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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간의 미학 Aug 07. 2024

직장 내 고충처리가 해야 할 일

진실의 구도자가 아닌 현실의 중재자

어느 날 A임원은 이상한 소문을 듣는다. 팀원이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비밀 파일을 B팀원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소문은 꽤나 구체적이다. B팀원은 비밀 파일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본인이 A임원과 가깝다고 말하는 증거로 사용하였다. 주변 사람들은 해당 파일을 보며 A임원과 B팀원이 가깝다는 것을 확신했고, 파일의 내용을 통해 A임원은 공정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A임원은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분개했다. 참을 수 없어 B팀원을 불러내었고, 화를 내며 욕설도 섞으며 윽박질렀다. 도대체 어떻게 이걸 가지고 있었고 왜 그런 방식으로 사용했느냐고 다그쳤다. 소리 지른 것에서 나아가 핸드폰을 가져오라고 내 앞에서 파일을 열어보라고 했다. B팀원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당신이 준 다른 파일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A임원이 실수로 특정 파일 안에 잘못 넣은 내용을 B팀원은 보게 된 것이었다.


문제는 그 뒤로부터 시작되었다. B팀원은 A임원이 자신의 핸드폰을 보려고 했고, 소리 지르며 욕설한 부분에 대해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문제제기했다. 회사에서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외부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겠다고 했다. A임원은 억울했다. 가지고 있으면 안 될 파일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확인하려고 했던 것뿐이다. 물론 자신의 실수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노무업무를 하면서 겪는 여러 고충처리 건 중에 하나의 사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A임원이 소리 지르고 핸드폰을 보여달라고 한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애초에 B팀원이 봐서는 안될 파일을 보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전한 게 문제인가? 어려운 문제이다.


고충처리 부서에 대해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는 해당 부서가 모든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주길 바란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직장 내에서 고충처리 하는 부서는 힘이 없는 경우가 많다. 힘이 없다는 말은 실제로 회사의 메인 스트림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하기도 벅차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수사기관처럼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정확한 증거를 수집하기도 어렵다. 또한 고충처리 부서나 조사받는 사람, 고충을 제기한 사람 모두도 그 회사 사람이니 사내 인간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면 조사 자체가 벅찬 상황이 된다. 고충을 제기한 사람은 경찰 또는 검찰과 같은 역할을 고충처리 부서에 바란다. 사실 관계를 선과 악으로 재단해 주길 바라고 자신의 편에 기꺼이 서주길 바란다. 하지만 현실을 선과 악으로 재단되지도 않고,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은 교묘하게 뒤섞여있어 생선가시처럼 발라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참으로 힘들다. 딜레마 안에서 고충처리부서는 항상 난감하다. 하지만 그 난감함이 고충처리부서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정당화해 줄 수는 없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얼마 주어지지 권한 안에서 법이 요구하는 범위를 지키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명백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직장 내 고충처리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주 뚜렷한 경우는 많이 없다. 항상 사안은 혼탁하고, 정당함과 정당하지 않음은 교묘하게 혼재되어 있다. 그렇기에 고충처리 부서가 함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은 '상식의 눈으로 바라보기'이다. 상식선에서 해야 할 일과 해야 하지 않을 일을 구분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에게는 반성할 기회를 주기 위해 충분한 근거를 상식의 눈으로 마련해야 하고, 피해자로 보이는 사람은 상처 입은 마음을 잘 보듬어 줘야 한다. 피해자의 마음을 보듬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감동하지는 못하더라도 만족할 만큼의 조치가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상처가 없도록 잘 들어주고 공감해줘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가해자가 반성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가해자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과정은 때론 정말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함께 얼굴을 맞대며 일하는 일터에서 당신이 잘못했다는 말을 전하는 것은 아무리 반복해도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충처리를 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서 상대가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고충처리 부서는 검사와 다르다. 그 사람이 죄를 지었으니 반드시 이런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줄 벌은 정해져 있고, 이런 이유로 인해서 이 정도 양정으로 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상대를 후벼 파는 논리보다 납득할 수 있는 논리가 더 중요하다.


앞선 사례는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해피엔딩이었을까? 고충처리부서는 A임원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보고 B팀원의 고충제기 건을 '직장 내 괴롭힘' 해당 없음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B팀원은 고용노동부에 A임원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진정 제기하였으며 고용노동부는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했다. A임원은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분개하였고 지금도 다툼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이다.  


A임원이 안타까운 것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여 문제 상황에 처한 것이라기보다 좋은 중재자로서 고충처리부서를 만나지 못해 반성할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A임원이 나름대로 억울한 측면은 있겠지만 누군가의 핸드폰을 보고, 고성과 욕설을 섞어가며 윽박지른 것은 그 자체가 잘못된 행위였다. 이를 인지하지 못해고 자신의 분노로 인해 그리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중재자를 만나지 못함으로 인해서 A임원은 앞으로 회사 생활에서 영원히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원망하고, 그저 재수 없게 B팀원을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살 것이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B팀원도 자신이 회사의 기밀문서를 보고 유출했다는 것에 대해서 반성하지 못한 채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A임원의 잘못과 B팀원의 잘못을 적절하게 지적했다면 사내 징계 수준으로 조치될 수 있었던 사건일 수 있었다. 그러나 B팀원은 이제 외부에 사내의 사건을 고발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었고, 아마 이는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이 B팀원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회사의 인사상 불이익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B팀원은 영원히 회사와 A임원을 탓하며 살아갈 것이다.


서로에게 있었던 잘못을 상식의 선에서 보여주고 적절한 반성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면 과연 이렇게 되었을까?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상식의 선에서 서로의 행위에 대해 지적할 수 있어야 했다. 고충처리부서의 진정한 능력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거나 발생한 문제를 잘 덮는 게 아니라 적절한 수준으로 문제를 부각하고 잘못된 행위를 지적해 주는 것이 진정한 능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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