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으로 퇴직하신 두 분을 만났다. 둘 다 억울함에 빠져있다. '왜 내가 나와야 했는가' '저 사람은 나 보다 나이도 많고, 전문성도 없는데도 붙어있는데, 왜 내가 나와야 했을까?'
요즘 인사철이라 더더욱 이런 생각이 심해지는가 보다. 두 분 다 현역에 있을 때는 기세 등등했는데, 회사 나오니까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기가 죽었다. 회사라는 곳이 그렇다. 회사에 있을 때는 한 가족이라고 하고, 자기 회사처럼 느끼게 해주는데, 내보낼 때는 가차없다. 어깨뽕도 빠진다. 실력이라는 것이 회사 자본의 힘으로 증폭된 것이지, 회사 나와서 실제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꽃삽 정도다. 꽃삽으로 불도저같은 일을 하려고 하니까 좌절하고, 재취업해도 적응이 안된다.
두분 다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고자 미친듯이 산에 오른다. 안스럽다.
30대 초반에는 대기업 다니는 사람이 부러웠다. 개목걸이 달고 점심때 삼삼오오 선남선녀 밥 먹으러 나온다. 이쁜 여직원이 '선배님' 수저 챙겨주고, 물 따라 준다.
난 미아리에서 장사하고 있었는데, 취객 상대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그랬다. 내 장사 이력 20년 중에서 앞에 2년 동안의 미아리 장사가 농도가 가장 쎘다. 별의 별 일을 다 겪었다. 좋은 회사 나와서 왜 이런 생고생을 할까? 스스로 원망했다.
아버지에게 심정을 토로하니, '대기업 다닌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데, 저게 지들꺼야?' 말씀하셨다. 말은 맞지만, 그때는 마음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작더라도 너는 니꺼 가지고 있잖아'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 말이 마음에 들어왔다. 자영업은 삶의 실존이다. 결국 모두 자영업으로 귀결된다.
어제 오늘, 임원으로 퇴직하신 분들 보니까 회사 일찍 나오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