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할 때마다 진땀을 흘린다. 말 몇 마디로 나라는 인간을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나 자신도 나라는 인간을 온전히 알고 있지 않다. 지금껏 살아온 53년의 시간 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의외의 모습을 많이도 보여왔다.
내성적이고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 힘들기만 하던 나는 24살에 외국항공사 승무원직에 덜컥 붙어버렸다. 그로부터 10여 년간 홍콩에서 살며 지구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매년 3~4주씩 주어지는 휴가 때마다 혼자 훌쩍 떠났다. 숙소에서 친해진 처음 보는 사람들하고 웃고 떠들며 이국의 골목을 누볐다.
비혼 주의자라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떠들어대던 난 어느 날 짝을 만나 사랑에 빠져 버렸다. ‘내가 원래 금사빠였나?’ 하는 생각에 놀랐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기혼자가 되어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비로소 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사랑. 내가 이렇게도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나! 나라는 존재를 버리고 엄마가 되었다. 24시간이 오로지 아이를 위해 흘러갔다. 아이가 학교에 가게 되자 아이의 교과 과정을 따라 아이와 함께 공부했다. 활동지를 만들어 아이의 친구들과 함께 체험학습도 다녔다. 방학 때는 외국의 한 도시를 골라 한 달 살기를 했다. 아이에게 무엇이든 좋은 것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다가 애 다 크면 허전해서 어떻게 하려고.’ 늘 듣던 말이었는데 주위의 이런 걱정들이 무색할 만큼 올해 대학생이 된 아들이 점점 더 내 손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게 나도 놀랍다. 솔직히 아이가 다 큰 게 반갑다. 제 물건 A/S도 제 손으로 챙기고 밥도 스스로 차려 먹으니 반찬만 몇 가지 챙겨 놓으면 며칠 동안 여행 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즈음이다. 짝꿍과 이런저런 얘기 끝에 12월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들도 다 컸으니 오랜만에 짝꿍끼리 여행 갔다 오자고 쿵작이 맞았다.
앞으로 살아갈 날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 할 것인지 나 자신에게 기대가 된다. 솔직히 난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르겠다. 자신에 대해 확신에 차서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흐르는 물처럼 주어진 상황에 맞춰가는 인간? 난 아마 그런 인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