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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니 Dec 08. 2024

여행처럼 사는 법, 삶을 그려 나가다

어반 스케치를 시작한 후로 나는 걷는 길마다 멈추어 섰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했던 오래된 건물의 굴곡진 벽, 한적한 카페 앞에서 흔들리던 나뭇가지, 햇빛에 반짝이던 거리의 창문들. 스케치북을 펼치고 그 장면들을 그려나갈 때, 비로소 내가 그 공간을 온전히 만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케치는 단순한 그림 이상의 기록이다. 그것은 나의 발걸음이 머문 자리와 그 순간의 감정을 담아낸다. 이전엔 무심히 지나쳤던 공간들이 연필과 종이 위에서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벤치에 앉아 주변을 관찰하다 보면, 내가 평소엔 놓치고 살던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의 냄새,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나무 그늘 사이로 흔들리는 햇빛. 그것들을 그림으로 남기며, 나는 그 순간을 내 삶 속에 온전히 새긴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 풍경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도롯가에서 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나는 내 앞에 펼쳐진 작은 세상에만 집중한다. 스케치는 나를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곳에 있게 한다. 그렇게 그 순간을 담아낼 때, 일상은 여행처럼 특별해진다.

그날의 스케치를 집으로 돌아와 다시 펼쳐보면 또 다른 기쁨이 있다. 그림 속에 담긴 풍경은 단순한 장면이 아니다. 내 눈과 손으로 만들어낸 여행의 지도다. 스케치를 보며 그날의 햇살, 주변의 소음, 마음속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떠오른다. 그때의 나를 만나며 미소 짓는다.


여행이라고 해서 반드시 먼 곳으로 떠날 필요는 없다.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집 근처 골목을 걷기만 해도 충분하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벽돌의 색감과 길가에 핀 작은 꽃들이 오늘은 다르게 보인다. 마치 여행지에서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듯, 익숙한 곳에서도 새로운 감각이 피어난다.

스케치북이 없던 시절에는 사진으로만 순간을 남겼다. 하지만 사진은 그대로의 모습을 담지만, 스케치는 내가 느낀 감정을 녹여낸다. 선 하나, 색 하나에 그날의 내가 있다. 그래서 스케치북은 내 삶의 여행기가 된다. 갔던 곳, 만났던 풍경, 느꼈던 마음이 한 권의 책처럼 쌓여간다.


어반 스케치는 내 일상을 여행처럼 살게 한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하게 하고,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할 수 있게 한다. 삶이 단조롭다고 느껴질 때, 스케치북을 펼치고 주변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 당신의 평범한 하루가 여행처럼 반짝이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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