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은 비어 있었다. 아니, 거의 비어 있었다고 해야 맞겠다. 이른 아침, 도시가 아직 잠든 그 시간.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형광등은 피곤한 듯 윙 소리를 내며 깜빡거렸다. 나는 늘 앉는 내 자리를 찾았고, 습관처럼 신문을 펴 들었다. 두세 정거장이 지났을 무렵,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알아챘다.
그녀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빈 좌석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내' 옆에 앉았다. 가까웠다. 불쾌했다.
자주색 윗도리. 붉은색 바지. 자글자글한 주름이 덮인 늙은 얼굴. 무릎 위에 올려놓은 까만 배낭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내게 말을 걸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단지… 거기에 있었다.
나는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자리를 옮겼다. 이렇게 가까이 앉다니. 자리도 널렸는데. 도대체 노인네들은 개인공간이라는 게 없어. 난 투덜거렸다. 그리고, 정말이지, 그게 끝인 줄 알았다.
다음 날 같은 시간, 같은 노선.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난 다른 칸 좌석에 앉기로 했다. 뭔가 기분이 개운치 않았기 때문이다. 신문을 한참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거기 있었다. 맞은편 자리, 똑같은 옷, 똑같은 배낭.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젠장.
그다음 날도. 그다음 주도. 어디에 앉든, 몇 시에 타든—그녀는 거기 있었다. 마치 내 하루의 일부가 된 것처럼.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웃기 시작했다. 그 미소는 처음에는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매일 조금씩 자라났다. 주름지고 메마른 살갗을 찢고 나오는 듯한 미소였다. 나는 더 이상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아니 타기 싫었다. 집에서 일했다. 외출을 피했다. 사람들을 피했다.
그러다 꿈을 꿨다.
그녀가 거기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무릎에 놓인 배낭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배낭 안에는, 무언가—살아있는 것—이 꿈틀거렸다. 비명을 지르다 잠을 깨니, 침대 옆 탁자 위에 지하철 노선표가 놓여있었다. 거기에는 고풍스러운 손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빨리 돌아오세요.'
나는 돌아갔다. 늘 타던 칸에 탑승했다. 거기서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문이 닫혔다. 그녀는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미소 짓는 입은 이제 찢어질 듯 벌어졌고, 그 안에는 치아가 아니라… 터널처럼 어두운 공간이 있었다.
나는 도망쳤다. 지하철 칸을 넘고 또 넘었다. 그녀는 따라오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기 다음 칸으로 뛰어들어가면 그녀는 이미 거기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칸에 오직 그녀 혼자만 앉아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난 시간 감각을 잃었다. 현실감을 잃었다. 나는 지쳐 자리에 주저앉아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지하철이 멈췄다. 문이 열렸고, 나는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 아파트 복도에 나는 서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 형광등이 윙— 소리를 냈다. 어? 형광등? 우리 집은 LED등인데? 아래를 보니 익숙한 마룻바닥은 온데간데없었다. 금속바닥이었다.
나는 돌아섰다.
복도는 사라지고 있었다. 지하철은 다시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거기 그 자리에 앉아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찢어질 듯 한 그 미소는 이제, 그녀의 얼굴을 삼키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안다. 나는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
나는 지금, 지하철 할머니가 만든 함정 속에 있다. 그리고 난 절대 집에 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