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익어가기 때문에 아픈가 봅니다

흉터는 살아냈다는 증거입니다 1

by 인애


상처에 소금을 뿌리면

익어서 김치가 되지


한동안 내 마음을 가만히 맴돌던 말이었다. 처음엔 그저 웃었고, 두 번쯤 씹어보니 아팠다. 어째서 우리는 좋은 기억은 금방 잊어버리는 주제에, 아픈 기억은 꾸준히 들춰보는 습성을 갖고 있을까. 이 사실 자체가 또 다른 아픔이 되어 나를 들쑤시고는 했다. 나 자신을 증오하게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모두가 가진 생존의 습성. 인간이 짐승의 소리를 알아들었던 그때부터 유전자에 입력된, 살아남기 위한 방법. 1,000억 개에 달하는 세포들이 오직 나 하나를 살리겠다고 슬픔을 견디고 있다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설령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나를 죽이려 들어도, 내 몸만큼은 나를 지키려고 한다. 나의 천부적인 시스템만큼은.


나의 상태가 몇 달간 '정신 아픔'에 맞춰져 있을 때,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부터가 치료의 시작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아프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나를 갉아먹는다는 것도- 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벗어나야 한다는 결심이 서기까지가 오래 걸렸다. 그 아픔 덕분에 내가 사랑하는 예술과 주파수가 맞아 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인생의 그 한 톨조차 맛보지 않았다면 나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욱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 한강,〈파란 돌〉중 발췌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솔직히 말해서, 고통 끝에는 기쁨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기만적으로 들릴 때도 있다. 행복만이 삶의 의미가 된다면 아픔을 더 오래 기억하도록 설계된 우리는 그야말로 잘못 만들어진 게 아닌가. 난 차라리 모든 상처와 회복을, 고통과 행복을, 슬픔과 기쁨을 감각하는 일에 의미를 두고 싶다. 파란 돌을 줍기 위해 살아야만 하는 것이 삶이라면, 그것이 아프다면 기꺼이.


아픔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먼저 육체가 존재해야 했다. 비록 삶의 본질이 고통에 있더라도 그로 인해 내가 닳아 없어지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됐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기적 같은 일은 없었다. 나를 갉아먹을 수준의 아픔에서는 걸어 나올 줄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익혔다. 익어가고 있기 때문에 가끔은 더 아플 수도 있는 거라고, 여전히 믿어본다.


나의 훌륭한 세포들은 몇십 년 후에도 같은 상처를 들추어낼 것이다. 이리도 속 편하게 글이나 쓸 수 있었던 지금의 나를 부러워하게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아주 많이 어리고, 이제야 삶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나의 과거가 살만 해서 살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당시 죽고자 하는 마음이 육체를 병들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아주 많이, 많이 아팠던 것이다. 그러니 살아남은 나에게, 살아갈 나에게 감사를 보낸다.

나의 흉터는, 살아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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