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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wook Apr 19. 2016

[IT休]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이 글은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업적.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고도 처절하게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면, 행복한 삶이었을까.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날로 늘고 있지만, 이를 최초로 생각해낸 시기는 60여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50년 천재수학자 '앨런 튜링'이 그 주인공. 그는 '컴퓨팅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에서 가상으로 컴퓨터를 상상해 내며 기계지능측정 테스트인 '튜링 테스트'를 고안해 냈다. 6년 후인 1956년, 드디어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세상에 첫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튜링 테스트는 '이미테이션 게임'이라고도 불린다. 동일한 제목의 영화가 지난해 2월 모튼 틸덤 감독, 베네딕트 컴버배치,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비운의 주인공 앨런 튜링을 연기했다.


영화는 1951년, 영국 맨체스터 경찰서의 한 취조실에서 시작한다. "집중하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필요로 하는 건 약속입니다. 내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말을 모두 끝내기 전까진 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거죠…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들은 내 책임이 아닙니다. 당신 책임이지요."


앨런 튜링이 형사를 향해 쏟아내는 이 독백은, 앞으로 그가 내뱉는 말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진 말일지를 짐작케 한다.


시간은 거슬러 1939년, 매 순간 3명이 목숨을 앗아가던 제2차 세계대전.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영국은 천재들을 기용해 기밀 암호해독 프로젝트팀을 만든다. 당시 독일군은 고도화된 암호인 '에니그마(수수께끼)' 기계를 통해 군사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당시 연합군은 통신장비를 통해 공중에 떠다니는 암호화된 메시지들을 가로챌 수는 있었지만, 이를 해독해내지는 못했던 상황. 더구나 에니그마 기계는 매일 '1해 5천 900경' 가지의 설정이 가능한 괴물이었다. 하루에 한번 기계 설정을 바꿔 암호를 보내는 탓에 '에니그마'는 해독불가한 암호로 여겨졌다.


앨런 튜링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머리로'는 에니그마를 해독할 수 없다고 믿었다. 2000만년이 걸려야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 그는 팀과 동떨어져 혼자 기계를 만들려 했다. 팀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앨런 튜링은 기지를 발휘해 자신의 팀을 이끌고 있던 사령관의 상사, 즉 윈스턴 처칠 총리에게 제작비용이 10만 파운드(현재 금액으로 90억원)가 드는 기계를 만들어 에니그마를 해독해내겠다고 편지를 쓴다. 총리는 이를 허락했고, 일개 팀원이던 앨런은 이를 계기로 팀을 이끄는 리더가 됐다.


앨런 튜링은 곧바로, 두 명의 팀원을 해고하고 남은 인원을 충원한다. 어려운 십자낱말퀴즈를 풀 수 있는 인재를 뽑았다. 이때 여성인 조안 클라크(키이라 나이틀리)가 합류하게 된다. 조안은 외톨이었던 앨런에게 친구가 되어주었고, 팀원들과의 불화도 해결할 수 있게 돕는다. 후에 조안은 앨런의 약혼자가 된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암호 해독기 '크리스토퍼'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영국 내무성의 참을성은 한계에 다다랐고, 한달 내에 에니그마를 해독하지 못하면 앨런을 죄수형에 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앨런과 팀원들도 성과 없이 돌아가기만 하는 기계에 좌절감을 맛보고 있었다.


기한을 얼마 남긴 어느 날, 앨런과 동료들은 실패의 씁쓸함을 바에서 씻어내고 있었다. 조안의 친구 헬렌이 앨런의 팀 동료 휴와 담소를 나누는 과정에서 에니그마를 해독할 '실마리'를 찾게 된다. (정확한 내용은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길)


에니그마를 풀어낸 앨런과 그의 팀은 결국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는데 일조했다. 독일군의 작전이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 독일군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 군사정보를 제공했다.


드디어 전쟁은 끝이 났고, 팀은 해산 됐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앨런은 다시 외톨이가 됐다.


사실 그는 '동성애자' 였다. 그가 발명한 암호해독기의 이름이 '크리스토퍼'였던 것은, 이와 관련이 깊다.


조안과의 결혼생활을 꿈꿀 수 없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영화 초반 앨런이 취조실에 불려가 기밀을 말해야 했던 것도, 그의 성적 취향이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탓이다. 하지만, 앨런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크리스토퍼'와 늘 함께였다고. 그리고 '크리스토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호르몬 치료 (화학적 거세)를 선택했다고.


앨런 튜링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은 훨씬 더 나아졌다. "때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전쟁통에 적의 군사 암호를 해독해 1400만명의 생명을 살려낸 천재수학자. 하지만, 남성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지독한 외로움과 싸워야 했던 앨런 튜링. 그는 후에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며 존경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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