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싱젠 [버스 정류장]과 보스의 세계 – 김제니
지난 1월,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을 마주했다. 화집에서만 보아오던 그림과 실제 눈앞에 펼쳐진 보스의 세계는 차원이 달랐다. 세 폭으로 이어진 거대한 그림 속 기괴한 캐릭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울부짖고, 춤추고, 짖어대며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과 표정은 마치 내가 그간 품어온 불안과 혼란을 시각적으로 펼쳐놓은 듯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를 바라보았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두려움과 욕망, 죄와 구원, 희망과 타락이 서로 얽혀 거대한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모든 장면이 내 삶의 불협화음 - 고독, 불안, 갈등을 그대로 투영한 듯해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러나 그림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난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흩어져 있던 캐릭터들이 거대한 하나의 질서 속에서 서로를 보완하며, 마치 음악의 화음처럼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보스는 혼돈 속에서조차 신의 질서와 구원의 방향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처음엔 불협화음이지만, 결국 그 혼돈이 완전함을 이루는 순간. 나는 그 그림 앞에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 역시 이런 ‘파편의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 인물들은 처음엔 각자의 목표와 욕망—연인을 만나고 싶고, 장기에서 승리하고 싶고, 시험에 합격하고 싶고, 기술자로 인정받고 싶고, 혹은 요구르트 한 컵의 작은 기쁨을 얻고 싶다는 것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시내와 버스에만 향해 있고, 서로를 바라보지도,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도 않는다. 인물들은 각자의 목적과 욕망 속에 갇혀, 마치 첼로 솔리스트가 연주하는 고독한 독주처럼 서로를 외면한다. 혼자 말하고, 각자 자신의 목적지만 바라본다. 이 대사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보스 그림 속의 기괴한 인물들이 떠오르게 된다. 욕망과 공포가 튀어나오는 파편들, 서로 어긋난 목소리들. 그 모습은 마치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첼로 독주가 허공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과도 같다. 마치 여러 대의 첼로가 서로 다른 악보를 연주하듯, 음색은 섞이지 않고 공중에서 흩어진다. 시간은 고장 난 시계처럼 늘어진 채, 기다림은 몇 년처럼 길게 느껴진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물들은 지금 살아가는 삶이 멈춰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때 방수포가 등장한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고난의 순간, 숙련공이 펼쳐 든 좁은 방수포 아래에서 그들은 서로를 발견한다. 방수포는 물리적으로는 작고 한정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아본다. 짐을 나누고, 체온을 나누고, 서로 눈을 맞춘다. 고립된 섬 같던 고독은 사라지고, 불협화음으로 가득했던 기다림의 시간은 오케스트라의 화음으로 승화된다. 바로 그 찰나, 고립은 연대로, 독백은 대화로 바뀌며, 파편적이었던 인물들은 서로 연결된다. 결말에 이르면 인물들은 더 이상 버스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희망을 품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에게 맞춰 걸음을 내디딘다. 시내로 향하는 그 발걸음은 함께 걷는 연대의 발걸음이 된다. 멈춰 있던 시간은 다시 흐르고, 인물들의 삶은 비로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파편들이 조화를 향해 움직이는 결정적 장면이다. 정류장에 갇혀 있던 인물들은 마침내 고독한 독주를 끝내고 자신들만의 협주곡을 시작한다. 불협화음에서 시작해, 혼돈의 목소리들을 지나, 마침내 관계의 하모니로 도달하는 여정.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그물망과 같은 존재이며, 서로 함께할 때 삶은 비로소 풍부하고 자연스러운 울림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작품은 조용히 일깨운다. 이 연극이 부조리극인지, 희극인지, 비극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고독과 기다림 속에서도 서로를 발견하고, 함께 걸을 때 비로소 삶이 음악처럼 흐른다는 점이다. 가오싱젠의 세계도, 보스의 세계도 같은 진실을 말한다. 인간은 혼자서는 섬처럼 고립된 존재이지만,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비로소 완전한 음악이 된다.
17세기 영국의 성직자 존 던은 이렇게 노래했다.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 완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륙의 한 부분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간다면
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어느 곶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이고,
그대의 친구 혹은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니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린다. - 출처: 나무위키
그렇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각자의 고독 속에서 멈춰 서 있더라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실들을 통해 서로 연결된 존재다. 삶의 고난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비바람 속에서 방수포를 붙잡던 사람들처럼, 우리는 옆을 돌아보고 서로의 체온을 발견하며 하나의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연대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도구이다. 연대가 만들어내는 조화 속에서 미래는 비로소 선명해지고 고립됐던 우리의 삶은 합주가 된다. 삶은 버스가 도착하는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걸어 나갈 사람을 발견하는 순간 비로소 시작된다. 함께 걷고, 함께 발견하며, 함께 하모니를 만드는 것. 혼자가 아닌, 서로 이어진 인간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