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캬하하 하고 아이고 웃으니 온 집안이 들썩이며 웃는다. 치발기를 주면 자기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돌려 잡는다.
모빌 인형을 잡아 떨어뜨려 포물선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 놀라서 박수를 친다. 낮잠 자고 나오면 크는 건가? 똥 싸고 오면 새로운 능력치를 얻는 건가. 환희가 탄성이 터진다.
열흘 전부터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서 웃는다. 잔뜩 웃어대면 온 세상이 미소 가득이다.
어쩜 그러까. 어쩜 너는 이리 탄탄한 고등어처럼 귀엽고 건강하니.
어제 창호네 큰누나를 만나고 많은 생각들이 정리가 됐다. 7시간 대화를 했다. 원래 3시간만 하고 집에 오는 게 목표였는데 떠날 수가 없었다. 안 가면 안 되겠어서 가방을 정리하는데 그 가방을 잡고 한 시간을 더 있었다.
"트라우마로 가져갈 건지 경험과 배움으로 가져갈 건지 선택해야 한다"
"만약 킴제이가 4년 뒤에 죽어. 그 아이 병원 트라우마 때문에 고생하고 힘들어한다고 하면 아이에겐 그 모습만 남는 거야. 어떤 엄마로 남아야겠어?"
어디를 가야 할지 아는 뱃사공이 있다. 오늘 은빛 갈치를 잡아 올려 맛나게 한 끼 먹었다. 그런데 저녁이 되고 보니 갈치 비늘이 배 앞머리에 묻어 있는 게 아닌가. 자기가 식사를 만들다 실수한 건지 갈치가 배로 끌어올려지며 스친 건지 모르겠지만, 희멀건 얼룩이 있다. 뱃사공은 저 생선 비늘 얼룩이 거슬린다. 달이 떠올라 잠들고 해가 떠 일어나자마자 달려가 비린 얼룩을 닦아본다. 잘 지워지지 않는다. 옷소매로도 박박 닦아봐도 히끄므리하다. 사공은 잠시 배를 멈춰둔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건 아닌지 코를 박아보고 내일 입을 옷가지로도 닦아낸다. 옷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화가 난다. 저 얼룩 때문에 골치가 아파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오늘은 노를 저을 맛이 안난다. 저 냄새나는 얼룩 때문이다.
"킴제이가 가야 할 길이 있는데 잠깐 생긴 일이잖아. 근데 그 큰길이 안 잡혀서 아이 입원했던 사건을 힘들어하는 거지. 방향이 잡혀있으면 그런 일이 생겨도 아! 지금 이런다고? 근데 내가 갈 길은 어딘지 보게 되는 거지"
언니에게 내가 힘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한다. 아이가 입원했던 시간. 말하면서도 왜 지금 고장 난 뻐꾸기시계처럼 이러는 거지? 지금 이게 타인에게 말한 게 몇 번째인가. 제리는 몇 번이나 듣고 있는 건가 싶었다. 흰 얼룩에 냄새난다고 코 박고 괴로워하고 있다. 지금 내 눈앞엔 얼룩만 보인다. 모든 세상이 그 비린 얼룩 범벅이다.
육아라는 것도 결국 내가 살고 싶은 모습, 되고 싶은 나. 그 모습을 향해 가는 거다. 배에 얼룩이 묻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개를 들어 어디를 가야 하는지 알면 된다. 내 고개가 향한 곳으로 뱃머리가 간다.
그런데 몰랐다. 모든 하나하나가 어렵고 불안했다. 살면서 처음 신생아를 안아봤다. 어떻게 안아야 하나. 바나나 껍질처럼 흐물거려 팔에서 빠져나가면 어쩌나. 숨은 계속 쉬는 건가. 이렇게 모유수유가 어려웠나.. 유두백반으로 고생했을 때는 내 가슴이 이렇게나 아플 수 있나 온몸이 칼로 긁어대는 것 같았다. 온몸을 달달 떨며 꾹 참고 모유를 먹이던 밤이 소름 끼쳤다. 병원 가는 카시트에서 아기가 얼굴이 빨개져 눈을 위로 치켜뜨고 울 때는 숨이 넘어가는 게 아닌가 무서웠다. 앞으로 나는 어디든 못 가는 게 아닌가 겁이 났다. 여행도 내 시간도 없구나 모든 게 과제 같은 이 작은 생명한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나 괴로웠다. 이 모든 시간들이 크나큰 파도처럼 느껴졌다. 애써 쓸려내려가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붙잡았더니 손톱이 빠지고 살점이 파도날에 패여나갔다.
모르니까 무서웠다. 이 글로 내게 하고픈 말은
"힘들었지? 무서웠지? 괜찮아. 이제 어때? 느낌 오지? 그렇게 하면 돼"
이제 고개를 들어 다시 갈 저 목적지를 본다. 어떤 생선이 불청객처럼 배에 뛰어올라도 비에 옷이 찢겨도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 지를 안다.
창호네 큰누나가 앞으로 육아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살고 싶은지 생각하려면 '죽음'을 떠올리라고 했다.
내가 1년 뒤에 죽는다면, 아이와 제리와 지금처럼 모든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싶다.
그리고 기록을 남기고 싶다. 지금에 사무쳐 흘려보내고 글로 배움이 고일 수 있도록. 지금을 산 시간과 기록들이 내 자식에게, 제리에게, 그리고 나처럼 아이 낳고 불안해하는 엄마들에게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고난을 배움으로 엮어내고 기필코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행복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똑똑한 마음으로 행복을 설계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어 춤을 추는 사람이다. 그 춤길이 꽃밭이 되어 다른 사람들도 춤을 춘다.
천방지축인 나는 춤추다 발을 헛디뎌 배에서 떨어질 때도 있겠지만, 또 파도에 뺨 맞고 울 때도 있겠지만,
바람에 나약해져 노를 놓아버리고 싶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내가 가야 할 곳을 바라보고 싶다.
그렇게 매일매일 지금을 살고 죽어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는 내가 되어야지.
행복을 일궈나가는 사람, 엄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