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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Apr 18. 2020

[야알못 탈출-032] 옆집 LG트윈스

#한지붕두살림 #맨날층간소음 #야구장다가구주택 #LG트윈스


두산베어스에겐 옆 집이 하나 있다. 엘지트윈스이다. 이 옆집을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마다 만나서 투닥투닥 싸운다. 이 팀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이미지는 퉁명스러운 서울 아재다. 이 아재는 집안에서 스쿼트만 하는데도 시끄럽다고 시비를 건다. 복도를 지나갈 때 결혼은 언제 하냐고 한마디 할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드릴이 없어서 곤란해하면 “집에 드릴 하나 없냐”며 구시렁거리면서 슬쩍 문 앞에 놓고 갈 것 같은, 밉지만 미워만 할 수 없는 느낌의 사람이 떠오른다. 한 야구장 아래 두 야구단- 우리팀 옆집 엘지 트윈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마치 로고도.. 야구장을 나눈 것 같다.


 2019 프로야구 순위를 기준으로 소개하다 LG가 4위인 것을 보고 내심 놀랬다. 내 머릿속에서 야구를 매일 같이 봤던 나날들은 2006년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무의식 중에 ‘LG는 7위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했다. (죄송) 이 7위와 올해 4위의 간극을 설명하자면 “비밀번호”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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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상한 번호는 무엇인가. LG가 한국야구 역사에서 만들어낸 슬픈 과거이자, 전설의 비밀번호이다.  정체는 2003-2012년  LG 성적이다.  이 성적을 보면 '무심코 7위'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가리라..  LG의 별명 중 하나인 '칠쥐'도 바로 이 역사가 만든 별명이다.  (https://namu.wiki/w/6668587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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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3년 이후로 LG트윈스는 달라졌다. 종종 가을야구도 하고, 작년엔 4위도 했다. 더 이상 굴욕의 비밀번호팀이 아니다. 응원단이 외치는 '무적LG'라는 응원이 무색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정말 내년에는 뭔가 한번 일을 칠 것 같은 ‘무적엘지’가 돌아오고 있다.  

무적엘지



엘지트윈스팬인 친구와 야구를 보러 가면 상당히 편하다. 구장에 대한 설명도 할 필요가 없고, 서로가 홈구장이라 어디에 도미노피자가 있는지, 어디에 주먹밥 집이 있는지 훤하다. 잠실구장에 가서 서로 경계선에 앉아 LG와 두산을 응원했다. 홈플레이트 바로 뒤에 앉아 그날의 홈팀은 1루 쪽에 어웨이팀은 3루 쪽에 앉아 서로의 팀을 응원한다. 나는 홈 유니폼이 좋아서, 내 친구는 유광잠바와 까만 유니폼이 좋아서 주로 내가 홈, 엘지가 어웨이이던 날 야구를 보러 갔다.



내가 존경하는 할머니 한분이 계시다. 야구팀의 언니네 할머니이신데, 오랜 LG팬이시다. 매일 저녁마다 야구 중계를 켜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보신다. 몸은 조금 불편하셔도 야구 중계를 보는 디테일만큼은 정정한 여느 아재 못지않다. 그저 누가 이기고 있다 정도가 아니라, 얘는 잘하고 이 볼이 좋고- 디테일이 살아있다. 나도 그만큼 야구를 보지 못하는데 놀랍다. 이 열정적인 90대 언니를 봐서라도 올해는 한번 플레이오프, 아니 코리안시리즈를 가야 되지 않겠는가? 잠실에서 코시를 편안하게 7차전까지 보고 싶다. (2019년에도 고척돔을 오가며 봐서 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잠실에서 내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유광잠바를 입은 어린이들 너무 귀엽다. 어릴 때부터 아재응원을 배워나간다... 요놈들

회사에서 늘 만나면 투닥거리던 선배도 엘지 팬이었다. 그 선배는 어린이 야구단 때부터 유광잠바를 입은 진국 엘지 팬이었다. 나만 보면 어찌나 그렇게 공격을 하는지- '신바람'과 '무적'을 외치며 지나갔다. 물론 나는 꿋꿋하게 우승 기념컵으로 커피를 마시며 그를 괴롭혔다. 그런 팬들이 올해 기대가 많다. “정근우”- 그가 유광잠바를 입었기 때문이다. LG 투수가 던진 볼에 맞아 전설의 벤클(벤치클리어링)을 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팬들의 기대가 많다. 볼 맞고, 벤치 클리어링하다가도 한 편이 돼서 일하는 세상이다. 나도 엘지 팬과 늘 티격태격하지만 미운 정이 들었다. 그래서 성질나지만 어딘가 그 얄미움마저도 그립고 좋다. 이 팀 올해는 정말 코시 한번 갈 것인가? 그것도 야구를 시작해야 알 텐데, 어서 이 놈의 코로나가 끝나고 야구를 보러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근우'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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