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화투 공장에 다녔다. 골목 안에 있는 화투 공장 담벼락엔 베니어합판을 얼기설기 엮어 지은 틈새로 알록달록한 화투판이 끼워져 있었다. 화투 기계기름에 절어 있는, 화투 자르는 기계에 손가락 두 개가 잘려나간 손으로 밀어주는 누렇게 바랜 신문지에 둘둘 말린 물체. 친구는 환한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이제 네 돈 다 갚았다. 이건 선물이다. 풀어봐. 신문지 안에는 모란꽃이 새겨진 화투 한 장과 나무로 깎아 만든 호랑이 인형이 있었다. 열아홉에 고아원에서 나와서 오갈 데 없던 나한테 네가 힘이 되어줬잖아. 네가 빌려준 그 돈으로 혼자 지낼 방을 얻으니 그렇게 좋더라. 이제 살만하다. 화투 공장이 이제 내 거야. 나랑 같이 일 시작했던 남편이 여기저기 거래처를 깔아놨잖아. 다 네 덕이다. 네가 뭘 믿고 그때 나한테 돈을 빌려줬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지. 고맙다. 모란꽃과 호랑이? 나는 친구를 쳐다봤다. 친구는 유난히 숱 많고 기다란 속눈썹 때문에 촉촉하게 젖어 보이는 눈으로 싱글벙글 웃었다. 긴 앞머리를 쓸어올리는 세 개의 손가락은 화투 기계기름에 푹 절어있었다.
너 모란꽃 좋아했었잖아, 우리 엄마 떡볶이 포장마차 옆 돌담에 피어있던 모란꽃. 놀다가도 넌 그 꽃을 정신없이 바라보곤 했었지. 그 말을 듣자 그 골목이 생각났다. 동네 구멍가게 옆에 있던 평상. 그 평상을 닦고 조이시던 가게 주인 할아버지. 평상에 모이던 동네 사람들. 평상 옆 돌담에 추레하게 서있던 친구 엄마의 떡볶이 포장마차. 짧은 파마머리를 하고 얼룩이 묻은 앞치마를 한 친구의 엄마는 자주 우리들을 불러 모아 떡볶이를 퍼주었다. 우리 춘실이두 친구니까 같이 놀아라. 떡볶이 먹고 놀아, 아줌마가 주는 거니까 편히 먹어라. 아줌마는 우리에게 춘실이와 어울려 놀라고 했다. 그럴수록 우리들은 고집스레 춘실이를 따돌렸다. 떡볶이는 맛있었으나 춘실이는 우리랑 다른 ‘포장마차 집 아이’였으므로. 춘실이네 아버지는 가끔씩만 집에 왔고 그때마다 포장마차에서 작부 짓거리를 한다고 아줌마는 매타작을 당했다. 작부 짓거리가 뭔지는 몰랐지만 나쁜 짓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갔고 그것으로 춘실이를 따돌릴 이유는 충분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우리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아줌마의 포장마차에는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우리 엄마 그때 돈 벌겠다고 평상에 앉아 술 쳐 먹던 할배들 찌개 끓여주다 오랜만에 들어온 아버지한테 맞아 머리통이 깨져버렸었지. 경찰이셨던 네 아버지께서 울 아부지를 잡아다가 유치장에 가두셔서 엄마는 며칠 동안 편하게 누워계실 수 있었지. 울 아부지 풀려나자마자 작부 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바람에 뒷산으로 달아나 그 길로 아주 도망가셨던가, 엄만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으셨지. 그때부터 많은 것이 내 몫이 되었지. 빨래도, 청소도, 식사 준비도, 매 타작도. 네 어머님께서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된장찌개를 끓일 줄 모른다고 아부지한테 맞아 다리가 부러져 쫄쫄 굶고 며칠 동안이나 누워있던 나를 데려다가 씻기고, 먹이고. 정말 고마우신 분이셨어. 아버님께서 경찰이니 너네 집에 있으면 우리 아부지도 어찌하지 못했어. 하지만 언제까지나 네 집에 있을 순 없는 일이니 아부지가 사라지면 집으로 갔지. 아부지가 돈을 주지 않고 엄마는 도망갔으니 집에 가면 아무것도 없었어. 하기야 엄마가 있을 때도 아부지는 집안을 뒤져서 돈을 탈탈 털어만 갔지 땡전 한 푼 보태는 법이 없었지. 난 그때 항상 화가 나 있었어. 뭐 이런 엄마가 있는지. 날 왜 두고 갔을까. 엄마는 상처 난 새였을까. 둥지를 버리고 가버린 어미 새. 본인의 상처를 보듬느라 내 존재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는 건가. 원망하고 또 원망했지. 술 취한 아부지가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서 내 잠자리는 항상 불안했어.
그런데 왜 호랑이냐고? 잠깐 기다려봐. 이제 그 얘기가 나올 참이니깐. 추적추적 비가 오는 여름밤이었어. 다행히 가게 할아버지가 먹으라고 주신 라면이 남아있어서 난 석유곤로에 물을 끓이고 있었지. 아버지는 등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와 아무것도 모르고 라면을 먹을 생각만 하고있던 나를 덮쳤어. 내 몸을 거친 손으로 샅샅이 뒤지며 입으로는 쉬지 않고 욕설을 내뱉었지. 이 잡년이 라면 사 먹을 돈이 있었네. 어디다 숨겨놨을까. 이 년이 에미 닮아서 작부 짓을 하고 다니나? 돈이 어디서 났지, 이 잡년이? 난 내 아홉 살 몸을 작디작게 만들어 아버지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서 겨우 빠져나왔어. 다시 잡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아버지가 독한 술 냄새를 풍기며 나를 잡아채려고 다시 손을 뻗자 난 물이 끓고 있던 냄비를 아부지의 머리에 던졌어. 냄비는 보기 좋게 아부지의 머리에 명중했지. 아부지가 고통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난 뒷산으로 달리기 시작했어. 날 버리고 도망친 엄마처럼 말이야. 아부지는 금방 날 따라잡았지.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아버지의 목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렸어. 아귀처럼 포효하며 내 이름을 부르고 욕을 했지. 춘실이 이 잡년 자기 아비한테 뜨건 물을 뿌려? 이 잡년 잡히면 죽인다. 해가 져서 눈앞은 깜깜했고 허파가 터질 것 같았지만 난 멈출 수가 없었어. 크게 한 발을 내디뎠을 때 난 굴러 떨어졌어. 바로 앞 나무 둥치 밑으로. 떨어지면서 나무둥치에 쓸린 팔꿈치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어. 아픈 줄도 모르고 난 한 마리 작은 벌레처럼 꼬물꼬물 움직여 나무밑으로 파고들었어. 눈을 꼭 감고 내 몸이 당장 투명해지길 바라며. 그래서 아부지의 눈에 안 뜨이길 기도하며.
거기엔 굴이 있었어. 입구는 좁았지만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내가 앉을만한 공간이 있더라. 거기엔 나 말고도 작은 생명들이 있었어. 작고 귀여운 고양이 새끼들이 셋이나 가르랑거리고 있었지. 보드라운 삼색털을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아부지의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어. 입구가 좁은 데다가 나무둥치 아래 있으니 술 취한 아부지가 발견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안도감에 난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어. 잠이 깨고 나니 고양이들과 같이 엉켜있었지. 그런데 이번엔 아기 고양이들만이 아니었어. 굴속엔 다른 존재가 있었지. 먼저 커다란 발과 하얗게 빛나는 송곳니가 눈에 들어왔어. 이마에 새겨져 있는 노랗고 까만 줄무늬.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그제야 엄마 호랑이가 한눈에 들어왔지. 나는 호랑이 굴에 들어와 있었던 거야. 고양이가 아닌 호랑이 새끼들이랑 밤을 보낸 거지. 나도 동네 할머니들이 들려주시던 뒷산 호랑이 이야기는 알고 있었어. 우리 동네를 지키며 나쁜 놈들을 혼내줬다는 호랑이. 그 호랑이는 오래전에 떠났다는데 그날 내 눈앞에는 호랑이가 나타났어. 엄마 호랑이는 킁킁대며 내 냄새를 맡았어. 난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조금씩 기어서 굴 밖으로 나왔어. 굴을 나온 난 집으로 뛰었어. 호랑이가 쫓아올까 봐 정신없이 뛰어 집에 들어선 순간, 방 문 뒤에 숨어 날 기다리고 있던 아부지가 내 팔을 낚아챘어. 두들겨 맞기 시작했지만 아부지의 한쪽 얼굴이 뜨거운 물에 데어서 시뻘게진 것을 보니 내 마음이 기쁨으로 부풀어 올랐어. 그 기쁨의 힘으로 난 대문을 열고 뛰쳐나왔어. 아부지한테서 도망칠 데가 없으니 다시 뒷산으로 뛰는 수밖에 없었지. 쫒기다 운이 나빴던지 절벽으로 몰리게 됐지. 앞은 낭떠러지, 뒤는 아부지.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뛰어내리기로 맘을 정했어. 맞아 죽는 것보단 낫겠다 싶었지. 그때 홀연히 내 앞에 엄마 호랑이가 나타났어. 호랑이는 나와 아버지 사이를 막아서더니 그 커다란 앞발로 아버지를 후려쳤어. 한없이 크고 강하던 아부지는 그 한 방에 나가떨어졌어. 꼼짝도 않는 아부지를 호랑이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들어찬 커다란 입으로 덥석 물었어. 호랑이는 내게 눈길을 한번 주더니 아버지를 입에 물고 낭떠러지로 펄쩍 뛰었어. 호랑이와 아부지는 허공에 잠깐 머물다 스르르 먼지처럼 흩어져 버렸어. 그게 내가 아는 아부지의 마지막 모습이지. 사람들이 발견한 아부지는 낭떠러지 밑에 있었어. 난 아부지가 죽어서 좋았어. 이제 맘 놓고 잘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고아원에서 지내면서 엄마 호랑이가 날 지켜주었다는 생각이 들 때면 행복했어.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항상 엄마 호랑이가 나랑 있어줄 거 같았지. 너 주려고 호랑이 인형을 만들었어. 갖고 있으면 엄마 호랑이가 너도 지켜 줄 거야. 춘실이가 말했다. 그녀의 등 뒤로 커다란 호랑이의 그림자가 연기처럼 어른거렸다.
그녀가 가고 난 뒤 난 호랑이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돈을 빌려준 것은 그녀가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맘에서였다. 그래, 돈을 줄게, 주겠다고. 안 갚아도 되니까 자리 잡고 잘 살아. 옛일은 잊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돈을 주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실족사를 했다고 판명 났지만 사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버지를 그녀가 절벽에서 밀어버렸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춘실이의 아버지가 발견된 낭떠러지 밑에는 춘실이 어머니의 유골도 암매장되어 있었다. 학대를 일삼던 춘실이 아버지가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부모를 잃은 춘실이는 지낼 곳이 정해지는 동안 우리 집에서 지냈다. 그녀는 곧잘 밝은 얼굴로 웃어댔다. 엄마가 날 버린 게 아니었어. 그저 죽어버렸던 거니까 올 수 없었던 거라고. 춘실이는 자꾸자꾸 웃어댔다. 기괴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춘실이가 드디어 고아원으로 떠나자 후련했다. 그녀의 호랑이 이야기가 사실일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걸까. 난 그녀가 주고 간 신문지 뭉치를 돌아오는 버스에 그냥 두고 내려버렸다. 그녀의 이야기를 이제 완전히 잊을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