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9일
쓸모를 입증하고 싶은 실직자로 사는 요즘은 집안일이 기껍다. 오늘 마늘 까기가 그러했다. 엄마 아는 분이 농사를 짓고 주신 가득쌓인 마늘을 깠다. 옹골차게 모인 마늘을 물에 불린 뒤 쪼개고 마늘 한 조각을 까끌한 부분을 깎고 껍질을 벗긴 다음 물로 다시 헹구는 과정이다. 일본드라마 아이러브유를 1.5편 보고 거실에 켜진 티비 드라마가 끝날 때쯤 마늘 까기가 끝났다.
까는 과정은 오묘하다. 아예 말캉한 마늘은 썩어있다. 까매서 이 마늘은 까도 소용이 없어 보이는데 막상 까면 하얀 속살을 보인다. 반면 실해 보이는데 뒷면을 보면 멍들어서 쓸 수 없는 마늘도 있다. 마늘을 깔 때에는 안까진 마늘, 깐 마늘, 마늘 껍질이 담길 세 봉투가 필요하다. 희한하다. 깐 마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파란 다라이 속 안까진 마늘에 시선이 고정된다. 인생 같다. 이룬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이 까마득하고 꽝인지 참인지 알 수 없으나 사실은 좋은 일이 더 많은 우리네 인생.
오래 까다보면 장갑을 낀 손 끝이 아리고 마늘냄새가 짙어진다. 눈앞에 하나하나 까다보면 끝도 온다. 이로서 김장 준비에 한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