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담은 첫 그림

by 김제니

처음 펜을 들었을 때, 나는 무언가를 그린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눈앞에 있는 꽃병을 그려야지 마음먹고 종이에 펜을 대는데, 손이 어색하게 떨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선을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그었다.

“왜 이렇게 잘 안 되지?”

마음 한쪽이 움츠러들었다. 그림이라는 건 어쩌면 나와 맞지 않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마음이 스쳤다. ‘왜 꼭 잘 그려야 하지? 이건 나를 위한 시간인데, 누가 평가할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다시 펜을 들었다. 이번에는 꽃병의 굴곡을 하나하나 따라가는 데만 집중했다. 어쩔 수 없이 삐뚤빼뚤한 선이 그려질 때마다 “괜찮아, 이건 내 그림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림이 완성된 순간, 솔직히 조금 웃음이 났다. 내가 상상했던 우아한 꽃병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그림을 조금 더 들여다보니 묘하게 정이 갔다. 그 안에는 나의 서툰 손길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건 내 삶과 참 닮아 있었다.

살아오면서 나는 늘 완벽하려고 애썼다.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나를 필요로 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속에는 수많은 삐뚤빼뚤한 선들이 그어졌다. 고르고 반듯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 안에는 서툴고 흔들리며 그려온 시간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선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림을 그리고 나니 마음이 묘하게 가벼워졌다. 잘 그려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니까 그저 내가 좋아서 그린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나를 표현하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그림을 통해 나를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한 장 한 장을 그릴 때마다 나의 기분, 나의 마음, 나의 이야기가 그 안에 담겼다.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은 내 삶의 기록이 되었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시작하기 두려워하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서툴러도 괜찮아요. 당신의 선은 누구의 것과도 다르고, 그래서 특별해요.” 그러니 펜을 들어보세요. 첫 그림이 그려지는 순간, 당신도 아마 느끼게 될 거예요. 그 그림 속에는 서툴지만 진심 어린 당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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