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들은 엄마의 실크 드레스를 가져가 버렸다. 나에게 알리지도 않고.
엄마가 가장 아끼던 옷이었다. 나는 그 옷을 태우는 게 싫다고 잠들기 전까지 말했었다. 하지만 발인 날 아침 고모들은 낮은 보루네오 옷장을 뒤져서 엄마가 기쁜 날에만 입으시던 밤바다 빛 실크 드레스를 가져다가 홀랑 태웠다. 나는 오랫동안 고모들을 원망했다. 엄마를 추억할 물건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아서. 그들은 엄마의 진주 목걸이까지 가져가 버렸다. 아버지께 여쭤보니 고모 중 하나가 패물 상자에서 나 뭐 하나 가져도 돼? 하고 물어봤다고 했다. 아버지께선 오빠니까 그러라고 한 건데, 어느 날인가 문득 생각나 열어 보니 엄마의 패물 상자는 텅 비어있었다. 내가 놀라 비명을 지르니 아버지께서 와서 보시곤 아버지의 고향에 사는 고모들한테 전화를 했다. 고모들은 하나같이 입을 맞춘 듯 오빠 딸은 아직 어리고 패물 하려면 아직 멀었으니 잘 보관해 놨다가 결혼할 때 줄게라고 했다. 내가 결혼하던 날 그들은 엄마의 패물을 달고 걸고 왔지만 그대로 달고 걸고 가버렸다. 신혼여행을 갔다 올 테니 엄마의 진주 목걸이라도 꼭 받아놓으시라고 아버지께 다짐을 받아 놓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 정신도 의지도 놓아버리신 아버지께선 나의 당부도 잊으시고 그저 내 얼굴만 쳐다보셨다. 돌아왔냐? 그럼 됐다. 아버지는 짧게 말씀하시곤 그대로 누워버리셨다. 그들은 다수이고 아버지는 혼자였다. 신혼여행을 하루 늦추고 고모들 머리끄덩이라도 잡았어야 하는 건데.
아버지 장례식 때 고모들이 다 모였다. 그들은 소리 높여 “우리 오빠, 마누라 먼저 보내고 불쌍하게 산 가련한 우리 오빠. 이제 누가 때마다 우리 용돈 보내 주냐고. 오빠, 가지 마.” 하며 처연하게도 곡을 했다. 내 손을 덥석 잡아끌어 앉히며 너도 곡을 해야 하는 거라고 했다. 장례식 때는 상주 울음소리가 커야 한다고. 아들이 없이 딸랑 딸 하나라 부조금 낼 손님이나 오겠냐며 걱정들을 했다. 크게 곡을 하는 틈틈이 상조회사 흉도 보고 교대로 밥까지 먹고 오는 그들이 신기해 보였다. 내 남편이 지키고 있는 부조금 상자를 흘겨보다가 사위는 상주 노릇을 해야지 아들이 없는데 하며 수군댔다. 급기야 나에게 사촌들 뒀다 뭐 하냐며 자기 아들한테 부조금 상자를 맡기라고 했다. 나는 왜요? 저것도 엄마 패물 상자처럼 홀랑 비워가시게요? 하고 날 선 목소리로 대거리를 했다. 우리 엄마 진주 목걸이 어디 갔다 팔아먹고 왔어요? 나 결혼할 때 도로 준다더니... 결혼은 진즉에 했으니 내 진주 목걸이 돌려줘요. 우리 엄마가 나한테 크면 나 준다고 했다고요. 그들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눈만 꿈벅 거리는 폼이 꼭 올빼미 군단들 같았다. 나는 그들을 경멸했다. 정신을 놓아버린 아버지와 그의 어린 딸을 등쳐먹은 사람들.
그들은 그 뒤로 장례식 내내 구석에 모여 내 움직임만 주시했다. 아들이 없어 손님이나 오겠냐는 그들의 걱정은 보기 좋게 부서졌다. 남편과 내 직장에서 화환이 삼십여 개나 와서 놓을 자리가 없어 장례식장 입구에도 몇 개 갖다 놔야 했다. 남편이 지키던 부조금 상자에 장례비용을 치르고도 남을 만한 돈이 모였다. 아버지께서 아프시기 전까지 몸담으시던 경찰서에서도 많은 분들이 왔다 가셨고 아버지 고향 친구분들, 동창 분들까지 왔다 가셨다. 이만하면 딸랑 딸 하나가 치른 장례치곤 성대했다. 상조회사와 셈을 치르고 있는데 큰고모가 다가왔다. 내려갈 기차표 값을 달라는 것이었다. 손님도 많이 왔다 갔으니 고모들이랑 사촌들 교통비는 줄 수 있겠지 고모는 기세 좋게 말했다. 내 진주 목걸이는요? 그건 느이 아부지가 갖다 쓴 집안 돈 갚은 기라 생각해라. 오빠 대학 보내느라 느이 할머니 할아버지 땅 팔고 소 팔고 품 팔았으니 그거 갚은 기라. 표값이나 줘. 난 셈을 치르고 남은 돈을 착착 정리하여 가방에 넣었다. 알아서 내려가세요. 난 고모들 덕에 엄마의 유품 하나 없으니까요. 아들들 많으니 알아서 차표 사 달라하세요. 난 그렇게 돌아섰다. 이젠 더 볼일 없다. 이젠 남이다. 이젠 저들 때문에 더 이상 상처받을 일이 없다.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