서는 아예 얼어버린다. 치치처럼 으르렁 거린다던지 애옹거리면서 운다던지 이런 반응 자체가 없이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성향이라 위로 열리는 플라스틱 이동장을 사용하는데 수의사 쌤 말로는 채혈하는 도중에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사실 티구는 겁이 너무 많아서 돌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이 안된다. 그래서 이렇게 밖에 나올 일이 있으면 항상 조마조마하다. 


예를 들어 이동장이 열린다던지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모모나 치치는 멀리 가지 않을 것 같은데, 티구는 쏜살같이 어디론가 달려갈 것 같아서 이렇게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이동장이 제대로 조립이 되었는지, 가방에 지퍼는 다 잘 잠기는지, 어디 허술한 부분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피는 편. 


집사랑 숨바꼭질 중인 티구


에구. 앞으로 일 년 간 요 녀석들이랑 외출할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고양이들의 여권을 소개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