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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wook Mar 31. 2016

커피 맛에 대한 단상

#일상 #생각 #휴식 #커피 #문득

스타벅스. 된장녀로 불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여기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맛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학생은 커피를 마시면 안돼.  머리 나빠져." 말을 철썩같이 믿었던 나는, 너무나 졸릴 때 엄마 몰래 타먹는 믹스 커피가 그렇게 맛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선 헤이즐럿 커피가 그리 맛났다. 달디단 상상. 캠퍼스 커플을 꿈꾸며 즐겼던 커피다.   학교에 올라가던 길에 있던 멋쟁이 사장님이 만들어준 커피가 최고 맛있었다.


대학 3~4학년 때부터 친구가 마시던 쓰디쓴 아메리카노가 멋져 보여 나도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첨엔 시럽을 잔뜩 넣어야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샷 하나로 충분한 카페인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쓰디쓴 커피가 더욱 맛있었다. 첨엔 돈을 아끼기 위해 1천원~2천원 대 커피를 자주 마셨다. 다행히 회사 식당 앞에 있던 카페의 커피가 맛있었다. 친절한 바리스타였던 그녀의 커피는 훌륭했다. 어느새 그녀는 내 결혼 부케를 받는 지인이 되었다.


그 친구가 퇴사를 하고 나서는 맛있는 커피를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맛있다고 느끼면 너무 비쌌고, 비싸서 맛있는 건지 맛있어서 비싼건지 모를 혼란만 있었다. 회사 주변의 카페 5~6곳은 다 다녀본거 같다. 그래도 내맛 커피는 찾기 힘들었다.


뉴스가 하는 시간에 맞춰 출근을 해야 했고, 회사에 불만이 쌓여갈수록 비싸고 쓰디쓴 커피가 맛있었다. 5천원이 훌쩍 넘는 커피를 마신적도 있었고 후배들에게 하루하루 커피를 쏘다 보면 카드값이 쌓이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하루에 숨통의 트이는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열심히 일하는 나에게 이정도도 못 쓰랴. 그러면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런 생각도 들었던 거 같다.


내가 퇴사를 하고 난 뒤에 알았다. 너무 쓴 커피에 매달려 살았구나 하고. 전에는 집에서 투샷을 내려 커피를 마셨는데, 이제 마셔보니 어지러웠다. (나는 엄두도 못낼 커피머신을 친구가 결혼선물로 주었다. 내 보물 1호. 둥기둥기 최고~!)


신기한 일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커피 샷은 한개로도 충분했다. 가끔은 가루 커피를 타서  마시곤 한다. 맛이 있다.


이젠 동네에 있는 카페에서 9900원에 원두를 갈아오면 한달은 충분히 마신다. 돈이 궁해지니 비싼 커피는 엄두도 못내겠다. 그리고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집에서 내려먹는 커피가 젤 맛있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현실은 잊고 호사를 누려보고 싶다.  집순이가 된 나는 큰 맘 먹고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남편 회사 앞 스타벅스에 앉아 허세 좋게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니 기분이 좋다. 맛이 있다.


커피를 잘 모르기 때문이겠지만, 나에게 커피 맛이란 내 마음이다. 때로는 철없고, 때로는 과시적이며, 때로는 자기위로다.


오늘의 커피는 과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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