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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Jun 09. 2024

남편의 위기

번아웃 말고 보어아웃 


시골에서 보낸 2년이라는 시간이 남편에게는 좀 과했던 것 같다. 동료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북적거리는 걸 싫어하는 남편을 위해서 시골에 집을 구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꿈꾸던 시골 주택살이를 해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정원에 나와 앉으면 보이는 탁 트인 푸른 들판과 저 멀리 눈 덮인 알프스(아마도)는 볼 때마다 감동적이었다. 창 밖이 앞 동 아파트가 아닌 것이, 뚱뚱한 고양이들이 우다다 뛰어다녀도 층간소음 눈치 볼 필요 없는 저녁 시간이, 친지들이 놀러 와도 내어줄 수 있는 여분의 게스트룸이 있는 전원주택에서의 느긋한 삶이 심심할 때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좋았고 시골의 삶이 이런 거라면 한국에 돌아가도 시골에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남편한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공기 좋은 시골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남편은 위장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먹으면 소화가 안되고, 간이 세거나 기름지거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 또 배앓이를 했다. 이게 무슨.. 병원을 여기저기 다녀보긴 했는데 겔포스 같은 약만 처방받고 내시경을 해보자고 했더니 내시경 예약 잡기도 너무 힘들다. 가능한 날이 2달 뒤라는데 그나마도 일방적으로 예약이 취소되어서 다시 예약을 잡아보는 수밖에는 없다. 


남편이 예민해지니 덩달아 나도 스트레스. 나도 말을 조심해서 한다고 하는데도 한 번씩 날이 선 말이 날아갈 때가 있고, 그러면 또 남편은 상처받고. 남편이 예민해져서 '자기는 왜 그렇게 무심하냐'를 시전 하면 난 또 '대체 어쩌라는 것이냐. 놔둬도 뭐라고 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줘도 뭐라고 하면 뭐 어쩌라는 말이냐'를 반복하며 투닥거리는 날이 늘었다. 


산책을 하자


하필 프랑스는 예전보다 비가 많이 와서 여름인데도 쨍쨍한 느낌이 덜하고 거의 매일같이 비가 왔다. 남쪽의 태양이 그립다는 그. 집안에 있는 것이 너무 지겹다는 그를 위해 비가 억수같이 내리지만 않으면 퇴근하고 한 시간씩 산책을 한지 몇 주가 지났다. 그런데 정말 한 시간을 걸어도 길에서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날이 더 많다. 하긴 나라도 말할 사람도 없는 시골에서 2년을 짱 박혀 있으면 우울증이 올 것 같다. 그래서 주말이면 있는 핑계 없는 핑계를 만들어 근교 도시로 바람을 쐬러 가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생활이 남편에게 더 좋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보다 그가 더 힘든 아이러니. 동료들에게 남편이 요즘 너무 우울해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하나같이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왜 그렇게 시골로 이사했어..' 






올 초 프랑스에서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냐는 오퍼를 받았다. 여름휴가 전까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남편이랑 상의를 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남편에게는 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던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제3 국(날씨 때문에 북유럽은 제외하기로 했다)으로 가는 것도 생각 중이라 '만약' 프랑스에서 계약을 연장하게 된다면 시골 생활은 청산하고 리옹이나 안시 같은 도시로 이사하기로 했다. 


여름휴가 전에는 앞으로 거취에 대한 결정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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