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기까지 삼 개월 남짓 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평삼거리 역 근처의 카페였다.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일이 익숙해져서 사장님은 오후에 나오기로 하고 나 혼자 개점 업무를 하게 되었다. 11시 오픈 시간에 맞춰 매장을 청소하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석구석 꼼꼼히 닦고 싱크대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고 나면 사장님께 배운 대로 어설픈 솜씨로나마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셨다. 그 시간이 향기로워 좋았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그런데 그때 일어난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나는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커피숍 근처에 가지 못하고 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날도 평범한 날이었다. 날씨도 좋았고 버스도 제 때 왔으며 설거지 거리도 알맞게 쌓여있었다. 내 삶의 관점을 송두리째 뒤흔들 일이 일어날 전조라고는 없는 날이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데 딸랑하고 문에 달아놓은 방울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눈앞에 파마머리가 헝클어진 중년 여성이 서있었다. 아직 오픈하려면 10분쯤 남았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말문을 열였다. “여기 죽도 파나요?” 카페에서 죽이라니! 게다가 아직 개점도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창백한 아주머니의 얼굴에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저 어이없이 쳐다보는 수밖에. 그녀는 손을 들어 문 밖을 가리켰다. “저기 지금 주차하고 계시는 양반이 우리 바깥양반이에요. 그동안 장례 치르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서 힘들 거예요. 죽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녀의 간절한 표정에 나는 말했다. “죽은 없는데 저희 브런치 메뉴에 수프가 있어요. 수프도 괜찮으실까요?”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네, 좋아요. 근데 버섯은 안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아직 애기 입맛이라…” 감자수프가 준비되어 있다고 하자 그녀는 좋다고 하며 라테 두 잔도 달달하게 타달라고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자리를 잡자 그녀의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은 양복을 꾸깃꾸깃 떨쳐 입고 몹시 피곤해 보이는 얼굴의 그 사내는 실내를 둘러보더니 그녀 옆 소파 좌석에 푹 파묻히듯 앉아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뒤 편 주방으로 들어가 수프를 준비했다. 몇 분 후 따끈한 음료와 수프를 준비해서 남편 앞에 놓으며 난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남편이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 어? 내가 주문한 거 아닌데?” “네, 여기 계신 부인께서 미리 주문하셨어요. 힘든 일 치르시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다고…” 그 사나이는 눈을 크게 뜨고 날 잠시 바라보더니 갑자기 의자에서 말 그대로 튀어 올랐다. “ 뭐라고요? 방금 뭐라고 했어요? 부인? 미리 주문했다고? “ “ 네, 여기 계신 부인이요.” 난 내 앞, 그 사나이의 바로 옆에 앉아있는 아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지척지척 뒷걸음질을 하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 무슨 소리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저기 누가 있다고!” 그 사나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당황해서 내 앞의 아주머니에게 “손님께서 주문하셨잖아요? 애기 입맛이라 버섯을 못 드신다고…. 손님, 말씀 좀 해보세요. 이 손님 왜 이러시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잔잔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개점시간도 아닌데 문 열고 들어와서 편의를 봐줬더니,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짜증이 난 나는 목소리를 높여 재차 말했다. “ 손님이 방금 주문하셨잖아요. 말 좀 해 보세요.” 그러자 그 검정 양복을 입은 사나이는 소리를 질렀다. “누구랑 얘기하는 거냐고요!” 그렇게 몇 번이나 소리를 지르더니 그만 기절해 버렸다. 난 찬물을 가지고 오랴, 119에 전화를 하고 사장님께 전화를 하느라, 바닥에 쓰러진 그 사나이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받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동안 그 아주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지은채 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119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자 양복의 사나이가 깨어났다. 눈을 뜬 그는 말했다. “그 사람이 정말 여기 있어요? 그 사람이 정말로 주문을 했나요? 나 애기 입맛 맞아요. 하지만 오늘이 49재이고 방금 그 사람 산소에 다녀오는 길인데.” 나는 그가 가냘픈 목소리로 하는 말에 등에 소름이 돋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변함없이 잔잔한 미소를 띠며 거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구급대원의 말소리가 들리자 마치 스크린이 접히듯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운동화 끝부분부터 지우개로 지워지듯 천천히 사라졌다. 신발, 종아리, 무릎… 그러다 얼굴만 남아 지긋이 나를 보았다. 그 미소, 그 시선이 마치 영원인 듯 느껴졌다. 그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구급대원은 왜 이리 오래 걸리는 거야? 어서 들어와서 내 고개를 돌려 달라고! 저 얼굴을 더 이상 쳐다보기 싫어, 무섭다고! 드디어 구급대원이 들어왔다. 그제야 내 마비상태가 풀렸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내 무릎에 누워있던 사나이는 구급침대에 실려가며 말했다. “그 사람이 정말 여기 있나요? 보고 싶은데, 정말 보고 싶어서….” 그렇게 그 사나이는 실려갔다. 그날 부로 나는 그 카페를 그만뒀다. 사장님은 일머리 있는 사람 만나기 힘든데 그새 그만둔다고 하며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단 한순간도 그 카페에 있기 싫었다. 임금정산도 나중에 하기로 하고 서둘러 그 카페를 빠져나왔다.
일을 시작할 땐 몰랐는데 그만두고 보니 카페 가까이에 공원묘지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 아직도 꿈에 문득문득 나타나는 그 아주머니의 얼굴. 그 아주머니는 진짜 내 앞에 있었는데. 그건 확실한데. 그러나 내 눈앞에서 사라지던 순간이며 이미 죽은 자였던 것 하며 그런 것들은 정말 믿지 못할 사실이다. 죽은 영혼이 이승을 떠난다는 날인 49재. 마지막 인사를 하러 남편 옆에 잠시 머물렀던 것일까?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부평 삼거리 역 근처엔 절대로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