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겨울,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3년 전 그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었다. 하얀 눈이 창문에 쌓여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내 인생도 그 눈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나온 지 벌써 넉 달째. 처음에는 '곧 다른 곳을 찾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버텨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은 더욱 가혹해졌다. 책상 위에는 연체고지서들이 마치 나를 조롱하듯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휴대폰은 하루 종일 독촉 전화로 시끄러웠다.
그날 밤도 다르지 않았다. 작은 원룸 안에서 혼자 앉아 은행 앱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통장 잔고는 고작 십몇만 원. 그마저도 내일이면 자동이체로 빠져나갈 돈이었다.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건가?'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휴대폰 화면에 떨어져 번지는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정말로, 진짜로 바닥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매일 아침이 지옥 같았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예전의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움푹 들어간 볼, 생기를 잃은 눈, 너덜너덜해진 머리카락.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나?"
거울 속의 나에게 매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없었다. 그저 초췌한 얼굴만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절망이 깊어질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꺼져가는 재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처럼. 그 불씨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확실한 건 그것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냉장고를 열었을 때의 그 절망감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달랑 계란 세 개. 그마저도 유통기한이 며칠 지난 것들이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내 안에서 폭발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그날 밤,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지 않겠다고.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겠다고.
5년 전에 산 낡은 노트북 하나와 월 몇 만 원짜리 인터넷 요금제가 전부였지만,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충분해야 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첫 번째 블로그 글을 올렸을 때의 떨림을 잊을 수가 없다.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몇 분간 멈춰 있었다. '정말 올려도 될까? 누가 읽을까? 괜찮을까?'
그렇게 망설이다가 결국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하루 종일 조회수를 확인했다. 1, 2, 5, 8... 마침내 12에서 멈췄다.
단순한 숫자였지만, 그 무게는 상상 이상이었다. 12명의 사람이 내 글을 읽었다는 것. 그들이 내 이야기에 잠깐이나마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댓글은 없었다. 수익은 당연히 0원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이것밖에는 남은 게 없었으니까.
매일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알람을 맞춰둔 것도 아니었는데, 몸이 저절로 깨어났다. 아마도 간절함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리듬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의 고요함 속에서 글을 썼다. 창밖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꿈속에 있을 때, 나는 혼자 키보드를 두드렸다. 클릭클릭거리는 소리가 유일한 친구였다.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샅샅이 분석했다. 어떤 글이 인기가 많을까? 어떤 제목이 클릭을 유도할까? 어떤 구성이 끝까지 읽게 만들까?
매일이 연구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다. 뭔가를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몇 달이 지나도 블로그 수익은 여전히 0원이었다. 조회수는 조금씩 늘어났지만, 그것만으로는 생계를 해결할 수 없었다.
'정말 이게 맞는 길일까?'
의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 섞인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차라리 편의점이라도 취직하는 게 낫지 않아?"
그들의 말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뭔가 다른 길이 있을 것 같았다. 단지 내가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문득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블로그 글을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라, 상품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예전에 영업 일을 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상품을 제안하던 그 감각 말이다.
독자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정보가 뭘까?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까? 어떤 해답을 찾고 있을까? 그런 관점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변화가 시작됐다. 조회수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고,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수익이 발생했다.
천 원. 고작 천 원이었지만, 그 천 원이 주는 의미는 천만 원보다 컸다.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으니까.
첫 번째 메시지가 준 감동
1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날따라 기분이 우울해서 블로그 댓글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한 독자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몇 달 전부터 블로그를 구독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에서 많이 힘들었는데, 님의 글을 읽으며 정말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았어요.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그 순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돈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얻은 기분이었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 내 경험이 다른 사람의 삶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주는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더욱 솔직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실패담도, 부끄러운 순간들도, 여전히 부족한 모습들도 가감 없이 공유했다.
이상하게도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응원해주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덕분에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용기가 납니다"라는 메시지들이 계속해서 도착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은 완벽한 성공담보다는 진실한 여정을 원한다는 것을.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리고 2년 전, 세상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을 목격했다. ChatGPT라는 인공지능 도구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설마 AI가 사람만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지만 직접 써보니 충격적이었다.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수준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구성을 도와주고, 심지어 창의적인 접근까지 가능했다.
두려움도 있었다. '이제 사람이 쓰는 글이 설 자리가 있을까?' 하지만 곧 깨달았다. AI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중요한 건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라는 것을.
AI의 도움으로 글 쓰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더 많은 시간을 독자와의 소통과 콘텐츠 기획에 쏟을 수 있게 되었다. 블로그에서 시작된 나의 경험은 이제 인스타그램, 스레드,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현재 나는 여러 플랫폼에서 활동하며, 매일 수백 명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매일 아침,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늘 올릴 콘텐츠를 구상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예전에는 불안으로 가득했던 미래가 이제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보인다.
가끔 3년 전의 그 겨울밤을 떠올린다. 차가운 방바닥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절망했던 그때의 나를. 그때는 몰랐다. 그 절망의 순간이 새로운 시작의 신호탄이었다는 것을.
요즘 종종 예전의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눈에서 그때의 내 모습을 본다.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 복잡한 감정을.
그럴 때마다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은 정말 힘들고 어둡게만 느껴지겠지만,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헛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경험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되고, 길이 될 거예요."
"당신의 시작은 바로 지금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거창할 필요도 없어요. 작은 한 걸음이면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때로는 인생에서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작의 순간이기도 하다. 내가 그랬듯이.
3년 전 그 차가운 겨울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얻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도 지금 그 순간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이, 사실은 새로운 시작일지도.
바닥에서 시작된 여행은 언제나 가장 높은 곳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