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풍지 분홍꽃

by 김제니

어린 시절, 봄이면 우리 집의 창문은 언제나 특별한 변화를 겪었다. 우리 집은 오래된 한옥이었고, 봄이 오면 그 문풍지가 새로운 옷을 입기 위해 바뀌곤 했다. 매년 나는 엄마와 함께 창호지를 준비하고, 조심스레 손끝으로 물을 묻혀가며 그 작업을 했다.

가장 중요했던 건, 물기를 충분히 적신 창호지를 천천히 뜯어내고 새로 깔기 전에 미리 말려두었던 분홍꽃을 그 사이에 껴 넣는 일이었다. 꽃은 보통 내가 좋아하는 꽃들이었다. 벚꽃처럼 화사한 분홍색이었고, 연두색 풀잎도 섞여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그 꽃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배치하곤 했고,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문풍지 위에 꽃이 얹히는 순간, 세상은 환상적인 풍경으로 변했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와 함께 일하는 시간이 참 고요하고 따뜻했다고 느꼈다. 엄마의 손끝에서 나오는 정성스러움은 분명히 그 꽃들에 스며들어 있었다. 어린 나는 그때 그런 꽃들이 그저 예뻐서 좋았다. 하지만 그 꽃들이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존재로 바뀌었다.

그 해봄, 중학교 2학년 때,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갑자기 찾아온 그 비보를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때부터 내 세상은 변했다. 어머니가 내 옆에서 함께 창호지를 바르고, 분홍꽃을 문풍지에 고이 올려놓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뒤이어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 문풍지 분홍꽃은 내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았다. 우리가 이사한 집은 더 이상 오래된 한옥이 아니었고, 이제는 그런 창호지가 아닌 현대식 창문들로 바뀌었다. 나는 항상 문풍지와 분홍꽃을 생각했다. 엄마가 나와 함께 그 꽃을 손수 놓으며 하던 대화를 이제는 혼자만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야 했다. 그 꽃들은 물에 적셔서 다시 창에 붙여본 적이 없고, 그 작은 기쁨을 나누던 시간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변했다. 분홍꽃은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그때 그 장소에서만 살아있었다. 그때의 사랑스러운 봄날과 엄마의 미소는, 이제는 내가 그 꽃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것뿐이었다.

이젠 봄마다 문득 그 꽃들이 그리워지면,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린다. 엄마와 함께 그 꽃들을 문풍지 위에 놓으며 웃던 시간들, 그리고 그 따스했던 기억이 오늘도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게 해 준,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이, 내 삶을 지금도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문풍지 분홍꽃은 더 이상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그 봄날의 꽃들은 피어나고 있다. 그것은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준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담은 첫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