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에 잠식된 산후 우울감 증상들
아이가 10개월이 되었다. 쑥쑥 자라서 같이 하와이의 산과 바다를 본다. 몸은 무겁고 손과 셔츠는 항상 젖어있다. 밥 먹이고 씻기고 응가 싸면 씻기고 이유식 만드느라 젖고 그래도 하나씩 해본다. 마음의 집중을 위해 지금 하고 있는 것에 호흡을 준다. 애호박을 씻기면 애호박을 보며 손에 닿는 단단한 젖음을 더 느껴본다.
어제 마인드풀니스 수업에서 Mudra가 말했다.
마음이 번거롭고 번잡해질 때는 일단 PAUSE. 그리고 지금에 집중
그러고 보면 출산 후 세상이 믹서기처럼 갈리고 폭풍우 쳤다.
너는 왜 그렇게 밖에 말을 못 하고, 왜 난 이래야 하고 세상은 벅차고 너무했는데.. 그게 남이 아니라 세상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뭐든 들어오면 마음의 칼날이 채 감아 갈아버렸다. 그때의 힘겨움을 이제 좀 더 정리해서 써본다. 몇 번이고 일기장에 써보고 누가 물어보면 부끄러워서 말을 못 했다. 장수가 넘어가고 몇 번 더 키보드를 쳐보니 글이 조금은 더 가벼워지긴 한다.
그런 말을 들었다. 출산 후에 우울감이 올 수 있다. 이제 남편이 미워질 거야.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다. 마음도 몸도 튼튼하게 운동했고 튼튼하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우울은 건강하다고 해서 정신 차리고 똑바로 있다고 해서 안 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때의 잔혹했던 증상은
남의 말이 띠겁게 들린다.
모유수유를 하는데 새벽마다 못 자니 돌 것 같았다. 아 그냥 분유 줘. 아 모유안해? 그냥 물어보는 건데 모든 말들이 무거운 싸다구처럼 느껴졌다. 왜 저렇게 말해? 촉을 예민하게 세워 모든 말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
'지금 잘하고 있어'
이 말도 거짓말로 들렸다. 진짜 내가 잘해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위로 차원에서나 적당히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한다고 느껴졌다. 상담을 받을 때 마음의 필터가 그러면 어떤 말도 그대로 받을 수 없을 거라 했다. 자신에게 기준이 너무 높아서 그렇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이해가 안 되었다. 이렇게 못 하고 힘든데 기준이 높은거라니. 시간이 지나고 상담으로 다독여지면서 나를 보니 정말 그랬다. 내 기준을 높여놓고 저 위만 보느라 숨쉬기가 싶지 않았다. 잘 안되면 속상해 하고 내 탓을 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말해도 들리지도 않았던거다.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과 친구들은 얼마나 조심스러웠을까. 잘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건데 ...
뭐 어쩌라고 싶었을거 같다. 말을 말로 듣는 연습을 했다. 의미부여를 안하고 소리를 그저 귀로 들려오고 뒤로 사라지는 걸로 들으려고 집중했다. 마음의 필터도 내려놓으려고 했는데 그게 어려웠다.
제일 잘 맞았던 방법은 내가 나를 위로해주는 것. 마음이 허함이 크니 다른 사람의 말로 주워담으려고 바쁘고 마음에 안들어 했다. 수고했어. 오 괜찮은데? 이 정도면 오 좋아. 이런 말을 내게 해주니 점점 마음의 굴곡지고 날카로운 파도가 낮아졌다.
불안감에 모든걸 통제하고 싶어한다.
이 문장은 온전히 내가 느꼈던건 아니고 상담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제가 통제하고 싶어한다고요? 돌이켜보니 그러니 그러고 있었다. 사실 상담이 내 말이나 감정을 고스란히 이해해주시는건 아니셔서 서운하거나 놀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 말씀해주시니 정신 차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아이가 열이나서 못 잔 밤, 나도 자야 아이를 돌 보니까 엄마나 남편하게 맡겨두고 방에들어가서 자야했다. 근데 못 자겠는거다.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닦아주시는거 맞나. 혹시 나 쉬라고 그냥 모유수유 넘어가는거 아니냐. 우는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나가서 봤다. 알지 못 하는 상황이 오니 불안해서 지금을 체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근데 문제는 나도 잘 모른다는거 ㅎㅎ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줄 알아야하는데 마음의 철벽을 치고 구멍하나하나에 바늘을 꽂아뒀다 내가. 지금 글을 쓰니 그때의 내가 너무 안쓰럽다. 모든 감각이 바늘처럼 돋아나서 예민해졌었다. 그 누구도 나도 다스려지지 않는 마음이니 어떻게 할지 몰라 울고 우울해했다. 방에 들어오면 내 모습이 낯설고 별로고 부끄럽고 화가나고 누가 도와주길 기다렸다. 내가 나서야한다는건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방법을 몰라 무서웠다. 나
그냥 눈물이 죽죽 흐른다. 아기 침 마냥
가만히 있으면 눈물이 났다. 마음에 슬픔이 차오르기도 전에 눈물이 주르륵 나와버렸다. 아니 나 왜울지 싶은 순간도 너무 많았고. 말을 하고 있는데 목구멍이 탁 막혀 어버버 할 때면 고장난 것 같았다. 감정에 허덕여 판단을 못했고 또 그렇게 보인다는게 진짜 미칠 듯이 속상했다. 의견을 감정을 좀 나눠 교류할라치면 눈물이 팔닥여서 모든게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잔잔하게 들어주니 말도 잘 나왔으면 좋겠지만 눈이 뜨겁고 목구멍이 탁 막히면 눈에 뵈는게 없다.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나고 자려고 누어서도 귀에 눈물이 찼다. 앞으로 이렇게 살면 어쩌나 싶으면서도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잘 모르겠다. 알고싶지도 않았다. 알려고 보고 뜯어볼 수록 스스로가 별로고 앞으로 내 모습도 그려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제리 앞에서 괴물이 되는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다 수용해 줄 필요없지만서도 하나하나 다 안맞는 너가 너무 어색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영혼의 깃털들을 위로 받고 싶었다. 시원하게 열바가지 울어 채우면 나아졌을까.
글을 쓰니 그때의 내가 안쓰럽고 또 어떻게든 지푸라기를 잡았던게 대견하기도 하다. 지금 그 증상들은 다 사라지진 않았다. 작아졌는데 깊게 저어기 있어가지고 다시 올라올 때도 있다. 상처가 좀 가시고 흉이졌는데 마음피부가 예민해졌달가. 어차피 큰 사람되려고 째지고 쪼개진거라면 그렇게 근육이 생긴거라면.. 그랬으면 좋겠다. 다시는 안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은 별로 들진 않고 파도는 언제든 칠테니 큰 마음으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비겁하게 구석에 숨고 남들이 채워줬음한다고 멱살잡지 않을테다.
쪽팔리고 별로인 모습이어도 기꺼이 나서서 내가 내편이 되고 싶다. 25년은 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글로 담는 한해가 되지 않을까. 꺼져 사라져버릴 것 같았던 그 밤들이 한줄의 글이 된다. 그래도 조금은 정리되어 정갈해지고 평평하고 반듯하게 써지니 좀 더 나아지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