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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코 Jun 03. 2024

프랑스어 능력시험을 치다

DELF 후기


남편과 연애를 하던 시절부터 찔끔찔끔 불어 공부를 하기는 했다. 몇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남편의 시댁 식구들과 대화를 잘하고 싶기도 했고 (시어머니는 영어를 잘하시긴 하시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시월드에 치를 떨던 싱글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갔는지 남편의 가족들과도 잘 지내고 싶었다.   


한국에서 DELF B1까지 취득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프랑스로 넘어왔는데, 그 사이에 불어를 쓸 일이 별로 없다 보니 2년 전에 프랑스에 도착했을 땐 머릿속의 지우개가 불어를 싹 지워버린 상태였다.


안시 알리앙스 프랑세즈

Bonjour, comment allez-vous? (Hi, how are you?) 에도 어버버 하던 나. 당시 디렉터는 나를 강하게 키우고 싶어 하면서도 회의를 불어로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1년이 지나 새로운 디렉터가 오면서 상황이 좀 더 열악하게 변했다. 매일 오후에 영어로 하던 회의가 없어지고 오전에만 하는 회의는 불어로 진행되었는데 당연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한정되어 있었고, 초반에는 그나마 듣는 척이라도 하다가 점점 다른 핑계를 대고 그 회의를 빠지기 시작했다. 2022년 당시 내 목표는 '연말까지 불어로 프레젠테이션 하기'였다.


매주 1시간 회사에서 불어 수업을 지원해 줬는데 이 선생님도 딱히 빡빡한 스타일은 아니었어서 숙제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심지어 숙제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까먹었던 문법 복습하고 불어로 말하는데 의의를 두고 수업을 꾸역꾸역 들었다.


그러다 2023년 연말이 될 때까지도 내 불어실력은 생각보다 많이 늘지는 않아서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될 것 같아 DELF(불어 능력시험) 시험 등록을 했다. 목표 레벨은 B2!


DELF는 모두 같은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는 TOEIC이나 TOEFL 과는 다르게 정해진 6가지 레벨이 있고 (초초급 A1, 초급 A2, 낮은 중급 B1, 중급 B2, 고급 C1, 거의 원어민 C2) 해당 레벨에 맞춰서 시험등록을 한다.


시험은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 각 25점씩 4과목으로 이루어져 있고 100점 중 50점 이상을 맞으면 합격. 한 과목이라도 5점 이하가 나오면 과락으로 불합격이다. 보통 수능과 토익으로 단련된 한국사람들은 읽기를 거의 만점으로 가져가고 나머지 과목에서 과락 이상을 목표로 공부하는 식이다.


5월 시험 접수를 하자마자 시험 등록을 하고 주말마다 DELF 대비반 수업도 따로 들었다. 처음 모의고사를 쳤을 땐 어느 과목 할 것 없이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주말에는 수업 듣고 복습하고, 주중에는 퇴근하고 숙제하고, 문법 복습하고, 단어 외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면 동료들과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떠는 10-15분 동안 불어를 쓰면서 불어로 말하는 두려움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확실히 영혼 없이 공부할 때보다 시험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하니 집중도 잘되고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시험장 들어가기 직전까지 복습 ㅠㅠ


그렇게 2달 정도가 지나니 확실히 귀도 많이 트이고 아는 단어도 늘어서 회의 때 동료들이 하는 말도 귀에 잘 들어왔다.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지난 5월 23일에 시험을 쳤다. 살면서 시험칠 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거짓말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DELF 점수 가지고 뭘 할 것도 아니고 아직 결과는 안 나왔지만 (6월 말쯤 나온다. 솔직히 패스할지 아닐지 잘 모르겠다) 합격 안 하면 또 치면 되지. 어쨌든 불어는 시험 준비하면서 많이 늘었으니까 만족한다. 이제 어지간한 업무 메일은 읽으면 얼추 이해가 되고 간단한 이메일 정도는 불어로 작성할 수도 있다. 지난주엔 팀 미팅에서 생산계획 전망을 불어로 프레젠테이션 하기도 했다.


BRAVO!!

꾸준히 공부해야지! (근데 점점 영어실력이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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