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실이 이야기

by 김제니

나는 공터에서 놀아본 적이 없다. 항상 공터에 있는 느티나무 뒤 벽에 등을 붙이고 기대서 서 있었다.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거나, 딱지를 치거나, 큰 소리로 웃으며 놀 때도 나는 느티나무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들은 놀다가 심심해지면 느티나무 뒤에 숨어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들은 나에게 몰려와 둥그렇게 나를 둘러싸고 나를 노려봤다. 나는 그들의 시선이 싫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시작했다. "너 이름 양춘실이지? 너 양공주냐? 양춘실은 양공주래요. 양춘실은 양공주래요!" 아이들은 웃으며 지칠 때까지 그렇게 나를 놀리다가 또다시 우르르 몰려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러면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들의 말하는 '양공주'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나쁜 말이라는 것은 알았다. 나는 그저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이 멈추기를 기다리며. 아이들은 내가 왜 늘 조용히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놀려대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말해도 흩어지니까. 그림자 속 목소리는 빛에 닿지 않으니까.

우리 엄마는 여름에는 빙수 포장마차를 했고, 겨울에는 떡볶이를 팔았다. 해가 지면 술에 취한 아저씨들이 포장마차에 앉아 어묵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그래서 나는 '포장마차 집 애'에서 '술집 애'가 되었다. 나는 그 이름들을 껴안고 살았다. 등 뒤에, 무릎에, 팔뚝에 시퍼런 멍이 들어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를 이해하려는 어른은 없었고, 나를 감싸주는 친구도 없었다. 엄마는 왜소한 몸집에 피곤이 가득 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나로 질끈 묶은 파마머리는 언제나 부스스했고, 앞치마에는 떡볶이 국물 자국과 어묵 국물 자국이 번져 있었다. 웃을 때면 늘 비실비실, 웃는 건지 미안한 건지 모를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가끔 엄마는 포장마차 앞 평상에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친구니까 잘 놀아라. 친구니까 함께 놀아야지. 춘실이랑도 함께 놀아라." 엄마는 그 말을 꼭 추임새처럼 넣으며 빙수든, 떡볶이든, 어묵이든 아이들에게 한가득 퍼주었다. 아이들은 볼이 미어지게 욱여넣었다. 이게 웬 횡재냐 싶었을 것이다. 그 애들 엄마는 불량식품이라며 사주지 않던 것들이었으니까. 아이들은 매콤한 떡볶이, 달콤한 빙수, 쫄깃한 어묵에 정신이 팔려,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 듯 마는 듯했다. 엄마는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나와 함께 웃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퍼주어도, 나에 대한 조롱과 외면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아버지는 몇 주 만에 한 번씩 돌아왔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우리 집에서는 고성과 함께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엄마와 내가 돌아가며 맞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창문을 닫고 TV 소리를 키우며 말했다. "아휴, 또 시작이네. 더럽게 시끄럽다." 그러곤 혀를 차고는 그만이었다. 누구도 말리지 않았고, 누구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 집은 원래 그렇다"며 모두가 외면했다. 그 주먹으로 맞으면 귀에서 웽웽 소리가 났다. 귀에서 웽웽 소리가 나고 눈앞이 마구 흔들렸다. 난 눈앞이 마구 흔들려서 비틀비틀 걸었다. 나는 저 사람을 피해야 한다. 아버지를 피해야 살 수 있다. 그 생각만으로 나는 눈앞이 뱅글뱅글 돌아도 기를 쓰고 문밖으로 향했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다시 붙잡혀 맞아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면 늘 엄마가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었다. 작디작은 엄마가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내가 깨어나면 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병신 같은 년이나 병신 같은 딸이나, 그년이 그년이지." 아버지의 앞에는 어느새 잘 끓인 두부찌개와 소주로 차린 술상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만족한 듯 웃었다. "병신 딸이 병신 짓하네. 아까 하던 병신 짓, 어디 더 해봐라. 아이고, 재밌다." 아버지는 술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배를 쥐고 웃어댔다.

어느 날 밤, 엄마가 울며 나에게 말했다. "춘실아, 우리 그냥 도망가자. 어디든 가자."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그날 밤, 엄마는 떠났다. 아버지가 오는 날엔 난, 방에 딸린 작은 창고에서 옷 무더기와 함께 자야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옷 무더기가 한결 작아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얼마 전 엄마가 내 초등학교 입학식에 입고 왔던 분홍빛 블라우스가 없었다. 나는 학교에 가는 척 문을 나섰다가, 아버지가 나가는 걸 확인한 후 다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엄마가 사라진 차가운 집 안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엄마는 분홍빛 블라우스를 입고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 후로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대신 매일 동네 뒤 바위산에 올랐다. 바위산 꼭대기에서 보면 저 아래 우리 동네로 들어오는 길 어귀가 보였다. 혹시 엄마가 나타나지 않을까.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나는 매일 같이 올라가서 길 어귀를 바라봤다. 바위산에 올라 엄마를 기다리는 게 좋았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것보다, 엄마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다 별빛이 내려앉으면, 어두컴컴한 집에 돌아가기 싫어서 동구 밖으로 사라지는 그 길을 보며 그 자리에서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나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에서도, 동네 어른 중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다. 누구도 내게 왜 학교에 오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모두에게 잊힌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나를 잊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다. 며칠 뒤, 아버지가 돌아왔다. 요란하게 발로 문을 차 열고 들어왔다. 아버지의 몸집은 끝없이 하늘까지 치솟은 것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그림자 아래에서 작아졌고, 아버지는 위에서 나를 굽어보았다. 그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위협적이었고, 손은 솥뚜껑만큼이나 컸다. 주먹이 눈앞에 보여서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벼락이 쳤다. "네 어미 어디 갔냐? 돈 어디 있어? 너도 똑같아. 어미년이나 딸년이나, 아비 속만 썩이고. 쥐새끼 같은 년, 잡히기만 해 봐. 아주 아작을 내버릴라." 나는 도망쳤다. 아무 생각 없이 바위산으로 도망쳤다. 돌계단을 맨발로 올랐고, 가시에 긁힌 다리가 따가운지도 몰랐다. 벼랑 끝까지 올라갔을 때, 뒤에서 아버지의 발소리가 들렸다. "말 안 할래? 어? 어디 숨겼어?" 그는 내가 엄마를 숨겼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를 붙잡으려 했고, 나는 물러섰다. 그의 눈빛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 없이 이글거렸다. "네 어미가 어디 갔는지 말 안 해? 어? 돈 어디 숨겼냐? 그년이랑 한패지?" 그는 숨을 몰아쉬며 이를 갈았다. "어미년이 딸년 하나 제대로 못 키워놓고 도망을 가? 어디 감히!" 그는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듯, 억울하다는 듯 소리치며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그 순간, 그는 발을 헛디뎠다. 그는 말없이, 그냥 아래로 떨어졌다. 바람 소리도, 비명도 없었다. 무언가 툭, 하고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 같았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섭지도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바위산을 내려왔다. 산어귀에 개를 잡아 개장국을 끓이던 아저씨들이 있었다.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그들은 나를 보며 웃었다. "야, 춘실아. 네 아비가 너 찾더라. 우리가 막걸리 받아놓은 거 다 혼자 처마시고, 너 찾는다고 올라갔다. 네 아비 보면 막걸리 한 통 사 오라 그래라." 개장국 끓이는 냄새가 공기 중에 매캐했다. 나는 그 말을 지나쳐서 걸었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와 있기를, 지금쯤 돌아와 나를 기다리고 있기를. 집으로 가는 길은 길고도 짧았다. 골목 끝에 가로등이 하나 서 있었다. 그 불빛 아래 포장마차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 옆에서, 누군가가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섰다. 엄마일까. 아니면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그림자일까.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