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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 Ayu May 04. 2024

이별의 연속성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 본 적 있는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 보았는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이라는 키워드로만 봤을 때, 연애의 과정이 떠오를 것이다. 나도 여러 번의 연애의 시작과 끝을 경험해 봤지만, 그 연애의 이별에서 난 항상 비겁했다. 사랑이 식어서 이별을 고하거나, 이별을 위해 좋아하는 감정을 식혔으니 말이다.


정말로,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다고 처음 느낀 건 2021년, 호정선생님이 한국을 떠나실 때였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2020년 중반부터 우리가 수련하던 요가원은 11월 말에 문을 닫을 예정이라 고지했고, 선생님은 그 이후 한국에 남을지 말지를 확답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때 1년 가까이 선생님과 이별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정말 사랑해도 헤어질 때가 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롤 모델 또는 멘토라고 느꼈던 사람, 내가 루틴처럼 해오던 아쉬탕가수련, 선생님이 아우르던 우리 수련생들의 커뮤니티까지.. 그 당시 내가 사랑하던 많은 것들과의 관계가 불확실해졌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처음으로 건강하게 이별을 대하는 법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이별이 그토록 슬픈 이유는 뒤집어 바라보면 그만큼 사랑했던 순간이 있어서이고,

그럼에도 이별할 날에 남은 사랑은 그 사람의 나아갈 길을 응원하는 방향으로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육체는 떠났을지라도 마음속에 남은 추억과 기억을 간직하는 한 정말 이별은 아니라는 것...


이렇게 2021년 7월 선생님과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그땐 몰랐지만) 나는 한층 단단한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호정선생님은 한국을 떠났고 2022년 나는 5개월간 발리 여행을 했다.


발리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질문들은 이렇다.

어디서 왔어? 여기엔 왜 왔어? 휴가로 왔어? 얼마나 있어?


질문해서 유추할 수 있듯 오고 가는 여행객이 대부분인 발리섬에서

잠시 몸을 담갔다가 떠나는 사람들과 섞이며 처음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어차피 쉽게 왔다가 쉽게 가는 사람들...

앞으로 만날지 만나지 못할지 모르는 사람들...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바라보아야 하는 인간관계에서

얼마만큼의 마음을 나누고, 이별할 때 얼마나 아쉬워해야 하는지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우붓의 요가원에서 S를 만나면서 호정선생님과의 이별이 떠올랐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S는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즐거운지에 대해 자주 표현하며 내년 발리에서 또 만나면 좋겠다, 겨울에 휴가 때 한국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그가 떠나던 날, 그는 말했다.


지혜, 부탁이 있어. 네가 한국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정착하게 된다면 꼭 말해줄래?

그렇다면 나는 너의 선택과 행복을 응원해 주고 싶어. 나도 그렇게 할게!


그때 당시 말은 안 했지만 S는 내가 참 좋았지만, 대화를 나누며 나에 대해 알아갈수록(*) 우리의 다음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강해졌다고 했다.


(*) 나의 이번 여행이 해외 생활의 처음이라는 것, 한국에 깊숙이 자리 잡은 듯한 가치관과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황소자리... ㅋㅋㅋ


신기하게도 S가 이별을 대하던 그 모습을 보고서야 떠나던 호정선생님을 응원하던 내 마음을 비추어보았고, 그가 나를 좋아하는 그 마음의 깊이와 진심을 이해하게 되었다.



4개월 후 우리는 스페인에서 다시 만났고, 연인 관계로 발전하면서 2023년 3월 함께 한국 여행을 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서촌에 머물렀는데 S는 장기 비행에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요가를 가고 싶어 했다. 마침 오랫동안 관심 있게 눈여겨보던 요가원이 근처에 있었는데, 그게 바로 북촌요가원이다.


그래서 북촌요가원에 처음 방문해 수련을 했는데 선생님의 첫인상은 너무나 따스했다. 사바사나 때 우리가 손잡고 사바사나 하는 거 사랑스럽다고 사진도 찍어 공유해 주시고, 그렇게 서촌에 머무는 동안 두 번 수업을 참석하고 정신없이 한국 여행을 했다.


한국 여행 막바지가 되니, 곧 또 그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슬펐다... 이번에 헤어지면 2달간 혼자 서울에서의 삶도 정리해야 하는데, 계속되는 삶의 크고 큰 변화들을 마주하는 게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던 중 S는 말했다.


"아.. 저번에 그 요가원 진짜 좋았는데. 내일은 수업 없나?"


지내던 곳에서 요가원까지는 지하철로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려서 순간 머뭇거렸지만, 한국 떠나기 전에 그 요가원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말에 수업을 예약하고 또 우리는 다음날 북촌요가원으로 향했다.


수업이 끝나고, S는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앞으로 한국에서 남은 2달 동안 수련하는 거 어때?라고 물으며 등록을 재촉했다. 그렇게 24회 요가 수업을 골랐고, S는 선물로 요가원을 등록해 줬다.




S는 스페인으로 떠났고, 나는 공항에서 그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북촌요가원으로 향했다. 북촌요가원을 향하는 길목마다 그와의 추억이 남아있었고, 아쉬운 마음을 선생님이랑도 나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S와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귄 사람이 북촌요가원 선생님이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알아주는 선생님에게 더 고마웠던 것 같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던 2달 동안 꾸준히 북촌요가원에 나가 수련을 하면서, S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상기시키고, 선생님과 수련 전중후로 말 너머의 마음을 나누면서 정말 행복하고 소중한 수련을 했다. 난 사실 평소에 말로 표현을 잘 안 하고 못하는 편인데, 북촌요가원 수업 듣고는 매일매일 선생님한테 수련한 그날의 소감을 다 쏟아내고 나왔다. 매일매일 '선생님 오늘 수업도 너무 좋았어요 정말 최고예요.'라고 말할 때마다 쑥스러워하던 귀여우신 선생님...


2023년 6월 출국 이틀 전, 마지막 수련을 하고 인사할 때가 오니 그제야 선생님과 이별하는 게 실감이 났다. 신기했던 건 북촌요가원에서 작별 인사를 할 땐 평소 이별할 때 느끼던 혼란함, 아쉬움과 애절함이 없었다. 그 대신 가까운 미래에 다시 보겠다는 의지, 가능성, 그리고 그때까지의 선생님의 삶을 응원하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아 있었다.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하던 날, 근 3년간 여러 번 다양한 크고 작은 이별을 거치며 나는 이제 이별을 슬픔과 아쉬움보단 변화에 대한 기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2024년 3월,  나와 S는 다시 한국에 방문했고, 북촌요가원에 재방문했다!

북촌요가원으로 향하는데 마음이 두근두근 떨리고 설렜다. 마치 친정 가는 느낌?!


반가운 마음을 나누고, 근황도 나누고, 작은 선물도 나누고, 요가도 나누는  1시간이 정말 행복한 꿈같았다. 작년에 S가 쓴 책을 선생님한테 선물로 드렸었는데, 그 책이 정말 좋았다고 말하는 선생님에게서 진심이 느껴졌다.


이번에 제주도도 가고 하느라, 바쁜 일정 속 딱 두 번 수련하고 선생님과 더 만나진 못했지만, 제주도를 여행하면서도 우리는 자연스레 북촌요가원 이야기를 했다. 화산섬을 배경으로 쓴 S의 동화책 배경과 제주도가 너무 비슷하다면서 '선생님이 제주도 좋아하시고 자주 방문하시던데, 그래서 그 책을 정말 감동 깊게 읽으셨다 보다~ 책이 주인 찾아갔네.' 하며 말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근 3년간 나는 이별만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 최근 1년간은 S, 발리, 북촌요가원 등등 아쉬운 마음을 남긴 채 이별한 것들과 재만남도 경험했다. 아직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있는 호정선생님도 운이 따라주는 날, 곧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하는 마음을 아쉬움으로 남기지 말고 연료로 사용한다면 만남과 이별이라는 관념 너머에 연속된 만남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모순적이게도 만날 땐 희미했지만, 이별하는 과정을 거치며 '연결감'을 깨우친 것이다.


이번 경험을 마무리로 근 4년간 고민해 온 이별에 대한 물음과 고찰은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이별, 안녕!
그 너머 연속성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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