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what may
Come what may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26살 터키에서 일하면서 방황할 때 꾸역꾸역 불렀던 노래다.
There is no mountain too high, No river too wide.
Come what way.
너무나 높은 산도 못 건널 강도 없다는 내용인데 그때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붙잡고 싶어서 부르기도 했다.
가사 하나하나가 바람을 일으켜서 마음이 힘들 때마다 불렀다.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10번 중에 7번은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눈물이 뿜어지게 온 몸이 반응한다.
지구를 다 덮는 강은 없고 하늘을 쪼개는 산도 없다.
회사 일이 나를 짓누를 때도 불렀고 여행에서 방황하다가도 불렀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온 몸에 소름이 끼쳐 집에 가고 싶을 때도 불렀다.
엄마가 수술 후에 온 가족이 뒤집어져 결국 숨어 있던 고름이 터져 아무도 주체 할 수 없었던 나날들
그 때도 나는 회사 비상구에 달려 들어가서 울으면서 가사를 가슴 깊이 박아대며
눈물을 닦이고 쑤셔 넣기도 했다.
'지금 내게 아주 큰 시험이 왔다. 모든 이로 부터 독립하라는 테스트. 부모의 얼굴로 왔다.
그래서 괴로운거지. 이걸 이겨내면 강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 정신적 독립의 단계야..'
라고 몇번을 되내이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그 시간을 보냈다.
시련에 미친듯이 뛰어들어 갈기갈기 찍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태풍이 불어닥칠 때는 몸과 마음을 숙이고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가짐을 배웠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미지의 시간으로 여행 할 때도 즐거울 때도 불렀다. 못할게 없으니 꼭 배워내라는 가사같다.
20대의 모진 시간과 방황하며 배워 꽃 피는 내게 감사하다.
그래서 웨딩 파티에도 이 노래와 컨셉으로 사람들을 모셨다.
결혼식 없이 여행으로 대체 했지만 코로나에 걸려 동생 결혼식을 못갔었다.
그런데 친척들이 엄마가 그렇게 예쁘더라 하는거 아닌가!
한복입고 활짝 웃는 엄마를 인생에서 다시 보고 싶어서 4주만에 급 웨딩파티를 진행했었다.
노랗게 피어나는 꽃들과 함께 노래가사가 포스터로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There is no mountain too high, No river too wide.
지금 이 사랑도 여행도 일도 결국엔 하늘과 나를 쪼개지 못함을 안다.
내게 고통과 선물로 오는 이 시간들이 멋진 패턴으로 엮어져 그림으로 그려지는 중임을 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하기를
기필코 행복을 일구어 살아내는 내는 운명의 개척자이기를 Come what may
웨딩파티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는 마이크를 잡았다. 편지를 읽고 퀴즈쇼를 했다.
많은 어른들이 즐거워 했으며 제리와 나는 즐겁게 춤을 췄다. 그 수 많은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빛 샤워를 받아서
그 뒤로는 마이크를 잡으면 떨리지 않는다. 더 춤추고 노래하고 아름다운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이 되리라.
무슨 일이 있어도 Come what may
엄마가 더 웃고 편히 즐겼으면 해서 엄마가 걸어오는 길에 꽃도 뿌려드리고 꽃다발도 드렸다. 제리 가족은 못 왔지만 우리들이 축제고 나의 돌잔치였다.
엄마의 웃음이 마구 터져 꽃처럼 흩뿌려진 날. 이 시간의 꽃가루를 모두 쓸어 담아 내 마음에 다시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