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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내가 무너진 이유

더 큰 삶과 사람이 되기 위한 실험

by 일단하는 킴제이

며칠 전에 제리가 정신차리라고 했다.

마음이 와장창 무너질 것 같은걸 간신히 붙잡았다. 소용돌이 치는 이 감정은 뭘까.

제리가 의도적으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요즘에도 가끔 몸과 마음이 일치 하지 않는다 했더니 겁을 먹었나 보다. 워낙 내가 아이 낳고 힘들어해가지고 제리도 어려웠는데 지금 이 말이 제리를 찔렀나보다.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제리도 이해가 된다. 정신차리자. 마음이 힘듦을 붙잡고 올라오며 노력하는 이가 한발 흔들려서 또 괴로워한다고 이 말을 뱉지 말아야지. 혹시 나도 저 말을 하진 않았나 재빨리 기억을 만져본다.


하와이 와서 하나씩 나를 이해하고 있다. 마인드풀니스 모임에 꾸준히 나간다. 10일에 한 번 정도인데 같이 명상하고 지금에 집중하는 방법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 호흡에 집중. 지금 이 감정을 이해해주는 것. 사실 그냥 들었을 때는 뻔한 소리다 싶었는데, 아니 그 뻔한 것도 안하고 있잖아?

생각이 날아다닐 때는 천천히 깊게 숨을 쉬며 마음을 지긋이 안아주려고 한다.


출산 후에 다들 그렇다고 하지만 또 안그런 척 지낸다.

나는 나만 이런가 또. 왜 다들 재밌게 하는거 같은데 나만 이렇게 우울하고 무섭나 괴로웠다.

앞으로 여행을 못 할 것 같은 불안함. 정착을 하고 싶은데 또 안하고싶은 꼼수, 감정폭풍에 다 비벼 헤쳐진 내가 아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 고민, 제리와의 관계는 파국으로 갈 것만 같아 모른척하고 싶은 마음.


지금까지 일을하며 나를 봤다. 내가 만들어낸 성과가 좋고 빠르게 배우는 시간이 좋다. 2-3년 단위로 일, 회사를 바꾸었는데 처음엔 적응을 못 하나 했지만 그 만큼 빨리 배우고 마무리 지었다. 2년 정도 시장을 알고 업무가 루틴해지면 그 지루함을 견딜 수가 없어 그만뒀다. 짧은 시간에 모조리 쏟아부어서 나만의 성과를 만들어내는게 내 삶이었다. 그런데 출산을 하고 나니 다 쏟아부을 시간이 줄줄 새는게 아닌가. 잠도 못 자고 아이는 울고..


해낸 것 없는 하루가 이틀이 되고 한 달이 되니 빈공간에서 허덕이며 질식 할 것 같다. 출산도 신명나게 기획해서 건강하게 낳았는데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니 완전 다른 전개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고장이 났다. 앞으로 어떻게 하지? 오늘은 지금 내가 뭐하는거지? 또 이런다고 앞으로 이렇게 살 자신이 없는데 마음이 소리가 진짜 여기저기 다 튀어나와 심장이 팔딱이고 숨이 고르게 쉬어지지 않는다.


내 인생에 큰 브레이크가 걸려 순간 뒤로 나자빠졌다.

단기속성으로 살 던 내게 장기적인 미션이 떨어진거다.

그래서? 일하지 않고 여행하지 않으면 넌 뭔데?


일로 나를 증명하지 않으니 당황스러웠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지금 이 존재 만으로도 얼마나 귀한데..

나를 내 딸이라 생각하니 안쓰럽고 고마운데, 왜 너를 결과물로 설명하려고 해. 너는 그냥 너로 아름다고 세상의 전부야. 그 목소리로 내게 말을거니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긴 했다.


(12시 넘었고 빨래 기다리다 글 적는데 너무 피곤하다...금방 써야지)


지금 나는 그걸 절실히 배우는게 아닐까. 내 존재가 얼마다 위대하고 대단한지. 어줍잖게 일과 제안서, 성과로 증명하려 하지 않고 그저 나의 에너지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그런거 아닐까.

나락으로 떨어졌던 우울도.. 저 밑에 울고 있는내게 또 다른 내가 내려가서 구원하는 연습을 하는게 아닐까.

그 만큼 내 마음의 그릇이 깊어지라고. 와장창 깨진 조각들도 사실 작은 그릇이 커지기 위해 온 마음 다해 부셔져보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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